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토요일 열두 시.
아파트 내 상가에 있는 부동산으로 문을 열고 들어간다. 곧 나와 지한이의 아늑한 안식처가 되어줄 집의 상가계단을 한걸음 한 걸음씩 밟고 올라섰다. 두꺼운 유리문을 당겨 들어가니 나보다 조금 더 먼저와 기다리고 있던 중개사님이 뒤를 돌아보며 나를 반긴다.
'세연씨 오셨어요?'
'네 중개사님~ 일찍 오셨네요.
집주인분은 오고 계신대요?'
'아 지금 내려오신다고 연락 왔어요.'
고개를 찬찬히 돌려 바라본 책상 위에는 각종 서류들과 인주, 볼펜, 클리어 파일 등이 놓여있다. 신분증을 꺼내고 의자에 앉아 매도자를 기다린다. 옆에 나란히 앉은 중개사님이 무심하게 넌지시 한마디를 건넨다.
'잘 잤어요?'
'네네 ㅎㅎ
하.. 저 근데 좀 떨려요..!!'
'그럴 수 있죠 ㅎㅎ
오늘 큰일 했으니 이따가 밥도 잘 챙겨드세요.
세연씨 요즘 더 말라가는 거 같아.'
돌고 돌아 다시 만나게 된 중개사님은 그때도 느꼈지만 여전히 참 좋은 사람이다. 내가 너무 빨리 가지 않게 도와주고 고민되는 점을 항상 들어주시고 심지어 나의 불안한 마음까지 단단히 잡아주시는 분.
어떻게 이렇게 좋은 사람이 감사하게도 또 내게 왔을까.
마치 어디선가 누가 나를 지켜보며 도와주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딸랑'
부동산 유리문에 달려있던 작은 종이 찰랑이는 소리를 낸다.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남매 중 오빠로 보이는 사람이 반대편으로 돌아와 천천히 내 앞에 앉았다.
문득 계약일 전에 중개사님과 등기부등본을 함께 살펴보며 이야기를 나눴던 일이 떠올랐다. 나의 매도자는 좋은 시기에 지금의 집을 사서 꽤나 좋은 시점에 매도를 하는 중이었다.
'아니 중개사님. 이 분.. 투자 잘했네요'
'그러게요 저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건 정말 좋은 투자였다..라고 ㅎㅎㅎ'
'아 진짜 똑똑하다.. 나도 이 당시에 부동산에 좀 깨어있을걸 그랬어요.
바보같이 시간만 나면 해외여행 다니느라 바빴어'
'결혼 전엔 보통 다 그래요.
그리고 세연씨는 막상 결혼한 후엔 2 주택 세금 때문에 세연씨 명의로도 또 살 수 없을 거고요.
뭐 어떡해요. 그냥 지금이라도 좋은 집 구했다고 생각하는 수밖에'
쓸데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등기부등본을 같이 탐험하던 그날의 중개사님과 나.
그때 함께 언급했던 분이 우리 앞에 앉았다.
90년생 매도인과 88년생 매수인이 서로 신분증을 교환한다.
중개사님의 설명을 귀담아들으며 각종 부동산 용어가 가득한 계약서에 작은 글씨로 서로 사인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을 열심히 사인을 하고 마침내 모든 서명이 완료된 후 양쪽 부동산에서 서류 정리에 들어간다.
'아이 교육 때문에 오시는 거예요?'
매도자가 물었다. 중개사님과 아이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나보다.
'아 네네. 맞아요.
수용님은 어디로 가시나요?'
'아 저는 지방으로 내려가요.'
'아 네 그러시군요.'
오늘 처음 본 매도인은 어두운 색 스웻셔츠에 편안해 보이는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 깔끔한 인상에 여유로워 보이는 태도가 인상적인 사람이다.
지방으로 내려간다니.. 공무원일까? 동시에 이 집을 매수하기 위해 보러 갔던 날에 봤던 그의 방이 갑자기 생각났다. 좀 정신없이 이것저것 물건이 널브러져 있었던 기억이다. 지금의 깔끔한 인상과 다르게 조금은 지저분했던 그의 방이 겹쳐져 보이는 건 왜일까.
'자~ 서류 다 됐습니다. 여기 각자 서류 파일 챙기시고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
작은 벨소리를 찰랑이며 부동산 유리문을 닫고 나왔다. 옆에 계신 중개사님을 바라보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고생 많으셨어요 중개사님.'
이제 큰 숨을 들이마신다. 이렇게 또 새로운 챕터가 열렸다.
오늘은 내가 정말 큰일을 해낸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