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혼했습니다.

#16

by Liz


우리는 그 뒤로 수없이 많은 대화를 나눴다. 신기하리만큼 티키타카가 잘 되는 사람이었다.

내가 먼저 좋은 감정을 가지고 다가간 사람이기에 그의 감정의 속도는 나와 많이 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그는 내 속도 이상으로 나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당황스러운 감정보다는 그저 내 몸속에 강한 에너지가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아마 예전부터 이렇게 만나게 될 인연이라 여겼다.


서로의 삶이 궁금했고 서로의 생각이 궁금했기에 우리의 대화창은 숨이 마를 날이 없었다. 그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나의 지난 삶과 현재의 삶까지 우리는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눴다.


회사에서 업무를 하면서도 도저히 일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새로운 일보다는 기존에 해왔던 일들을 주로 했다. 업무상 실수가 일어나면 안 될 것이다.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내 몸이 기억하는 일들을 해야 한다. 내 머리가 생각을 해야 하는 일들은 잠시 접어두는 시기다. 또 어차피 해야 할 일들이니 잠시 우선순위를 미뤄두는 것일 뿐이며 모두에게 민폐인 일은 아닐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서로 이혼의 아픔이 있어서였을까. 서로 아이를 양육하고 있다는 공통분모가 있어서였을까.

한편으론 왜 이렇게 대화가 잘 되는지 그저 신기하고 재밌었다. 우리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가 궁금했다. 내가 가진 호감 이상으로 나에게 호감을 표현해 주는 이 사람의 모든 것이 궁금하다.


'세연씨 점심시간이네요.

점심 뭐해요?'


'아 저는 오늘 좀 피곤해서 직원휴게실 왔어요.

눈 좀 붙이고 이따 간단하게 챙겨 먹으려고요.

점심 뭐 할 거예요?'


'아 저는 지금 헬스장 왔어요.

운동 끝나고 아마 샌드위치 먹을 것 같아요.'


앗.. 이 사람 운동에 진심인 것 같았는데 운동 중에 연락이 왔다. 이건 확실한 그린라이트가 아닐까. 그렇다면..


'오..? 지금 그럼 30초 쉬는 시간에 저한테 답장 주신 건가요..?'


'맞습니다. 1분 남았네요.'


우습지만 이때였다. 내가 그의 마음을 확신한 순간이. 운동에 진심인 그가 운동 중에도 나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그걸 알게 된 그 순간에 그저 딱 좋은 기분이 들었다. 좋았다. 내 마음도 같이 들떴다.

우리 둘의 아이가 모두 잠들고 난 밤 열한 시.


열한 시가 되면 나는 결혼 전 어리고 어렸던 20대 이세연이 되었다. 타임슬립처럼 나는 과거로, 이세연으로 돌아가 과거의 준영씨를 만나곤 했다. 그와의 대화창을 열 때면 나는 나 혼자만의 세계에 들어갔다. 그렇게 앞으로도 나는 오롯이 나로 그를 만나고, 그리고 그가 오롯이 그로 나를 만나길 바랐던 것 같다.

우리가 대학교 때 만났으면 어땠을지 상상도 해보고 그의 첫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질투도 했다. 언제였을까. 이런 감정을 느껴봤던 것이.


결혼 후 이런 설렘은 앞으로 평생 가지지 못할 줄 알았다. 사실상 나에겐 미래의 설렘과 평생의 내 편을 만나는 것을 맞바꾸는 것이 결혼이었다. 내가 설렘과 바꿨었던 안전함. 그 안전함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어찌 되었건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여겼던 설렘이 다시 내게 왔다. 그리고 그 설렘 속에서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애틋한 첫사랑을 다시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리 만나서 얘기할까요?'


가슴이 폭발할 것 같은 그 문장에 나는 지한이 엄마가 아닌 여자 이세연이 되었다. 동시에 그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며 내가 밸런스를 잘 지킬 수 있을까 두려워졌다.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