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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미숙 Nov 05. 2021

나쁜 놈 중에 더 나쁜 놈, 콜센터 진상들

콜센터 10년 차 만년 대리 이야기

보편적으로 콜센터에서 일한다고 하면 욕먹고 스트레스받는 일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나도 그걸 모르고 이 회사에 입사한 것은 아니다. 이미 욕은 이전 회사에서도 많이 들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는 안 힘든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견딜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지원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다. 지금은 콜을 안 받는 부서로 옮겼지만 콜 받던 5년 전만 해도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울었다. 고객의 불만은 내가 아닌 회사에 있는데 욕을 듣는 난 거기까지 생각하지 하지 않고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다.





내가 존경하는 우리 센터장님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다.

"우리는 회사 대표로 전화받는 입장이니 고객 말을 다 들어줘야 해. 단, 고객이 부모 욕, 가족 욕하면 참지 마."

나는 나한테 하는 욕도 참을 수 없었는데 부모 욕이라니!
이 글을 부모님이 보신다면 가슴 아프겠지만 나도 부모 욕을 안 들어본 건 아니다. 그 당시에는 욕을 들어도 상담사가 먼저 전화를 끊을 수가 없었다. 고객이 어떤 욕을 하든 다 들어야 했고 점심시간, 퇴근시간 지나서까지 전화를 끊지 않으면 계속 통화해야 했다. 지금은 고객이 욕하면 먼저 전화를 종결할 수 있는 제도가 생겼지만 라떼는 전쟁터 같았다.






아직도 생각하면 심장이 벌렁거리는 진상 고객이 있다. 그 당시 많은 학생들이 목숨을 잃었던 안타까운 사건으로 우리나라는 슬픔에 잠겨 있었다. 나는 기계처럼 콜을 받고 있었고 퇴근 무렵 취객의 전화를 받았다. 어떤 불만으로 전화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 머릿속에 아직도 남아있는 건 그 취객의 황당한 말뿐이다.

"너도 그 사건 현장에 있어야 해."

한 달에 한 번 꾸준히 울던 나는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회사를 대신해서 내가 전화응대를 하는 거니 회사에 대한 욕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뭘 잘못했길래 죽어야 하는 거지? 할 말이 없었다. 그때는 통화 중에 묵음을 만들어서는 안 되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애초에 취객을 상대로 상담하는 건 불가능했고 팀장님이 전화를 연결받아  처리해 주셨다. 







이외에도 많은 불만들이 있었지만 꼭 진상 고객은 연달아서 만나게 되는 이상한 법칙이 있다. 스트레스 해소를 하지 못하면 누적되듯이 먹은 욕도 떨쳐내지 못하면 계속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평소와 같이 출근하던 어느 날 지하철 안이 답답했다. 지하철 공기가 탁했던 것은 아니었다. 휴대폰과 패드가 무서웠다. 아니 무서워졌다. 출근하는 사람들이 들고 있는 휴대폰을 볼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분노도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가 매일 상담하던 무선 전자기기들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것이다. 나는 눈을 감거나 종이책에 집중하면서 그 상황을 견뎌내었다.







물론 세상에 그렇게 험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나도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많았다.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물론 회사 정책이 불편해서 화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상담사를 공격하는 욕은 선을 넘는다.
10년 동안 콜센터에 근무하면서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고객들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상담하시는 분들을 많이 보았다. 고객들도 자기 자식들이 좁은 사무실 책상에 앉아 하루 종일 말하고 욕먹고 있다는 걸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근무하는 콜센터 직원들은 진상 고객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마음속 빌며 업무를 시작하고 있을 것이다. 

이전 02화 콜센터에서 욕만 먹는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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