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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지켜줄게. 너의 콧노래.

현재와 미래 사이 균형 잡기

by 행복해지리






흐응응~ ♪

홍홍홍~ ♬

실컷~놀았다.



아들은 실컷 놀고 나면 꼭 콧노래를 부른다.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실컷 놀았다는 아이의 말에 나는 안도한다.

오늘도 아이의 행복을 지켰구나, 실컷 놀렸구나 싶어서 뿌듯하다.

그러면서 한편, 다른 마음이 스며든다.

이대로 계속 놀아도 될까?


요즘 내 안에서는 아이의 콧노래에 상반된 두 감정이 전쟁 중이다.






그동안은 나에게 아이의 놀 수 있는 시간 확보는 꾀 중요한 목표였다.


어디 내놔도 뒤처지지 않는 공부 욕심을 갖고 있음에도 사교육을 멀리했다.

사교육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필요하면 잘 활용해야 한다는 주의) 어마무시한 학원 수업 시간이 걸림돌이었다.

보통 선행 학습을 하는 대형수학학원은 하루 4시간 정도 공부한다고 한다. (현행공부 2시간 + 선행공부 2시간 정도. 자습시간 1시간 추가된 곳도 있단다.)

영어학원도 보통 한번 가면 2시간씩 공부하고 온다고 하니 내가 다닐 것도 아닌데 숨부터 막혔다.

학원 다녀와서 숙제까지 하면 우리 아들은 언제 놀 수 있나 계산하다가 맘을 접곤 했다.

다른 집 애들은 영어, 수학은 기본이고 예체능 한 두 개, 논술, 코딩 등등 여러 학원을 다니다는데 언제 노는 것인지가 진심 궁금했다. (반대로 그들은 놀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내가 이상하다 여길수도 있겠지만)


더불어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다양한 케이스를 경험하다보니 굳어진 생각도 한몫했다.

제대로 된 공부를 할 줄 모르면서 수동적으로 학원을 다니게 되면 잘못된 공부 습관이 형성돼서 고치기 힘들다.

과정이 서툴고 속도가 느리더라도 스스로 공부할 줄 아는 아이가 되기 위해 집공부를 하며 보내왔다.


덕분에 여적은 아이의 놀 시간을 넉넉히 확보해 줄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 봉인됐던 욕심이 다시 들썩인다.

아이의 놀 시간 확보라는 묵직한 목표가 내 안의 공부 욕심을 잘 누르고 있었는데 해가 바뀌면서 초등 5학년, 빼박 고학년이 된다고 생각하니 겨우 유지하던 평정심이 흔들리기 시작한 거다.

주변에서 중학교 선행학습을 한다, 아들과 같은 학년 아이가 수능 영어 기출문제를 풀어서 1등급이 나왔다 등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아이는 놀아야 한다는 내 신념이 약해진다.

다들 엄청난 시간을 쏟아부어 공부하고 있는데 놀 시간을 확보해주겠다는 내 개똥철학 때문에 아이가 훗날 뒤쳐지는 건 아닌지 조바심이 난다.


좋은 엄마 코스프레 하려다가 아이의 미래를 망치는 건 아닐까?






한 해가 지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날, 나는 책에서 답을 얻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비욘 나타코 린데블라드 저) 中 에서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숲 속의 현자가 전하는 마지막 인생수업)

현재에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
지금을 온전히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



1년을 끝내고 다시 시작하는 날 책을 읽다가 전쟁을 끝냈다.

요란하게 흔들리던 마음이 갈피를 잡았다.


콧노래를 지켜주자.


내 아이가 현재에 진정으로 존재하면 좋겠다.

지금을 온전히 의식하고 스스로 나다움을 찾아가길 바란다.

막연한 미래에 현재를 저당 잡히고 허상으로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건 앞으로 평생 학습해야 하는 아이가 언제든 원하는 걸 배울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기초 공사만 튼튼히 해주면 될 것이다.


지금의 행복을 온전히 의식하며 신난 울아들
오직 썰매를 빨리 달리겠다는 의지 하나로 최선을 다하는 아들



콧노래를 지켜주자


볕이 좋은면 나가서 뛰고, 눈이 오면 그 위에서 뒹굴 것이다.

나중 말고 지금 행복하기로 한다.









(덧붙임)

아무것도 안 하고 자연인처럼 노는 건 아닙니다.

앞서 말한 대로 욕심 있는 엄마라 넉넉히 집공부 합니다.

다만 가혹한 학원 시간, 막대한 학습량, 학원 오가며 버려지는 시간 을 아껴 놀 시간을 벌고 있습니다.

학원에 얽매이지 않으니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그날그날 기분 따라 놀 수 있답니다.

제약 없이 캠핑 가고 여행 다니며 아이들의 시선을 좁은 책이 아닌 드넓은 세상을 향하도록 돌릴 수 있습니다.

제 나이에 배워야 할 학습을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도록 차곡차곡 쌓아가는 중입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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