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요즘 누구 만난다며?'
본가 식탁 구석에서 아빠다리를 하고 앉아 엄마가 갓 부쳐준 호박전을 먹고 있었다. 간장을 안 찍어도 간이 딱 맞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엄마가 슬며시 조심스럽게 묻는다.
'응? 어어.. ㅎㅎ 언니가 그래?'
'응 언니가 유튜브 영상도 보여주던데?
뭐 하는 사람이야?'
'부동산 쪽 사업하는 사람이야.
나랑 같은 학교고 원래 회사 다니다가 적성에 안 맞아서 최근에 그만뒀대.'
'잘 알아보고 만나. 인터넷에서 만났다는 거지?
사기꾼이면 어쩌려고 그래.
정말 겁도 없어 이세연.'
'파하하.
엄마 딸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아니 근데 호박이 왜 이렇게 달아?
아무것도 안 넣었지? 진짜 다네..'
'암 것도 안 넣었지.
성당 친구들이 텃밭에서 직접 기른 거라며 준거야.
팬에 부치니까 더 달지 어서 마저 먹어.
하나 더 해줘?'
마흔이 가까워지는 나이에 엄마와 앉아서 연애 이야기나 하고 있자니 속이 뭔가 이상하다. 죄송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마음이다.
무엇보다 나는 결혼해서 부모님께 정말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엄마아빠의 자랑거리였던 예쁜 둘째 딸이 이렇게 예쁘게도 알콩달콩 잘 산다고 여기저기에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랬던 바람이 무색하게 뜻하지 않던 이혼으로 엄마아빠 마음속을 다 헤집어 놓아 버렸지만 말이다.
사랑하는 둘째 딸의 이혼이란 것은 날카로운 칼로 부모님의 마음 구석구석을 다 상처 냈을 일이란 걸 나는 너무나 처절하게 잘 알고 있다.
매일밤을 나만큼 울며 보내셨으리라는 걸.
내 소식을 듣고 난 후로는 살고 있으나 사는 것이 아니셨음을.
이혼은 정말 외로운 싸움이다.
누구나 쉽게 조언해 줄 수 있지만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음에 더욱 처참하게 느껴진다. 결국 모든 결정은 당사자인 내가 해야 하는 거니까 말이다.
전남편을 부모님께 소개했을 때 엄마는 처음부터 그렇게 탐탁지 않아 하셨다. 부모님의 마음이란 다 이런 것이겠지만 그의 프로필을 보며 엄마는 연봉도 네가 더 높고 학교도 네가 더 좋지 않냐며 어린아이처럼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때 나는 내가 엄마에게 했던 말이 정확히 생각난다.
엄마 그런 사실들이 다 무슨 의미야.
연봉도 길게 보면 크게 차이 안 나고 그렇다고 그 사람 적게 버는 것도 아니잖아. 학교도 사실 입학 때는 그게 세상의 전부인 것 같지만 졸업하고 취업하고 하면서 다 무뎌지더라고.
우리 어차피 다 회사원이고 그냥 다람쥐처럼 회사 다니고 살고 있는 건데 뭐.
엄마가 지금 생각하는 그런 건 살면서 다 희석될 거야.
엄마,
이 사람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야.
나와 비슷한 사람 같아.
그리고 나 이 사람이라면 소소하게 행복 찾으면서 무탈하게 잘 살 수 있을 거 같아.
나 응원해 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