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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종 Oct 27. 2021

바다가 보이는 네모난 창





 여름이라는 섬(Leave Me in Summer)



 14. 바다가 보이는 네모난 창



 점심을 먹기 위해 방문한 곳은 해안 도로에 있는 한 전복 요릿집이었다. 도착하기 전 우리는 바닷가에 닿은 현무암 암석 지대가 뻘밭처럼 넓게 펼쳐진 광경을 보았다. 갓길에 차를 댄 사람들 몇몇이 암석 위를 걸어 다니며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뛰어나갈 듯한 표정으로 서혜가 나를 불렀지만 빨리 식사를 마치고 오는 게 좋을 듯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순서가 밀려 한참을 기다려야 할지도 몰랐다.

 성현이는 아무런 의견이 없었다. 그녀는 자기를 불편하게만 하지 않으면 괜찮은 것 같았다. 어미 새가 품어야 할 듯한 커다란 알 하나를 끼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들어가 보니 다행히 대기 번호 2번을 받아 순서를 기다릴 수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차에서 내려 앞서 해소하지 못한 욕구를 경계석 옆에서 찍는 셀카로나마 달래려는 서혜의 모습이 보였다.

 당연히 곁에 있어야 할 성현이가 보이지 않았다. 큼지막한 바윗돌로 만든 계단을 따라 차 쪽으로 가보니, 아까만 해도 금방 내릴 것처럼 보이던 성현이는 여전히 차 안에 혼자 앉아 있었다. 그녀의 반대편으로 가 문을 열었다.

 “하늘도 맑고 바람도 선선한데 왜 안에만 있니.”

 쥐고 있던 휴대폰을 쓱쓱 문지르더니 그녀가 내릴 준비를 마쳤다. 트렁크 쪽으로 나오자 굼벵이처럼 느린 속도로 그녀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서혜를 만나 성현이를 애처럼 키우는 게 가장 보기 좋은 그림이 될 것 같았다. 내가 입은 티셔츠의 허리춤을 꼬집더니 그녀가 바로 손을 거두었다.

 뭐라 말하기 어려운 모양의 구름이 천천히 하늘 위를 지나고 있었다. 이곳보다도 바람은 높은 데서 더 세게 부는 듯했다. 저게 수증기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어떻게 저런 모양으로 뭉쳐 다니는지는 알지 못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게 아닐까. 그에 비하면 우리의 걸음걸이는 한없이 느렸다. 셀카에 여념이 없는 서혜에게 다가가자 그녀가 우리를 향해 돌아섰다. 내 뒤에 있던 성현이가 빠른 걸음으로 튀어나오더니 그녀에게 달려가 안겼다.

 “윤진이 오빠가 나 괴롭혔어.”

 어이가 없었다.

 “왜 우리 성현이 괴롭혀요.”

 그녀가 장난이라는 걸 안다는 듯 시늉하며 나를 혼냈다.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 전개라 나는 맞장구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어버버 말을 흐렸다. 재미없다는 사실을 알아챈 성현이가 바로 분위기를 바꾸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찍어줄게. 오빠랑 같이 서봐.”

 엉거주춤 그녀의 왼쪽으로 가 섰다. 여기저기 짝지어 온 커플들이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도 그들처럼 보일 게 못내 신경 쓰였다. 이곳의 나는 이상한 존재였다. 커플도 있었고 친구들끼리 온 여자애들도 있었다. 남자끼리 와서 헌팅을 노리는 녀석들도 있었다. 나처럼 혼자 와 제주도를 배회하다가 두 사람 사이에 끼인 듯한 남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웃어 봐요.”

 “왜 안 웃어요.”

 옆에 선 서혜가 협박하듯 어깨를 밀쳤다. 금방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진을 찍은 그녀가 서혜에게 휴대폰을 돌려줬다. 서혜가 그걸 잡으려는 찰나 내가 먼저 손을 뻗어 휴대폰을 낚아챘다.

 “둘이 서봐. 내가 찍어줄게.”

 “우리는 많이 찍었는데.”

 “아녜요. 우리도 여기서 한 장 남겨야지. 하늘 정말 예쁘다.”

 서혜가 나와 그녀를 찍어주려 했지만 그녀는 서혜를 달래며 말을 돌렸다. 나는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선 모습을 찍은 뒤 서로의 허리에 팔을 감은 포즈로 한 장을 더 찍었다. 이 사진이 둘 사이에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지는 미지수였다.

 찌릿한 전파음과 함께 우리를 호명하는 앰프 소리가 들렸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이미 자리는 만석이었다. 갓 테이블 정리를 마친 직원 하나가 서둘러 우리 앞을 지나고 마이크를 든 왕고가 창가 쪽 자리를 손짓으로 가리켰다. 저리로 가나보다 하며 서혜가 앞장서 걸었다.

 “아예 말도 안 해주네.”

 “어떤 말이요?”

 “저 자리로 가라고.”

 “뭘 그런 걸 기다려요. 알아서 앉으면 되지.”

 “장사 엄청 잘 된다.”

 “돈 많이 벌겠다, 그지.”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서 나는 싫어.”

 “누가 주기라도 한대?”

 둘이서 깔깔거릴 동안 나는 메뉴를 살폈다. 돌솥밥 하나씩과 전복구이 중짜면 충분할 듯했다. 어차피 일 인분을 제 몫으로 먹는 사람은 나와 서혜뿐이었다. 주문을 마치자마자 두 사람이 내 쪽을 향해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좀 비켜봐요.”

