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혼했습니다.

#34

by Liz


이혼 후 다시 연애를 하게 된다면 꿈꿨던 것이 있었다.


나의 삶은 나의 삶대로 복잡할 것이다.

또한 내가 누구를 만나거든 그의 삶도 그의 삶 그 자체로 복잡할 것이라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상대에게 의지하는 성향이 아니다.

남에게 의존적인 모습이 거의 없는 편이다.


혼자서 대부분의 일을 뚝딱뚝딱해 나가며 그저 본래의 성향대로 나의 어려움은 내가 최대한 잘 해결하자는 주의로 살아왔다. '남에게 피해주자 말자.'라는 모토로 지내와서 그런지 주변인들에게 무언가 부정적인 에너지를 전가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내재해 있다.


나는 상대도 그런 마음이었으면 한다. 각자가 가진 헤아릴 수 없는 복잡함의 세계가 있지만 우리 둘이 있을 때는 또 다른 세계가 둘만의 세계가 펼쳐지면 좋겠다는 마음 같은 것.


연인과 있을 때면 모든 어려움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오롯이 우리 둘만의 세계만이 존재하는 것 말이다.


나는 유니콘 같은 그런 판타지를 꿈꾼다.


동시에 서로를 응원해 주는 건강한 관계를 희망한다. 내게 어려움이 닥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 응원해 주는 연인을 원한다. 다만 내게 엉킨 실타래에 대해서는 나 자신이 칼자루를 들고 직접 해결해야 할 것이다. 내 문제에 대해 그의 응원을 바랄 뿐 그에게 의지하지 않을 것이며 나의 어떤 무기력한 감정이 상대에게 전이되지 않도록 하고 싶다.


이현이의 일로 인하여 어떻게 형언할 수 없는 어려움의 시기가 준영씨에게 봉착했다.

만약 그가 혼자 해결하기 힘들다면 내가 도움을 주고 그의 힘듦을 조금은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헌데 이 사람은 온통 잿빛이다.


말투와 분위기 또한 우울하다.


힘든 일이 있으면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하니 본인은 원래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알아서 도움을 주면 좋을 것 같다는 궤변을 늘어놨다.


어려운 말이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단순한 내 성격에 색다른 소재가 생겼다. 평소와 다르지 않게 행동하는 준영씨와 온통 그를 감싸고 있는 먹구름 같은 우울함을 동시에 바라보며 나는 조금씩 자주 지쳐간다.


'언니.. 나 요즘 준영씨랑 좀 힘드네.'


언니에게 먼저 말문을 열었다.


'왜? 무슨 일이야?'


'아니 저번에 이현이 엄마 남자친구 생긴 거 이현이가 알게 됐다고 한 거 기억나지?'


'응응 이현이 계속 힘들어한대?'


'어 그런가 봐. 이현이도 이현인데 지금 준영씨가 더 우울해져서 나 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준영씨는 왜 우울해하는데?'


'하.. 내 말이 그 말인데..

몰라 물어봐도 자꾸 못 알아들을 소리만 하고 평소와 똑같이 행동하는데 그냥 그 사람의 모든 게 다 우울해. 더 최악인 건 내가 좀 같이 이 사람 감정에 잠식된달까.

나도 같이 우울해져 이 사람의 감정 때문에.'


'네가 준영씨를 진짜 많이 좋아하니까…

감정이 많이 전이되는 거지.. 그 사람의 힘든 마음이나 괴로움이 자연스레 느껴지나 봐.'


'응 그래서 나 힘드네..'


'회피형이네 그 사람.'


'회피형? 그게 뭐야?'


'회피형 안 만나봤어? 챗GPT한테 물어봐. 그 사람 얘기 들어보니 딱 회피형이야.‘


살면서 회피성향을 가진 남지친구는 만나본 적이 없던 나는 이런 분류조차 생소하다. 언니와 전화를 끊고 다급히 회피형에 대한 정보를 찾아 모으기 시작했다.


"회피형임을 알게 됐다면 바로 정리하세요."

"회피형은 노답입니다."

"회피형 고쳐 쓰는 방법 없음."


이세연. 큰일 났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