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겨울 방학 시즌에 이현이는 엄마와 함께 일주일간 홍콩 여행을 간다.
이현이 없이 집에 혼자 있으면 심심할 것 같다며 준영씨는 혼자 일본 여행을 계획했다고 했다. 그 후에 나에게 디엠이 왔고 우리는 이렇게 커플이 되었다.
우리는 매일 저녁 아이를 재우고 나면 통화를 하곤 했다.
준영씨와 연락을 시작한 후 나는 좀비가 된건가 싶었다. 평소와 다르게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예전에는 너무 피곤해서 지한이를 재우다가 같이 잠이들기 일쑤였다. 그런 내가 잠이 오지 않다니 새삼 호르몬의 영향력에 놀라운 요즘이다. 그리고 그렇게 먹는걸 좋아하던 나였는데 식욕이 완전히 사라졌다.
잠도 못 자고 먹지도 않으니 살이 많이 빠지기 시작했는데 막상 회사 사람들은 무슨 좋은 일이 있냐고 묻는다. 이차장 무슨 일 있냐며 얼굴이 좋아졌다고 화사해졌다고 말이다.
열애 사실을 알고 있는 몇몇 친한 친구들은 그동안 힘들었던 일들을 보상받는 거라며 지금을 있는 힘껏 즐기라고 한다. 얼굴 피는 데는 연애가 최고라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피부과보다 연애가 더 효과가 좋은지 이제 알았다고 목소리를 높여 깔깔 웃는다.
잠을 며칠째 제대로 못 자는데도 피곤하지 않다. 그냥 준영씨만 생각하면 즐겁고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요즘은 이혼을 해서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합법적으로 다시 설렐 수 있다는 건 혼인이 정리되지 않고서야 손가락질받는 불륜이었을 테니.
머릿속은 온통 준영씨 생각뿐이었고 그 외는 별다른 게 없었다. 20대로 돌아간 것처럼 나는 조건 없이 설레는 사랑을 하고 있다. 지한이와 같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 나 혼자 있을 때는 오로지 그의 생각뿐이다. 대체 이런 삶이 가능했던 것이라니. 여자 이세연이 다시 주인공이 되는 삶이 가능했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새벽녘 그가 말한다.
'세연씨 그냥 한 번 들어봐요. 이건 내 생각인데..
나는 지한이에게 아빠 이상으로 좋은 어른이 되어주고 싶어요. 그래서 이번에 이현이가 홍콩에 갔을 때 내가 시간이 여유가 있으니 지한이를 만나면 어떨까 생각을 했어요. 아직 4명이서 보기에는 아이들이 나이차이도 많이 나고 하니까 우선 나 먼저 지한이를 보면 어떨까요?'
우리 둘 사이에 처음으로 아이가 들어온다.
사실 지한이에게 준영씨를 소개하는 일은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다. 지한이는 한국 나이로 다섯 살이고 아직 부모님의 이혼사실도 모른다. 단지 같이 살던 아빠가 파견근무로 해외에 나갔다는 사실만 안다. 이런 상황에 지한이와 준영씨 이 둘이 만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이 만남 이후에 내가 쫓아갈 수 있는 길이 있는 걸까.
'생각해 줘서 고마워요 준영씨.
그런데 준영씨 여행도 얼마 안 남았잖아.
비행기티켓도 호텔비용도 아깝고 하니 우선 여행 잘 다녀와요.
이현이 혼자 키우느라 여태 여행도 못 가고 고군분투했잖아요. 이번 기회에 시간 보내며 스트레스도 풀고 와요.'
'아니야 나는 지금 세연씨와 같이 시간 보내는 게 더 좋단 말이에요.
일본가도 세연씨 생각만 할 텐데'
'ㅎㅎㅎ 귀여워. 아니야 이번에는 우선 잘 다녀와요.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우리한테는 앞으로 시간이 많잖아요. 평생 볼 건데 뭐.'
'평생? 진짜 말도 참 예쁘게 해'
그가 일본으로 떠나고 나는 한국에서 그의 일본 여행기를 들었다. 아침 조깅과 산책, 우연히 들어간 노포에서 먹은 우동 이야기, 신사에서 만난 어떤 한국인 커플이 준영씨를 알아봤다는 이야기까지.
유튜브에서 본 것보다 잘 생기셨다며 서로 훈훈한 덕담을 나누고 사진을 서로 찍어줬다고 했다. 그가 신사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준다. 그가 보내준 사진을 오픈하면서 나는 머릿속으로 말했다.
잘생겼네 최준영 진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