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혼했습니다.

#5

by Liz


부부상담을 진행하며 나는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그 당시의 힘든 기억을 꺼내고 입 밖으로 내뱉다 보니 그간 묻혀있던 스트레스가 피부 위로 스미듯 기어올라왔다.

온몸이 예민해져 살갗이 어디에 스치기만 해도 고통스럽다.

또다시 아팠다.


법원에서 연결해 준 심리상담소는 종로 청운동 언덕길에 있었다. 상담 회차가 거듭될수록 다행히 고통도 조금씩 수그러 들었다. 상담 회차를 거듭하며 그곳에 갈 때마다 마음이 절로 평안해지곤 했다.

층고가 낮은 건물과 주택 사이에 자리하고 있던 그곳은 일반 가정집을 조금 리모델링하여 심리상담소로 이용하고 있었다. 나이가 꽤나 지긋하신 상담 선생님은 카리스마 있는 할머니셨다. 감정에 공감해 주시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냉철하게 상담을 해주시는 모습이 참으로 의지가 되었다.

상담회기가 끝나갈 무렵 이혼의사가 반반이라던 전남편은 갑자기 해외파견에 간다고 내게 통보했고 자연스럽게 쌍방의 이혼의사가 성립되었으며 양육권 또한 내가 가져올 수 있게 되었다.


해외파견을 통보받은 날, 마지막까지 비겁하게 도망가는 남편의 모습에 분노가 치밀었다. 남편은 한국에 있으면 정신병에 걸릴 것만 같아서 본인을 위해서 해외파견에 나간다고 했다.

잘못은 본인이 저질러 놓고 마지막까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그가 신물이 나게 역겹다.


조정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양육비와 재산분할 다툼만이 남아있다.


이혼을 하며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많았다. 그중 법정양육비 테이블이 몇 년째 업데이트되지 않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테이블이란 것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것도. 아이를 온전히 한쪽에서 혼자 키워내는 대가가 겨우 이 금액밖에 되지 않는다. 오늘도 나는 다가온 현실에 처참하다.

지루한 다툼이 계속되었다.

나의 변호사는 양보하지 아니면 조정은 힘들 것이라고 했다. 더하여 상대 변호사도 많이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양보를 어디까지 해야 하는가, 그 경계에서 나는 치열하게 고민을 한다. 함께했던 가계경제의 각각의 기여분을 따지며 현실 앞에 한없이 초라해지는 순간이다. 내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그 순간을 이제 잘 모르겠다.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