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누군가에게 건네는 '선물의 빈도'가 늘어나는 것 같다.나이가 들면서 '선물'을 전하게 되는 여러 상황을 마주한다. 어느 관계에서든 말이다. 이를테면, 십여 년 전에는 '입사선물'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요즘에는 '승진 축하 선물'이 훨씬 빈번하다. 연령에 따라 유형도 이렇게 달라진다.
'생일'같은 특별한 날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선물을 주는 일이 더욱 쉬워지고 있다. 경제적인 여건도 나아지고, 심적으로 여유가 생겨서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좋은 것들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는 점. 그래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오며 가며 가벼운 선물을 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것이 티셔츠 한 장이든, 빵 꾸러미나 케이크 한 조각이든, 혹은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기프티콘이든 말이다.
그런데 이따금 이 기분 좋은 마음이 불쾌감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선물을 받은 상대방의 태도가 워낙 당황스럽기 때문이다.
1. "얼마짜리야?" : 받자마자 폭풍 가격 검색
후배가 취업에 성공했다며 찾아오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하여 반가운 마음으로 선물을 하나 마련했다. 좋은 소식을 전해준 것도, 굳이 우리 동네까지 찾아와 주겠다는 것도, 모두 고마웠다. 한참 고민하다가 백화점서 만년필을 하나 샀다. 며칠 뒤 들뜬 표정을 한 녀석이 찾아왔고 브런치를 함께했다. 포장된 만년필은 식사가 끝나갈 즈음 건네주었다.
그런데 녀석이 대뜸 가격을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후배는 내게 "오~! 이거 생각보다 더 가격이 나가네요!"라고 말했다. 혹시 '가격이 예상보다 더 나가서 만족했다'라는, 어떤 모종의 감사 표시였을까? 만약 그렇다면, 값이 생각보다 저렴했을 경우에는 어땠을까? 눈가를 잔뜩 찡그리며 만년필 상자 뒷면의 상품코드를 확인하던 녀석의 모습.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면전에 이야기하는 것은 더 최악이다. 해외 출장을 갔다가 사무실 식구들 선물을 챙겨 온 적이 있다. 보통의 직원들은 형식적이든, 진심이었든 고마움을 표시한다. 그런데 어떤 자들은 "아, 미국 가는 사람들은 꼭 이것만 사 오더라. 거기선 싸니까 다 이것만 쟁여오나봐."라며 되려 핀잔을 준다. 이들은 선물을 받은 그 순간을 즐기지 못하는 것 같다. 그저 그 값어치가 얼마인지만 관심있을 뿐이다. 인터넷과 모바일이 워낙 발달한 시대라고는 하지만, 그 '신속&편리함'을 굳이 이럴 때 사용해야 했을까.
2. "그래서 제 점수는요." : 평론가가 되는 사람들
가격을 따지는 사람들과 언뜻 비슷해 보이는 유형. 그러나 명확한 차이점이 하나 있다. 이들은 금액적인 것을 포함해 선물 전체에 대한 '총평'을 늘어놓는다. '선물을 건넨 사람'은 마음을 전한 직후부터 되려 이들에게 평가대상이 된다. 긴장의 시간이 흐르는 것이다.
'이건 내가 평소 싫어하던 브랜드였다'는 둥, '이 디자인은 너무 촌스러워서 들고 다니기 어렵다'는 둥, '여기 음식은 맛이 없는데 굳이 돈 주고 사왔냐'는 둥 여러 가지 의견들이 쏟아진다. 기가 막히게도 여기서부터는 이미 주객이 전도되어 있다.
놀랍게도 이들은 이런 평가를 일말의 미안함 없이 자랑스럽게 떠벌리곤 했다. 이 유형은 대게 스스로를 '팩폭(?)의 달인'이라 여기는 편이다. 본인들을 '할 말 하고 사는 쿨한 사람'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 중 이런 유형이 많았다. 사실 남들이 보았을 땐 그저 공감능력 제로인 소시오패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말이다.
3. "패스!" : 내 선물이 어느새 다른 곳으로
'선물'은 그 단어 자체에 '누군가를 위함'이란 의미를 갖고있다. 그런데 이런 뜻이 무색하게 내 선물을 '패스'해버리는 사람들도 많다. 차라리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 선물을 양도하면 모를까. 가까운 주변으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받은 선물을 '칼패스'해버리는 유형이다.
한 번은 같은 팀 막내 직원이 사무실 식구들에게 줄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세미나 참석차 지방에 들렀다가 특산품을 사가지고 온 것이다. 그런데 과장님 한 분이 "야 이거 너나 먹어라"라고 하며 옆 팀원에게 넘겨버리는 것이 아닌가. 알레르기라던지 기타 다른 사연이 있었더라면 알려줄 수도 있었을 텐데. 막내는 무안한 표정으로 한 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나는 여전히 가까운 사람들에게 빈번하게 무언가를 건네고 있다. 지금도 그렇다. 게다가 협소했던 나의 인간관계는, 사회로 나아갈수록 어거지로 넓어지는 중이다. 선물의 빈도수도 그에 비례하여 늘어난다. 즉, 위와 같은 크고 작은 사례도 더 많이 마주한다는 뜻이다. 처음 사회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는 빈정도 많이 상했다. 그런데 요즘은 또 그렇지 않다. 딱히 저런 반응들을 보여도 이제 기분이 나쁘지가 않다.
「더 이상 선물을 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는 것. 그건 그만큼 거리를 둬야 할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물 몇 번 건네보고, 점차 더 편한 사람들만 가까이 남도록 되어가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런 일을 겪을 때면 이제는 되려 후련한 것 같기도 하다. 어거지로 끼워 맞추느라 철철 흘러넘쳤던 협소한 나의 공간. 그곳이 이제 제 그릇에 맞는 적당량을 찾아가는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