타인을 나의 공간에 들인다는 것은
전국 팔도에서 오랜만에 모인 친구와 후배들이 스마트폰을 하나둘 꺼내 들었다.
그들 중 일부는 집안 곳곳 내가 모아둔 소품이나 악기 따위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또 어떤 이는 '나의 현재 위치' 기능을 켰다. GPS로 우리 집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더니, 이윽고 현재 부동산 시세까지 검색해본다. 그밖에 다 열거하자면 끝도 없는 '우리 집'에 내려진 평가들….
그 모습에 지쳐 지금까지 즐거웠던 술자리가, 모두 좋지 않은 기억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이 가구 왜 사셨어요? 여기 평 되게 안 좋은데. 다른 데 좀만 더 알아보시지."
"인테리어가 좀 아쉽다."
"위치가 애들 학교 다니려면 영 안 좋겠는데…."
"아, 여기는 분당 치고는 집이 되게 싸네요. 외곽이라 좀 불편해서 그런가?"
비관적인 평가는 물론 칭찬까지 모두 듣기 싫은 지경이었다.
그래도 나름 나를 만나러 오겠다고 동네까지 찾아와 준 녀석들이다. 하여 다 같이 술 한잔 하고 근처 모텔에서 한숨 잔 뒤 오전에 각자 돌아간다는 것을, 기분 좋게 초대했다. 집에서 자고 가라는 말 한마디에 모두 매우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집에 들어오자마자 완전히 반전된 것이다.
내 공간이 마구 사진 찍히는 걸로 모자라서, 각자의 가족 내지 여자 친구/지인들에게 보내지는 모습을 보니 그것 또한 영 마음이 좋지 않았다. 먼저 양해를 구한 녀석들도 있었는데, 이 경우엔 당연히 흔쾌하게 허락했다. 사전에 이야기만 해주면 기분 나쁠 일도 없다.
매너가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어렸을 때에도 친구를 집에 초대하면 이따금 비슷한 일이 있었다.
어렴풋한 기억으론 우리 집에 있는 내 만화책이나 게임기를 빌려가려고 했던 기억들, 내 책상을 뒤져보던 모습도 떠오른다. 이런 것들에 과민하게 반응한 적은 없다. 당시에는 별생각 없이 흘려보내는 수준의 것들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초대를 해보니 참 여러 스타일의 사람들이 있더라.
깔끔하게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먹은 음식들의 뒷정리까지 마친 이들이 있다. 그런 반면, 침구류는 널브러뜨리고 먹다 남은 배달 음식들은 테이블에 그대로 둔 채 떠나버리는 이들도 존재한다. 이제 우리 집 근처를 오면, 마치 이곳에서 자는 게 당연하다는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까지 있다. 먼저 이런 식으로 선수만 치지 않는다면 선뜻 내가 앞서 얘기해줄 텐데 이들의 돌진은 거침이 없다. 이러다 보니 이사를 한번 더 간 이후로는 그 사실을 섣불리 공개하지 않게 됐다.
생활방식이 다른 모두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과의 관계가 멀어진 것도 아니다. 다만, '나를 불편하게 하는 행동'을 할지 모를 사람들을 함부로 초대하는 일이 줄었다는 것이다. 깊이 마음을 내준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이제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은 완벽하게 배제되었다. 이건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타인과 나의 원만한 관계를 지속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물론 내가 다소 예민했을 수도 있다.
또한 '내 기준에 부합하는' 매너 있는 방문객들 역시 꽤 존재한다. 그러나 어디에서든 늘 이슈 되는 건, 보통의 다수가 아닌 소수의 사고뭉치들 아니던가. 불편한 침입자들의 상처는 다른 이들에게도 꽤 영향을 미쳐서, 섣불리 모든 초대를 망설이게 된다.
물리적인 공간이든, 내적 공간이든.
나의 공간에 누군가를 들인다는 것이 이렇게나 어렵다.
내가 이런 행태에 익숙해져야 하는 걸까?
중년의 문턱 앞에 서 있는 나로서도 아직 명확하게 답을 내릴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