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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Mar 10. 2024

하이힐이 부담스러운 나이

운동화족

하이힐은 여성의 자존심이다.

뒤꿈치에서 부드럽

내려오는 곡선이 직선의 굽까지 자연스럽게 흐르는 하이힐은 한 개의 예술 작품 같다. 예술품을 착용하다는 측면에서 하이힐은 여성의 자존심 향상과 더불어 좀 더 나를 당당하게 만들어 주는 아이템이다.

그런 점에서 20대에는 하이힐에 목숨 건다.


나도 그랬다.

하이힐을 신고 또각또각 걸으면 나도 모르게 턱이 조금 들렸다. 턱이 들릴 하등의 이유가 일도 없었지만 왠지 다들 나를 볼 것 같은 심각한 착각 속에 빠져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건지 쥐뿔 개뿔도 없는데 당당해 지곤 했다.


그리고 다양한 부작용도 있었는데

뒤꿈치가 까져 피가 나다거나

발가락에 굳은살이 배기도 했었던 것이다.

뒤꿈치 상처 대기 밴드는 외출 필수품이었고  양초를 바르면 발이 덜 까진다는 말에 열심히 밀랍 칠을 해 대기도 했다. 밴드 두 개를 가방에 챙겨 넣는 수고를 하면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하이힐을 신고 하루 종일도 걸을 수 있었다. 걷기만 했을까 그때는 하이힐을 신고 뛰기도 했다.


20대 뒤꿈치가 까지거나 말거나 발가락이 아프거나 말거나

나 몰라라 하며 신던 하이힐은

출산과 동시에 내 생의 뒤안길로 잠시 퇴장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는 노래 제목처럼 잠시만 안녕이라 생각했다.


어느 애 엄마가 아이를 업고 하이힐을 신는 무리수를 두겠는가?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오롯이 아이의 것이 되는

출산 이후의 삶은

술, 힐, 멋 등의 한 글자로 된 즐거운 것들에서 나를 점점 멀어지게 만들었다.

행여라도 높은 굽을 신고 날라리 엄마 흉내를 내다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내가 다쳐도 애를 못 보니 문제

애가 다치면  심각한 문제가 되니 애초에 시도를 안 하는 것이 맞았다.


이제 애도 다 컸겠다

다시 신고 싶은 하이힐에 발을 넣고 당당히 길을 나섰다.

운동화를 신을 때 보다 조금 높은 곳 공기를 마시며 그곳 공기가 더 프레시 한 양질의 공기 인양 착각하며 걸어보았다.

하지만 몇 걸음 못 가서

길거리 운동화 족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무릎과 허리가 아파왔다. 아프다 못해 나빠졌다.



관절에 무리를 허리에 충격을

정신의 피폐를 하루의 피곤을


하이힐을 신고 나가는 날이면 다양한 고통들 고스란히 경험해 보게 되었고 그런 날은 하루가 더 피곤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하이힐은 이제 신고 싶어도 못 신는 처지의 그냥 예쁜 신발장 장식품이 되었다.


호사 스레 핀 벚꽃과 좀 놀아 보려 할 때면 이미 군데군데 지고 그 사이로 꽃 말고 하늘이 보이는 듯

호사스러운 시절이 참 짧음을 새삼 느낀다.



어느새 하이힐이 부담스러운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신흥 운동화 족에 합류한지 오래다.

뒤를 보나 앞을 보나 빼도 박도 못하는 40대가  지금 

가뭄에 콩 나듯 눈 나쁜 사람들이 불러주는 아가씨 소리에 아닌 줄 알면서도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는 흔해 빠진 40대 사람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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