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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미숙 Oct 29. 2021

콜센터에서 욕만 먹는 건 아닙니다.

콜센터 10년 차 만년 대리 이야기

콜센터는 고객들한테 욕 듣는 험한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물론 어느 정도 맞는 말이지만 가뭄에 콩 나듯 가끔씩 칭찬도 들을 수 있다. 콜센터 직원들이 퇴사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나는 가끔씩 듣는 칭찬 덕분에 10년째 버틸 수 있었다.






AI와 인터넷이 발달된 요즘 같은 시대에 콜센터로 전화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불만 고객들이다. 인터넷에서 처리할 수 없으니 화가 나서 전화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고객들을 이해하고 상담해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욕만 들으면 그냥 화만 날 뿐이다.






업무 교육 완료 후 동기들은 일반팀으로 발령 날 때 나는 친절한 목소리 덕분에 VIP 부서로 발령이 났다. 평소에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겨주는 성격이다. 그래서 상담할 때 고객님들을 우리 부모님이라 생각하고 오지랖 상담을 했었다. 콜센터에서는 정확한 상담도 중요하지만 콜을 많이 받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도 나는 고객 한 분 한 분 더 챙겨드릴 건 없나 상담에 정성을 다했다.






그날도 문의사항이 많은 VIP 고객 특성상 콜타임이 길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정말 매너 좋으신 고객님이셔서 통화가 길어도 힘들지 않았다. 긴 통화를 마치고 상담 이력을 남기던 중 아차차! 완전히 잘못 설명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전화드려서 다시 정정 안내를 해드렸고 고객님도 나의 실수에 대해서 괜찮다고 웃어주셨다. 고객님께서 양해를 해주셨지만 오 안내를 했다는 나 자신이 너무 화가 났었다.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했던 나는 우울하게 하루를 마무리했었다.





그 이후 다시는 동일한 내용으로 실수하지 않아야지 생각하며 전화를 받고 있었다. 회사 홈페이지에 나에 대한 칭찬글이 올라왔다는 내용을 전달받았다. 며칠 전 너무 친절하게 오 안내했던 그 고객님이셨고 내용은 정확히 기억 안 나지만 감동의 말을 한가득 적어주셨다. 콜센터에 입사하고 나서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많았지만 고객님 칭찬 하나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 싶었던 의문들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보통 고객님들은 콜센터로 다시 전화해서 상담사를 칭찬해 주는 경우가 보통인데 직접 회사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던 고객님은 드물었다. 회사 내 여기저기서 축하한다는 소리를 들었고 움츠려 있었던 어깨를 활짝 펼 수 있었다. 회사일이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이 기분은 하루 만에 끝나긴 했다. 나는 다음날 또 욕을 먹었고 또 울었다. 그래도 회사 일이 힘들 때면 그 자상한 고객님을 생각한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통화 버튼을 누른다.







홈페이지에 칭찬글을 써주셨던 고객님 외에도 기억에 남는 좋은 고객님들이 많다. 한의사였던 한 고객님은 내 어깨까지 걱정해 주시면 주말에 침 맞고 가라고 주소도 불러주셨다. 물론 진짜로 찾아가진 않았지만 배려 가득한 말이 정말 감사했다. 또 다른 고객님들 중에는 유명한 연예인이 계셨다. 그날따라 안내해야 할 내용이 많아서 내 말은 계속 빨라지고 있었다. 목소리에 조급함이 느껴지자 그분은 '저 시간 많아요. 천천히 하세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아니, 요즘같이 바쁜 현대사회에 시간 많은 사람이 어딨습니까. 그분은 TV 채널 넘기면 한두 번은 꼭 볼 정도로 활발히 활동 중이셨다. 그 뒤로 팬이 되었는데 항상 꽃길만 걸으셨으면 좋겠다.





지금은 다른 부서로 이동해서 전화를 받지 않지만 아직도 천사 같은 고객님들이 생각난다. 그리고 나도 다른 회사 콜센터에 전화할 때 이분들처럼 상담사를 배려하려고 노력한다. 전화받는 사람들의 힘듦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말 한마디에도 조심한다.






콜센터 직원들은 거창한 칭찬을 원하는 게 아니다. 수고한다, 감사하다, 이런 작은 배려에도 힘이 난다. 꼭 얼굴을 마주 보지 않고 전화 통화만으로도 상대방에게 배려와 행복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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