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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종 Oct 25. 2021

진실 어린 것





 여름이라는 섬(Leave Me in Summer)



 13. 진실 어린 것



 반대편으로 돌아누운 그녀가 푸념하듯 말했다.

 “나는 가슴이 작아.”

 “별로 신경 안 써.”

 여전히 그녀는 불편해 보였다.

 ‘크다고 해야 했나.’

 하지만 작은 걸 크다고 할 수는 없었다.

 “충분히 커.”

 그녀의 표정이 더 불쾌해졌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됐어.”

 아무튼 나는 할 일을 했다. 뾰로통한 얼굴의 그녀가 얼마 안 되는 가슴을 가릴 동안 나는 그녀의 배로 내려갔다. 그녀의 몸에는 군살이 없었다. 별다른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그녀는 마르고 탄력 있는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너 아침 안 먹지.”

 “거의?”

 “서혜가 먹을 동안 너는 아무것도 안 먹더라.”

 “서혜는 아침 꼭 챙겨 먹지. 왜? 밥 먹는 모습이 예뻐 보였어?”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그녀는 내 머릿속에 자기의 생각만 깃들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서혜라는 단어가 지금 이곳에서는 잠시도 나오지 말아야 한다고 여기는 듯했다.

 나는 그렇게까지 할 마음은 없었다. 오늘 우리가 한 침대에 누운 까닭은 서로에게 먼 미래를 약속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가 나를 부르지 않았나. 나는 그것에 응한 것뿐이다. 스스로 속옷을 내리게 만든 성욕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배꼽 주위를 맴돌던 내가 그녀를 올려다보자 살며시 손을 들어 가슴을 보여주었다. 그녀와 눈을 마주한 채 오른손을 내밀어 그녀의 가슴을 만졌다. 그대로 건반을 누르듯 손끝을 움직였다.

 “가슴 만지는 게 좋아?”

 “별로? 나는 아래가 더 좋아.”

 “그럼 아래에서 해줘.”

 잠시 침대에서 일어나 탁자에 놓인 생수병을 집어 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고 나만 두 모금을 더 마셨다. 그녀가 무릎을 세워 다리를 벌렸다. 문득 돌아 나올 수 없는 길로 빠져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엎드려 눈을 떴지만 그녀의 얼굴은 봉긋한 가슴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리 작은 가슴은 아니었다.

 ‘네 가슴 안 작아.’

 괜히 화만 돋울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왼손으로 그녀의 아랫배를 밀어 올리자 그곳이 더 자세하게 보였다. 나는 그들을 일일이 구분할 수 있었다. 그녀도 알고 있을까. 그녀는 자기가 느끼는 감각이 어디에서 오는지 구별할 수 있을까. 자기가 나눌 수 없는 감각이라면 내가 그들을 일일이 나누어 핥아 내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녀를 아프게 할 게 두려워 나는 혀끝의 힘을 뺐다. 그녀도 더한 걸 요구하지는 않았다. 무언가 부족한 섹스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나는 그녀가 더 구체적으로 요구해주기를 바랐다.

 “언제 넣을 거야?”

 저것이 빨리 넣어달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자기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그녀는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느껴야 할 사람이 모른다면 이토록 애를 쓴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필요한 걸 알지 못한다면 부족함도 모르리라.

 “좋아?”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확신하지 못했다. 겨우 이게 끝일 리 없었다. 길을 알려주어야 할 그녀는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아마 부족하다는 감정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미 내 쾌락에 이르는 길을 잘 알고 있었다.

 “오르가즘 느껴본 적 있어?”

 “모르겠어.”

 맥이 풀렸다. 그럼 없는 것이다.

 “넣을 거야?”

 “응.”

 “콘돔 끼고 넣어.”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녀와의 섹스에 조금 흥미가 떨어졌다. 내 즐거움에 이르는 길은 쉬웠다. 나는 그 길을 잘 알고 있었다. 나만 혼자 달리는 모양새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걸 아는 여자와 함께 갈 줄은 알았지만 그걸 모르는 여자를 그곳에 이르게 하는 방법은 알지 못했다.

 혼자라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우리의 엉덩이가 밀착하자 그녀의 입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들렸다. 나는 그 소리가 지어낸 것인지 진실 어린 것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다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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