 돌아보니 바다가 보이는 네모난 창을 내어 마치 액자를 건 듯한 인테리어를 만든 가게였다. 잠자코 두 사람이 시키는 대로 방해가 되지 않게 한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러자 옆자리에 앉은 여자들의 식사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들이 주문한 것도 우리와 같았다. 한 사람당 돌솥밥 하나씩과 가운데 놓인 전복구이 대짜.

 ‘둘이 와서 많이도 먹네.’

 혹시 얘네가 나와 먹는 바람에 별말하지 않은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중짜로 주문해도 괜찮아? 아까는 안 물어봤는데.”

 “괜찮아요. 어차피 넌 많이 안 먹잖아.”

 “나는 밥만 먹어도 배가 찰걸? 아마 밥도 다 못 먹을 거야.”

 안도하려는 순간 성현이가 나와 옆 테이블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시계추처럼 움직이는 그녀의 눈동자는 전날 펜션에서 화장을 하며 곁눈질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분명 나를 공격하려는 것이리라. 이번에는 같은 방식으로 당하지 않겠다 다짐하며 선수를 쳤다.

 “그렇게 입고 다니면 쌀쌀하지 않아?”

 뜻밖의 질문에 그녀가 잠시 생각하더니 바로 대답을 내놓았다.

 “괜찮은데. 아니, 그동안 이렇게 입고 다닐 때는 아무런 말도 안 했잖아요.”

 “이제야 조금 관심을 기울여주시나 보다.”

 억울했다. 둘이서 구시렁대며 대화를 나누더니 다시 그녀가 옆 테이블을 쳐다봤다. 한 번 더 선수를 쳐야 했다.

 “너네는 오늘 오후에 어디 갈 거야?”

 “오후에는 오빠랑 안 다닐 거예요.”

 철벽을 치는 서혜가 성현이의 왼팔을 때리며 웃었다. 뭔가를 말하려던 성현이가 울상을 지으며 서혜를 쳐다봤다.

 “아파.”

 “미안해.”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웃고 떠들며 팔 한번 때린 걸 가지고 십 분을 더 이야기했다. 그 모습을 보는 나로서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결국 성현이는 말할 타이밍을 잡고야 말았고 별수 없이 대답할 준비를 해야 했다.

 “옆 테이블은 왜 봤어요.”

 “저기도 둘이 왔네. 오빠는 둘이서 온 여자애들만 노리나 보다.”

 “정말 그래서 쳐다봤어요? 갈아타려고?”

 이건 이길 수가 없었다. 처절하게 패배하는 게 나은 싸움이었다.

 “아니야. 너네를 처음 봤을 때도 그런 마음은 아니었어.”

 “그럼 우리가 아니었어도 그렇게 도와줬을 거예요?”

 빌어먹을.

 “너네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말을 걸지도 않았을 거야. 말만 보다가 돌아갔겠지?”

 서혜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성현이도 애써 웃음을 참고 있었다. 무표정을 유지하며 공격을 이어가려던 성현이가 결국 포기하고 서혜와 함께 웃었다. 다행히 때맞춰 돌솥밥이 나왔다. 수저를 놓기 위해 무심코 고개를 들자 두 사람 뒤편에 앉은 한 커플의 앉은 모습이 보였다. 내 쪽으로 등을 돌린 여자는 허리가 다 드러난 새하얀 탱크톱을 입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내 시선을 놓치지 않던 성현이가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그새를 못 참고.”

 궁금증에 돌아본 서혜가 바로 상황을 알아차리고 웃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웃음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놀라 쳐다보자 서혜는 손을 입에 넣다시피 하며 억지로 웃음을 참아냈다.

 한심하다는 듯한 눈으로 그녀가 나를 보고 있었다. 정말로 그런 게 아니었다.

 “얘들아.”

 “밥 먹어요, 얼른.”

 “자리 바꿔줄까요?”

 간신히 말을 꺼낸 서혜가 자기가 한 말에 더 즐거워하며 끅끅거리며 웃었다.

 “얼마나 불편하겠어. 눈도 제대로 못 가누고.”

 “시선 처리가 중요하기는 하지. 그거 조심 안 하면 바로 경찰서예요. 오빠는 특히 조심해야겠다.”

 “고맙다.”

 잠자코 빈 그릇에 돌솥밥을 퍼담던 성현이가 지나가는 듯이 서혜에게 말을 걸었다.

 “너 탱크톱 하나 가져오지 않았어?”

 “그렇긴 하지. 그런데 그걸 왜 지금?”

 “아니 뭐, 그렇게 원하면 한번 입어줄 수는 있으니까.”

 “아니 난 그럴 생각이 없는데?”

 시큰둥한 성현이의 대답에 놀란 서혜가 잠시 그녀를 쳐다보더니 다시 웃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내 얼굴은 벌게져 있을 게 분명했다.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뒤이어 전복구이가 나오자 성현이가 살며시 내 쪽으로 접시를 밀어주었다.

 “많이 먹어요, 오빠.”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 보냈지만 그녀는 여유만만하게 내 시선을 흘려보냈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그녀의 압승이었다. 생각해보니 전의 어디에서도 내가 이긴 적이 없었다.

 항상 지기만 하지는 않으리라. 전세가 역전될 날이 곧 올 것이다. 씩씩거리는 콧김을 내뿜으며 밥을 먹었지만, 이미 둘은 나한테 신경을 끈 상태였다. 자기들끼리 수십 번은 더 했을 이야기들을 다시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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