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혼했습니다.

#35

by Liz


갈등을 푸는 과정에서 준영씨는 되도록 빨리 감정을 해소하고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하지만 대화를 통해 만나게 된 준영씨 이야기에는 나를 다소 당혹스럽게 만드는 접점이 있었다.


예를 들면 이현이 엄마와 부딪히기 싫어서 본인이 어려움을 다 감수하는 상황이 굉장히 많았다는 점이다.

이혼을 하고 양육을 하고 있는 나도 이현이 엄마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상당했다. 당사자인 준영씨는 그런 마음이 더 컸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부분에 대해 내게 자주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직접 나서서 해결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목소리를 높여 싸우기 싫다고 했다. 그런 스트레스 상황에 맞닥뜨리고 싶지 않다며 그녀와의 대화를 거부했다.


이현이 엄마와 이혼하는 과정에서는 상간남 소송을 중단했다고 했다. 담당 변호사와 주변인들이 모두 말렸지만 소송을 그만뒀다고 한다.


오래 만난 친구나 직장 동료들도 불편한 지점이 생기면 바로 관계를 정리했던 이야기도 종종 들어왔다.


당시에는 '어떤 사정이 있었겠지.'라는 마음이었지만 돌이켜보니 모든 실마리들이 하나씩 맞아떨어진다.


회피형..이구나 이 사람.


해결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누누이 말해왔지만 사실 본인은 갈등을 피하고 싶고 갈등에서 손을 떼고 문제를 직면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인 것이다.


문득 준영씨가 말했다.


‘만약 세연씨가 나한테 헤어지자고 한다면 나는 적극적으로 세연씨를 붙잡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연씨는 나보다 더 나은 상황에 있는 다른 사람을 만난다면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게 무슨 말이에요 준영씨.

뭐야~ 나랑 연애 안 할 거예요?‘


상황을 피하려고 하는 준영씨와 장난스럽게 웃어넘기며 현재의 우리에게 집중하고 싶은 나.


그의 해결방법은 스스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 갈등에서부터 서서히 멀어지는 것이었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의 마음속 한편에는 그저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몸과 마음이 단단한 편이지만 사랑 앞에는 한 없이 유악한 편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최선을 다하고 싶기에 더 그렇다. 사랑을 많이 주고 싶고 사랑을 많이 받고 싶은 마음. 나는 모든 감정은 관계의 표현에서부터 나온다고 믿는다.


그 언젠가 한 없이 따스한 늦은 봄날의 오후였다.


온통 잿빛인 그로부터 어떠한 사랑의 표현을 더 이상 받고 있지 못한다고 여긴 어느 봄날. 밑 빠진 우울함이라는 독에 나 자신을 갈아 넣고 있다는 걸 문득 깨달아버린 그날에.


본인이 아니라면 나는 더 행복할 것이라는 준영씨의 말에 홀로 외롭게 싸우던 나는 결국 그 말을 내뱉어 버렸다.


'우리.. 힘들 것 같아요. 앞으로도.'


준영씨와의 연애는 짧은 봄날처럼 꿈같은 일이었다.


이혼과 거의 동시에 운명처럼 이어져 반년 간 조금 긴 꿈을 꾸었다.


그저 감정의 여운이 남아 좀 더 힘이 들었을 뿐이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금방 괜찮아질 줄만 알았는데 그러지 못해 헷갈렸을 뿐이다.

있는 한 껏 해보지 못해 아쉬웠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건 모두 다 부질없는 꿈같은 일이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