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제 직장인의 웹 소설 작업 일기
작년, 2026년 추석 연휴는 무척이나 길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15년 동안 이렇게 긴 빨간날은 처음 보았다.
10월 3일 금요일 개천절을 시작으로 추석과 대체공휴일을 지나서 10월 9일 목요일 한글날까지 무려 7일이었다. 여기에 금요일 연차까지 사용하면 10일을 출퇴근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난 긴 연휴가 반갑지 않았다. 웹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부터는 출근하는 날이 좋았다. 이게 무슨 미친 소리인가 싶을 거다. 나도 내가 콜센터를 다니면서 이런 생각을 할 줄 전혀 몰랐다. 절대.
언제나 나는 회사에서 탈출하고 싶은 월급쟁이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웹 소설을 쓰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1화에서 나는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다고 말했다. 곧 마흔이 되는 이 시점에서 뒤돌아보면 손에 남아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우울할 때가 있었다.
물론, 매일 출퇴근하는 직장인이기 전에 도서 인플루언서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뚜렷한 결과가 보이지 않아 뜬구름을 잡은 기분이었다. 이것도 물론, 책 살 돈이 없어서 도서관에서 손때 묻은 책을 빌려보던 시절에 비하면 정말 나아지긴 했지만. 내가 원하는 책을 협찬받아서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아무도 읽지 않은 빳빳한 새 책으로.
그럼에도 나는 아직 목말랐던 것 같다. 인프제의 특징 중 조용하게 지내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유명해지고 싶은 감정이 있다고 한다. 나는 유독 후자의 감정이 큰 것 같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싶지만, 앞에 나서는 건 두렵지만 남들에게 근사한 모습을 자랑하고 싶은 그런 감정이다.
이런 복합적인 감정 덕분에 내가 시간을 쪼개고 쪼개면서까지 글 쓰기에 집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럼 나는 어떻게 매일 웹 소설 한 편 3,200자를 쓸 수 있었을까?
나는 서울 변두리에 산다. 매일 경기도민분들과 함께 출퇴근하고 있다. 다들 서울이면 어디든 가까워서 좋겠다, 말하지만 나는 그냥 경기도에 산다고 생각한다. 서울 어디든 가려면 일단 집에서 기본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서울 중심에 있는 회사로 출퇴근하면 왕복 3시간이 소요된다.
도서 인플루언서 활동에 빠져있던 시절에는 출퇴근 시간에 열심히 책만 읽었다. 종이책, 전자책 가릴 거 없이 한 글자라도 더 읽기 위해 엄청나게 집착했다. 그렇게 읽어야 겨우 마감 기간에 맞춰 서평을 작성할 수 있었다. 요즘에는 독서 인구가 줄어들면서 출판사 서평단 활동도 줄어들고 책 협찬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블로그에 투자하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이제는 그 시간에 웹 소설을 쓰고 있다. 한 글자라도 더 쓰기 위해 사람들 틈에 끼어서 엄지를 열심히 움직인다. 얼마나 열심히 썼는지 핸드폰을 받치고 쓰는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움푹 파일 정도다. 엄지가 뻣뻣하게 굳는 건 물론이고.
나는 언제 고장 날지 모르는 1호선을 타기 때문에 항상 업무 시작 1시간 전에 무조건 회사에 도착한다. 이 정도 여유를 가지고 출근해야 마음이 편하다. 이렇게 여유를 가지고 집에서 출발해도 1호선이 멈춰 버리면 업무 시작 후에 도착하는 때도 있었다.
아무튼 불안한 1호선 덕분에 일찍 회사에 도착해서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회사에 도착해서 손 씻고 차를 타고 커피도 준비한 뒤, 전산을 켜고 업무 준비를 싹 마친다. 그러고 나서 출근길에 쓴 글을 쭉 이어서 쓴다. 9시 이후에는 일을 좀 하다가 점심이 되면 가지고 온 도시락을 먹으며 또 글을 쓴다.
