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혼했습니다.

#21

by Liz


평온한 삶이다.

내가 온전히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고 그도 나에게 온전한 사랑을 줄 수 있다.


불안함이 없다.

사랑과 믿음이 그대로 가득한 상태다.


우리는 마치 우리 둘만의 유행어처럼 '왜 우린 이제 만났을까'라는 말을 자주 한다.

심지어 음식 취향도 추구하는 삶의 방향도 같으니 이런 말이 나올 만도 하지 않을까.


그러게, 어째서 왜 우린 이제 만난 걸까.


'있잖아요.

삶에 정말 윤회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이렇게 돌고 돌아, 이렇게 만나, 이렇게 사랑할 운명이었나 싶어요.'


요즘 나는 그가 말했는지 내가 말했는지 모를 그 한 문장을 가슴 한편에 달고 산다. 가슴 충만한 이 문장을 가슴 깊숙이 들이마실 때면 온몸 가득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나려고 그토록 힘든 시기를 보냈구나.

내게 이런 사람이 오려고 나는 그 길고 긴 밤을 절망 속에서 처절하게 뒹굴었었나 보구나.




저녁 여덟 시. 전화벨이 울린다.


'응 엄마'


'잘 사나 전화 했지. 밥은 먹었어?'


'응 지한이랑 지금 고등어 먹고 있어. 지한이 생선 왜 이렇게 좋아해?.'


'너 닮았지 뭐~ 너도 생선 좋아하잖아.'


'ㅎㅎ 그런가. 흠 엄마 이번 주말에 집에 갈까? 일정 있어?'


'없어~ 성당 가는 거밖에.'


이번 주말에는 오랜만에 본가에 가서 엄마 집밥을 먹고 와야겠다. 달력을 살펴보니 본가에 가지 않은지도 어느새 세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내가 보고 싶을 때면 이렇게 전화를 거셨다. 엄마는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모르신다.

아이를 키우며 나이를 조금씩 먹다 보니 이런 작은 것들이 느껴지고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엄마에게서 가끔 걸려오는 전화는 '왜 안 오니? 집에 한 번 와야지.'라고 그저 내가 보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 것임을.


늦은 저녁.


알림장을 살펴보며 지한이의 내일 어린이집 준비물을 챙긴다. 어린이집에서 설거지 놀이를 하다가 옷이 다 젖어 한 번 갈아입고, 혼자 짜장밥을 숟가락질하며 먹다가 밥을 많이 흘려 옷을 또 한 번 갈아입었다고 했다. 여분의 옷을 다 사용했으니 적당량의 옷을 챙겨 보내달라는 요청에 지한이의 어린이집 생활을 상상하며 한가득 미소를 짓는다.

내가 모르는 지한이의 어린이집 생활을 듣고 상상하는 것은 가슴이 따듯해지는 일이다. 아이에 대한 애정이 피어오르는 일이다. 짜장밥을 먹다가 흘리는 모습마저 어쩜 이렇게 귀여울 수 있을까.


준비물을 바삐 챙기는 손에 문득 몇 시간 전에 통화했던 엄마의 얼굴이 겹쳤다. 한동안 얼굴도 못 뵈었으니 이번 주말에는 용돈도 두둑이 챙겨서 집에 다녀와야겠다고 다짐한다.


이제 몸도 좀 씻고 지한이와 책 읽기 시간을 가지며 기분 좋게 재워야겠다.

그리고 준영씨가 아직 자고 있지 않으면 통화도 해야지.


지한아 엄마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거야?

우리 지한이도 이런 엄마를 응원해 줄 수 있겠니?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