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그가 집 앞으로 나를 데리러 왔다.
'경비실 맞은편에 있어요.
회색 그라파이트 세단이에요.'
지하 2층 엘리베이터 문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지하주차장 밖 저 문을 나가면 오른편에 준영씨가 있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평소처럼 샤워를 한 뒤 평소보다는 열심히 화장을 했다. 보통의 준비시간보다 30분은 더 걸렸다. 준영씨에게 조금 더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가 나를 예쁘게 봐줬으면 한다. 그가 내게 한눈에 반했으면 한다.
비록 나는 서른 후반의 이혼녀지만 누군가를 설레게 할 수 있는 모습이면 좋겠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그렇다고 요즘 같은 세상에 많은 나이도 아니다. 그리고 뜨겁게 사랑하기에도 아직 적당한 나이라 믿고 싶다.
아직은 추운 날씨. 내 손에는 고이 접은 옅은 베이지색 목도리가 들려있다. 주차장 오른편으로 나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니 화면에서 보던 준영씨가 그라파이트 색깔의 차 옆에서 나를 보며 서있다. 긴 회색 코트를 입고서 멀찌감치 나를 보고 부드럽게 웃어준다. 차마 고개를 못 들겠다. 너무 부끄러워 오른손에 잡혀있던 애꿎은 베이지색 목도리로 얼굴을 반쯤 가렸다.
'춥죠?'
그가 말했다.
내 검은색 앵클부츠는 자연스럽게 그의 차 조수석으로 향한다. 차 문을 열어주는 그의 손을 바라보며 그 손에 대고 고맙다고 말한 뒤 어색하게 그의 차 조수석에 앉아버렸다. 부드럽게 그리고 완곡하게 닫히는 차문소리를 먼저 들었고 반대편으로 돌아오는 그의 움직임을 느꼈다. 비로소 내 옆자리에 앉은 그를 정면으로 마주하기가 어려웠다. 낯을 많이 가리는 어린아이처럼 그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다. 베이지색 목도리가 손에 들려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했을지 상상도 안된다.
그의 차는 미리 말했던 후암동으로 향했다.
지금은 오후 4시. 차 한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기에 좋은 시간이다.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앉아 적당한 공간에 차를 대고 가파른 계단길을 올라왔다. 살짝 버거울 정도로 숨이 찼다.
'우리 조금 천천히 갈까요?'
조금은 달뜬 내 목소리.
나를 돌아보는 준영씨를 바라보며 그의 시선이 내게 꽂히기 전에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니 선생님 걸음이 너무 빠른 거 아니에요? 저 힘들단 말이에요.'
가볍게 투정 부리는 내게 그는 미안하다며 멋쩍게 웃는다.
우리는 후암동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카페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좁은 공간이었기에 그의 허벅지가 내 허벅지에 살며시 닿았다. 적당한 긴장감과 텐션을 유지한 채로 우리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서로의 첫인상 이야기를 나누고 커피 취향 등 가벼운 이야기를 나눈 후에 그가 슬며시 내게 물었다.
'물어봐도 돼요? 지한이 아빠와는 왜 헤어졌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