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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주 Jul 02. 2024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

심약자 클릭 금지

퇴근 후 집 안에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는 순간

바닥에 진한 갈색 더듬이가 달린 생명체를 발견했고 그것이 바퀴 벌레임을 깨닫고 괴성을 지르기까지 0.5초.

나의 길고 높은 괴성을 듣고 주특기인 헤어 드라이를 하던 큰아들이 빼꼼 방문을 열고 물었다.

"엄마 무슨 일이야?"

나는 숨을 몰아쉬며

"바퀴벌레" 

""

문 닫는 소리가 들렸다. 이 새끼~~


환경은 사람을 바꾼다.

나는 다리가 여섯 개 이상이거나 다리가 아예 없는 생명체를 아주 싫어한다.

나도 한 때는 그런 생명체를 보고 소리를 지르며 호들갑을 떨던 연약한 여자였다.


하지만 결혼 후

내가 그들을 보고 아무리 "악", "엄마" 라며 큰소리로 추임새를 넣어 봐야 소용없음을 알게 되었다.

결국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서는 그것들을 처리할 방도가 없음을 알고 그때부터는 혐오스러운  생명체나타나면 걸레를 던져서라도 살상하는 대한의 아줌마가 되었다.


하지만 그날의  바퀴벌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니었다.

버섯을 먹고 몸집이 커진 슈퍼마리오처럼 거대한 그 녀석이 아파트 고층까지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지 알 수는 없었다. 확실한 것은 녀석을 잡지 않고는 그날 밤 잠자기는 틀렸다는 것이었다. 


두 팔을 걷어 부치고 종이컵으로 그놈을 덮쳤다.

타이밍이 안 맞은 걸까? 냉장고 밑으로 잽싸게 들어가는 바퀴벌레 ~~

조~오댔다.


때마침 집으로 돌아온 작은 아들과 길쭉한 집안 물건을 찾아 냉장고 밑을 헤집으며 놈이 나오길 기다렸다.

주변이 왜 이렇게 소란스럽냐는 듯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흉측한 녀석

하지만 도저히 그 녀석을 때려잡을 용기가 나질 않았다. 식은땀을 흘리며 망설이는 순간 바퀴벌레는 다시 냉장고 밑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상황 파악을 한 후 꼼짝도 않고 몸을 사리는 듯 녀석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난리통에 큰아들도 합세하였고 우리 셋은

세 얼간이 저리 가라 으로 성과 없이 허둥지둥 됐다.

의자에 올라간 작은아들, 큰 아들은 홈바 위

결국 궁리 끝에 살충제를 동원하기로 했다.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바퀴벌레를 두고 살충제를 사러 갈 수가 없었던 나는 남편에게 연락을 했다.

"집에 엄청 큰 바퀴 벌레가 나왔어. 바퀴 벌레 살충제 좀 사다죠."

"집이 그 마이 드러우니 바퀴벌레가 나오지. 나 도착하면 10시 넘을 텐데."

역시 이 인간은 말로 천냥 빚도 단숨에 만들어 내는 재주를 지녔다.


할 수 없이 냉장고 앞에 아들들을 보초 세워 놓고

집 앞 마트로 달려갔다.

전투에 대비해 부족함 없이 각종 살충제를 

준비한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냉장고 밑에 있을 그놈을 생각하며 뿌려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버둥거리며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재차 살충제를 살포한 후 종이컵으로 덮었다. 딱딱한 종이를 종이컵 아래 살짝 끼운 후 변기로 달려가 녀석을 떨어뜨렸다.

확인 사살 격으로 다시 살충제를 뿌리고 사체 보존 후 물로 사정없이 내려 보냈다.


한 시간 동안 사투를 벌인 후 바퀴벌레를 잡았지만 찝찝함은 가시질 않았다.


난 그때부터 달밤에 체조가 아닌 청소를 시작했다.

쌓아 놓은 물건들을 다 버리고 치우고 닦았다.

청소가 끝나니 밤 12시가 훨씬 넘어 있었다.

바퀴벌레 덕에 여름 맞이 대청소를 한 셈이다.


그래도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


https://youtu.be/yN9V0-Eagi4?si=QtgizuLb5UQBJjd0

장혜진 -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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