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종 Oct 22. 2021

마음





 여름이라는 섬(Leave Me in Summer)



 12. 마음



 멀리 보이는 전경부터 카페는 심상치 않았다. 버섯 모양으로 쌓은 지붕과 황토로 칠해진 둥근 벽, 옆으로 이어진 울타리까지 마치 건물은 카페가 아닌 오두막처럼 보였다.

 “호빗들이 사는 곳 같아.”

 “그러게.”

 “신기하게 생겼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성현이도 카페 건물을 보고는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좁다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세 사람의 탐험객이 일렬로 줄지어 카페의 문을 열었다.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나타난 노란빛의 인테리어가 어리숙한 세 손님을 맞이했다. 왼쪽으로 돌아서자 붉은 테이블보를 씌운 탁자 위에 진열된 흰 도자기 찻잔들이 보였다.

 잔들은 저마다 조금씩 무늬가 달랐다. 어느 것은 붉은 줄무늬에 흰 점을 찍어 겨울 느낌이 나게 했고 어느 것은 진청에 가까운 푸른빛을 넣어 예스러운 기운을 가져다주었다. 찻잔에 마음이 간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다.

 “너무 예쁘다.”

 서혜는 어울리지 않게 허리를 구십 도로 굽히고 반짝이는 눈으로 찻잔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나도 양손을 허벅지에 대고 몸을 굽혀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이거 어때?”

 내가 가리킨 잔은 입이 닿는 부분 아래로 푸른빛이 칠해져서 막 어둠이 물러간 새벽하늘처럼 보였다. 그녀도 이 느낌을 알까.

 “밤하늘을 보는 것 같아요.”

 나쁘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녀가 하나를 골랐다.

 “저건 어때요?”

 노란 격자무늬가 들어간 엄지손가락 높이의 작은 찻잔이었다. 따뜻하면서도 약간은 불안한 색감. 차가운 느낌이 드는 도자기의 표면에 입힌 노란 줄무늬는 묘하게 정적이면서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는 기분까지 들게 했다.

 “이런 느낌을 좋아하는구나.”

 “어떤 건지 알겠죠.”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네. 원래 포근한 컬러인데 자기에 칠해져 있으니 한결 차갑고 가볍게 느껴져.”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어릴 때 매던 유치원 가방처럼 보이지 않아요?”

 뜬금없는 이야기에 당황했지만 그녀가 받은 느낌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가요. 성현이가 자리를 잡아 놨어요.”

 가게에서 반 층을 내려가면 나오는 수목실 앞 테이블에 그녀가 앉아 있었다. 그곳에서 걸어오는 내 쪽을 향한 그녀의 종아리는 초여름 연잎 줄기처럼 얇고 부드러웠다. 약간은 혼란스러운 감정에 어디선가 풍겨온 향기가 코끝을 찔렀다. 닫힌 공간이라 그런지 밖보다도 짙은 꽃향기가 느껴졌다.

 “이거 능소화예요.”

 “아는 꽃이야?”

 “꽃에 얽힌 이야기가 있는데 기억이 안 나네요.”

 “인터넷으로 찾아볼까?”

 “그럴 필요까지야. 여기서 보면 되지.”

 말을 마친 성현이가 갈고리처럼 구부러진 꽃의 줄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잠시 꽃을 향해 돌아간 그녀의 목덜미를 보다가 덩달아 눈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신기하게 생긴 꽃이었다. 창틀 위로 넘어온 꽃줄기는 공중이 아닌 아래로 뻗어 있었고, 꽃은 다시 줄기에서 양옆으로 두 가닥씩 삐져나와 하늘을 보고 봉오리를 펼쳤다. 얼핏 보면 징그러워 보이는 꽃줄기는 창밖에서 내려온 동아줄 같기도 하고 봉오리를 매단 옷걸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신기하게 생겼다.”

 “어떻게요?”

 “보통은 가지가 옆으로 뻗고 군데군데 줄기가 나와 꽃을 피우잖아. 그런데 이건 줄기가 치렁치렁 늘어져 양 갈래로 꽃을 나누어 피우네.”

 그러자 성현이도 조금 더 세심하게 꽃을 살피기 시작했다. 마치 이 말을 듣기 전에는 그 꽃을 보지 못했던 사람처럼.

 “나는 이 꽃을 안다고 생각했었나 봐요. 방금 그 말을 들으니 그렇게도 보이네.”

 칭찬처럼 들렸지만 혼잣말을 한 걸지도 몰랐다. 방금 그녀가 한 말이 질문일지 대답일지를 생각해보며 가만히 꽃을 보았다. 생전 처음 알아본 꽃이었고 그것만으로도 이곳에 온 보람이 있었다. 이 말을 그녀에게 해주자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걸로 마실 거죠?”

 카운터 앞에서 메뉴를 보던 서혜가 우리를 향해 손짓했다. 성현이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 꽃을 보았고, 나만 서혜를 향해 익숙한 몸짓으로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차에서부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노래 삼아 부르던 서혜의 모습이 떠올랐다. 찻잔에 받으려면 따뜻한 걸로 주문해야 할 텐데. 가벼운 걸음으로 돌아오는 서혜를 보니 이미 늦은 듯했다.

 “가게 안이 넓대요. 한번 돌아볼래요?”

 “너는 어때?”

 “둘이서 다녀와요.”

 세 사람이 다닐 때의 안 좋은 점이 여기 있었다. 둘은 한 쌍이 되지만 하나는 홀로 남아야 한다는 것. 우리는 성현이를 남겨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페 가운데에는 이 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수목실로 내려가는 문이 보였다. 서혜가 앞장서서 계단을 올랐다.

 “여기도 정원이네요.”

