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제 직장인의 웹 소설 작업 일기
내가, 이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이제 글쓰기가 습관처럼 자리잡혔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웹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난 1년 간은 하루에 3,200자를 채우기에도 너무 바빴다. 그 누구도 매일 글을 써라 묶어둔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삼천이백 자에 집착했다.
매일 나이를 먹어가는데 언제까지 피곤함에 절은 모습으로 회사만 다닐 것인가. 20대 초반에 입사한 회사를 15년 정도 다니고 나니 내 모습이 점점 흐려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언제 희망퇴직 권유받을지 모르는 주) ooo의 ooo 센터 ooo 팀 김 대리가 아닌 '나'를 되찾고 싶었다.
하루에 잠깐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다행히 요즘은 나인 투 식스가 회사 문화에 잘 정착돼서 칼퇴근이 가능해졌다. 라떼는 정말 새벽까지 보고서 쓰다 퇴근해서 두세 시간 자고 다시 새벽에 출근했었는데. 왜 그때 회사에서 탈출하지 않았을까, 억울해하다가도 고정 수입이 있으니까 그나마 지금 마음 놓고 글 쓴다고 생각하니 울렁이던 가슴도 진정된다.
퇴근이 빨라진 만큼 흘러가는 시간을 그냥 두기 싫었다. 20대에 암에 걸리고부터는 더욱더. 오늘 평범하게 사는 하루가 내일은 없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시간은 나에게 소중해졌다. 물론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중요하지만, 나는 시간에 엄청나게 집착한다.
내가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엄마 손잡고 동네 동사무소 작은 도서관에 갔을 때부터 지금까지 책을 읽고 있다. 소심하고 활동적이지 못한 나는 거창한 취미 생활보다 혼자서 조용히 책 읽는 게 너무 좋았다. 책을 읽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신비한 경험을 매일 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항상 작가님들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블로그에 책 리뷰를 쓰고 가끔 작가님들이 댓글을 달아주시면 너무 기뻐서 입을 틀어막기도 했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작가님과 간접적으로 친해진다고 생각하기에 성덕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감히 나는 글을 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글쓰기는 완전히 내 영역 밖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고집스러운 생각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책에 진심인 만큼 나의 알고리즘은 책으로 도배되어 있는데 '원미닛고' 글쓰기 공모전 광고를 보았다. 딱 5,000자만 쓰면 참여할 수 있는 초단편 글쓰기였다.
이쯤 나는 글을 끄적이고 있었지만, 완결을 내지 못하고 묵혀둔 소설이 많았다. 5,000자면 금방 쓸 수 있을 것 같아 쓰기 시작했는데 소설을 완성했다는 기쁨이 대단했다. 덕질하던 학교 선배이자 구 남자 친구, 현 남편을 꼬셔서 결혼할 때도 이런 성취감은 없었는데.
결과적으로 내 소설은 3등을 했고, 상금도 받았다. 상금을 받아서 기쁜 것보다 나도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소설을 완결까지 썼다는 성취감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나는 문예창작과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등단할 정도의 글솜씨도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독자들의 반응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웹 소설 무료 연재를 시작했다. 그 당시 어쩌다 BL에 빠져서 장르도 BL로 선택했다.
나는 숨 쉬듯이 책을 읽기 때문에 글을 쓰면서도 독서는 포기할 수 없었다. 책 협찬을 받고 블로그에 책 리뷰를 올리면서도 매일 소설 한 편을 써 내려갔다.
회사도 가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므로 각 잡고 앉아서 글 쓸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출퇴근 지옥철과 회사 화장실에서 잠깐, 점심시간에 도시락 먹으면서 조금씩 조각 글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 정도 꾸준히 쓰다 보니 글쓰기가 습관으로 자리잡혔다. 이젠 숨 쉬듯 책을 읽고 밥 먹듯이 글을 쓰고 있다. 습관으로 만들기까지의 과정이 정말 즐거웠다. 글을 쓸 때마다 회사에서 묵혀두었던 스트레스가 팡팡 터졌다.
그래서 조금 여유가 생겼다. 이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적어 보고 싶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가벼운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읽었던 책마다 일기를 쓰라고 말했다. 감정 일기의 중요성, 매일 내 이야기를 쓰며 나를 다독이는 행위의 장점을 담고 있었다.
나는 뭐든 쓰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일기 쓰기를 시도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예전에는 예쁜 스티커로 다꾸까지 했었다. 하지만 웹 소설도 출퇴근하는 지옥철에서 겨우 쓰는데 도저히 여유롭게 책상에 앉아 일기를 끄적일 시간이 없었다. 물론 앉아 있을 책상도 없지만.
그래서 브런치에 이렇게 남겨본다. 나름 일기 주제를 잡고 싶어서 '웹 소설 작업 일기'라는 거창한 제목도 붙여보았다. 요즘 내 삶은 웹 소설로 범벅되어 있기에 하고 싶은 말도, 쓸 수 있는 이야기도 이것밖에 없었다.
호기롭게 작업 일기라고 써놓고 실상 덕질 일기가 될 수도 있다. 또는 마감에 쫓겨 찡찡거리는 글이 될 수도 있고.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듯이 속절없이 넘어가는 내 인생의 페이지들을 글로 남겨 놓고 싶다. 그렇게 나를 다독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나침반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