업무 중간중간 화장실에 갈 때도 핸드폰을 꼭 챙긴다. 복도를 걸으면서 몇 글자, 변기에 앉아서 몇 글자 끄적인다. 나는 비흡연자이기 때문에 가끔 화장실에 가서 글을 우다다 쓰고 올 때도 있다. 10여 분씩 자리를 비우는 흡연자처럼 나도 글쓰기로 스트레스를 풀고 다시 자리에 복귀한다.
웹 소설을 쓰고 나서 좋은 점도 생겼다. 바로 회사 업무에 딱 집중해서 최대한 빨리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늘어났다. 칼퇴근하고 또 글을 써야 하므로 업무 시간에는 손에 모터를 달고 집중해서 마우스를 휘두른다.
아무리 내가 글 쓰기를 좋아하고 부업으로 웹 소설을 쓰고 있다고는 하지만 1순위는 회사 업무다. 고정적으로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이 있기 때문에 내가 금전적으로 신경 쓰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매달 정해진 날과 정해진 시간에 딱 들어오는 월급이 감사하다.
칼퇴근하고 나서는 집으로 가는 지옥철에서 또 웹 소설을 쓴다. 집에 와서는 밥을 챙겨 먹고 간단히 운동하고 집안일을 한다. 물론 곧 출간을 앞둔 작품이 있으면 먹고 운동하는 것도 사치다. 집에 오면 노트북부터 열고 키보드 두드리기도 바쁘다. 그리고 자기 전에 몇 문장 더 끄적인다.
이렇게 조금씩 비어 있는 시간에 글을 쓰다 보면 얼추 3,200자를 채울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나는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작가님들이 너무 부럽다. 나도 주말에는 식탁에 노트북 켜놓고 글을 쓰는데, 평일보다 훨씬 글을 빨리 많이 쓸 수 있었다. 나는 집중력이 높고 정적인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앉아서 글 쓰는 일이 잘 맞는다.
지금 사는 집은 좁아서 따로 책상을 놓을 공간이 없다. 해서 식탁이나 침대에서 조금씩 글을 쓰고 있다. 나도 언젠가 집을 사면 작더라도 나만의 책상을 꼭 마련할 것이다. 그렇다고 책상이 없어서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물론 있으면 작업하기 정말 편하겠지만. 일단 글을 쓸 수 있다는 거에 감사하다.
이렇게 생활한 지 3개월 정도 되니 습관으로 자리 잡혀 지금은 크게 힘들지 않다. 나는 여전히 시간의 빈틈을 찾아서 글을 쓰고 있고 이렇게 쓴 웹 소설로 벌써 네 개의 작품을 계약했다. 심지어 장편 소설이다. 웹 소설 작가로 데뷔한 지 이제 반년 조금 넘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결과다.
무려 1년 전만 해도 내가 감히 작가를? 그것도 BL 웹 소설을? 4개나 계약을 했다고?
여전히 나는 나의 행보가 놀라울 뿐이다.
꼭 글쓰기가 아니더라도 무언가 하고 싶다는 의지만 있다면 나처럼 그냥 무심코 보내는 시간을 끌어모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유명하지는 않아도 내 글을 읽고 즐거워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작가가 되고 싶었다. 내 글을 읽고 피식 웃을 수 있다면, 기분 전환이 될 수 있다면, 무언가 하고 싶은 용기가 생긴다면. 이런 이유로 나는 꾸준히 글을 쓸 것이다.
회사에 15년을 다니면서 슬럼프도 겪고 매일 퇴사를 중얼거리며 다녔지만 글 쓰기를 시작하고 나서 완전히 바뀌었다. 매일 출근하는 날이 즐거울 정도다. 아직은 내 시간을 갈아서 회사 일을 하고 월급을 받고 있지만 언젠가 전업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을 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거대한 희망을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