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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미숙 Oct 23. 2021

콜센터, 퇴사를 목표로 입사했습니다.

콜센터 10년 차 만년 대리 이야기

내가 왜 이 자리에 앉아 있는지 모르겠다. 이제 콜센터에 적응해서 이야기를 쓰려고 보니 10년째 출근하고 있다.





나는 통신사 고객센터에 다니고 있다. 회사 이름만 대면 '좋은 회사 다니는구나.'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데, 왜 사람들은 좋은 회사에 불만을 갖고 콜센터로 전화해서 욕을 하는지 모르겠다. 상대방에게 '좋은 회사'라는 단어를 들을 때 얼굴이 굳어지는 건 티 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면 왜 욕먹으며 일하는 콜센터에 입사한 건데? 라는 질문이 들려온다. 콜센터에 다니는 여러 직원분들도 각자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나에게는 콜센터가 지푸라기였다. 20대 초반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부터 작은 무역회사와 한의원에서 일한 적이 있다. 내가 원했던 업무 외의 일을 할당받았고 월급도 적었으며 파벌싸움이 어마어마했다. 심지어 그 회사에서 퇴사할 때 내 성격이면 다른 회사에서도 오래 못 버틸 거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더 콜센터에 집착했다. 여기서 멈추면 내 인생도 멈출 거라는 생각에 열심히 했다.






콜센터는 들어가기는 정말 쉬워도 버티기는 정말 힘든 곳이다.
남동생이 고등학교 3학년 때 콜센터로 취업을 나갔다. 우리 회사 첫 고등학생 기수였다. 나는 이미 앞선 두 개의 직장 때문에 많이 위축되어 있었다. 뭐든 간절했다. 금요일에 면접을 보고 월요일에 출근했다. 면접 내용도 정말 간단했다. 동생의 업무 능력 칭찬이 다였다. 집에 가는 내내 면접장에 뭔가를 두고 온 것 같은 찜찜함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지하철 안에서 합격 문자를 받았다.






"반갑습니다. 고객님, 제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10년 전 입사 당시의 첫인사였다. 나는 남들 앞에서 말도 잘 못하고 상대방이 기분 나쁠까 봐 싫은 티 안 내는 아주 소심한 사람이었다. 지금은 배달 앱을 통해 터치 하나로 주문하지만 그 당시에는 전화로 음식 주문을 했었다. 그 음식 주문 전화도 못 할 만큼 극도로 소심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하루에 100통씩 전화를 받아야 한다니. 일단 합격은 했지만 울고 싶었다. 저 쉬운 첫인사도 못해서 벌벌 떨었다. 퇴근하면 같이 살던 토끼를 붙잡고 첫인사, 끝인사, 공감 표현을 연습했다. TV 속 배우들의 목소리를 따라 하며 신뢰감 있는 나만의 목소리를 만들었다. 그 덕분에 고객들한테 목소리 예쁘다, 믿음직스럽다는 칭찬도 많이 들었다. 드디어 내 직업을 찾은 건가 싶어 그때는 기뻤다.





처음 콜 받는 날, 나는 퇴사를 목표로 근로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조금의 충격에도 깨져버리는 유리 멘탈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항상 대성통곡하였다. 그래도 여기서 그만두면 또 어딜 가야 하나 걱정에 꾸역꾸역 다녔다. 일단 3개월만 참아보자, 1년만, 2년만 하다가 10년까지 왔다. 모든 직장인들이 같은 생각일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 드는 생각은 여기가 아니다 싶을 때 빨리 도망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황금 타이밍을 놓쳤다.






퇴사라는 친구는 그 이후에도 계속 고개를 내밀었다. 연속으로 떨어진 강사 진급 면접, 새로 배정받은 팀원들의 무시, 자궁경부암 판정을 받았을 때, 아픈 것도 서러운데 도움 안 된다고 퇴사했으면 좋겠다는 험담을 들었을 때 등등 이유 같지 않은 이유들로 하루에도 수십 번 퇴사는 나와 하이파이브를 한다.







콜센터는 여기가 처음이라 다른 업종 콜센터의 근무환경이나 복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일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나와 같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많이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씩 퇴사 본능이 툭 튀어나올 때가 있다. 10년째 다니고 있어도 나는 아직 퇴사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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