 우리가 카페라고 생각한 그곳은 크고 작은 화분들이 가득한 미니 정원이었다. 다락방을 거실 넓이로 펼치고 그 안을 식물과 꽃이 가득한 화분으로 채운다면 아마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삼단으로 설치한 받침대 위에 올려진 네모 모양의 기다란 화분들. 그것들 속에는 잎이 두툼하고 끝은 뭉툭해서 마치 찰흙으로 빚은 듯한 식물도 있었다.

 그녀와 내가 서로 다른 모양의 화분을 가리키며 이것이 저것이 마음에 든다고 소리칠 동안 아래층에 있던 직원은 위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걱정되었는지 계단 위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 세 바퀴쯤 돌자 처음 올라올 때의 흥분은 가라앉았고 우리는 다른 곳을 탐험하자는데 마음이 일치했다.

 내려오니 성현이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그녀에게 말을 걸까 고민했지만 옷깃을 잡아끄는 서혜의 손에 이끌려 곧장 수목실로 향했다.

 유리문을 열자마자 훅하고 들어오는 따뜻한 바람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벽에 늘어진 담쟁이넝쿨이 목걸이처럼 수목실을 에워싸고 있었다. 내가 수풀 가운데 섰을 때 그녀는 한 걸음 옆으로 떨어져 넝쿨 아래에 쪼그리고 있었고, 그런 그녀의 얇은 뒷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서혜와 있을 때 나는 자연스러웠다. 말도 잘 통했고 서로를 불편하게 하지도 않았다. 이따금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관계를 더 소중하게 만들 것이었다. 그녀가 나를 향해 손짓했다. 나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따랐다.

 “너무 좋지 않아요?”

 “괜찮다. 우연히 왔는데 좋은 곳을 찾았어.”

 “사진 한 장 찍어요.”

 좁은 화면으로 들어가기 위해 그녀가 내 쪽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내 이마의 한끝과 그녀의 머리칼이 맞닿으며 나온 미소가 그녀의 휴대폰 카메라에 담겼다.

 “잘 나왔네.”

 “잘 나온 거야?”

 “조금만 손대면?”

 내가 웃음을 터뜨리고 그녀가 옅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미 속으로 어떻게 보정할지 계획하는 듯했다.

 돌아가던 나는 반 층 위의 창틀 밖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성현이의 눈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곳에서 우리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다시 그녀가 창틀 너머로 고개를 돌렸다. 방금 그녀가 보던 건 꽃이었을까.

 성현이와 있을 때 나는 자연스럽지 않았다. 우리는 조금 어색했고 서로를 불편하게 했다. 그녀는 다소 피곤한 타입에 속했다. 처음 봤을 때의 모습 그대로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녀에게 많은 신경을 쏟고 있었다. 그녀를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말을 건네고 행동을 조심스럽게 했다. 그녀의 필요를 충족시킨 만큼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심지어 무엇을 싫어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머리는 서혜를 가리켰지만 어느새 마음은 성현이를 향하고 있었다.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어디서부터 이렇게 꿰인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서혜와 함께 유리문을 열고 테이블로 돌아왔다. 마침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서혜가 일어서자 자리에 남은 우리는 말없이 각자의 앞에 놓인 차가운 커피잔만 만지작거렸다.

 “서혜 어때요?”

 왠지 모르게 불편했다. 그녀가 그 이야기를 자기 입으로 꺼내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괜찮지. 왜?”

 짧은 대답에 그녀가 탁자 아래로 눈을 깔았다. 그녀는 내 앞에서 기죽을 필요가 없었다. 약점은 내게 있었고 그녀는 잃을 것이 없었다. 그게 내 생각이었다.

 “서혜는 오빠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나는 너를 더 좋아해.”

 머리를 거치지 않고 나온 대답이었다. 어느새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 있었다. 방금까지 보이던 풀 죽은 듯한 태도는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뒤였다. 대신 그녀의 눈동자 속으로 차오르는 감정은 뜻 모를 안도와 자신만만함이었다.

 이 모든 과정을 목격하면서도 나는 내가 한 말의 여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순간 말을 무르고 싶었지만 그녀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뭐라고 했어요?”

 방금 한 말을 반복하라는 요구를 나는 거절하지 못했다.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답이 정해진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다.

 “너를 더 좋아한다고.”

 “어젯밤 서혜가 말했어요. 오빠가 마음에 든다고. 진지하거나 확정적인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내 마음은 다를 수도 있지.”

 그녀가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거짓말을 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까만 해도 머리는 서혜를 원하고 마음은 성현이를 그린다 생각했는데 이미 모두가 정반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사실 나는 서혜를 더 좋아하는 게 아닐까.

 “오빠가 서혜한테 마음이 있는 줄 알았어요. 그날 목장에서 처음 본 순간부터.”

 그녀의 눈은 정확했다. 그래서 나는 변명하고 싶었다.

 “서혜도 예쁘지.”

 그 말을 들은 성현이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런데, 나는 네가 더 마음에 들어.”

 두려웠다. 그녀가 이유를 물어올 게 두려웠다. 어쩌면 그녀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더라면 나는 서혜에게 마음이 가지 않았을까. 내가 정말 원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알았어요.”

 그녀는 더 묻지 않았다. 이유를 묻지 않는 게 이상했다. 이윽고 화장실에서 나온 서혜가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돌아오자마자 테이블을 둘러싼 어색한 분위기를 감지한 듯했다.

 “무슨 일 있어요?”

 “아니.”

 “오빠가 너 예쁘대.”

 서혜의 얼굴이 빨개졌다. 나는 성현이를 보았다. 그녀도 나를 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다음에서 계속

이전 11화 작은 실타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