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자존감이 바닥을 치다 못해 땅굴을 파고 들어갈 지경이었다.
40대는 주변의 평가에 민감해지는 시기이다.
내 자존감을 높이는 요인이 나의 노력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의 성과에 의해 좌우되는 나이이기도 하다.
굴지의 대기업의 보너스 시즌이 되면 세부류의 인간들이 나타난다.
보너스가 얼마인지 묻고 부러워하는 사람
보너스가 얼마인지 알고 욕하는 사람
보너스를 받고 여유를 부리는 사람
어쨌든 위너는 세 번째다. 받은 자의 여유 정도라 표현해야 하나..
남편의 보너스는 아내 어깨에 날개를 달아 준다.
40대부터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극명하게 나누어진다.
물질만을 의미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부장님 사모님과 상무님 사모님은 다른 것처럼 말이다.
방학이 다가오면
자녀 성적을 자랑하는 많은 이들을 본다.
난 애석하게도 단 한 번도 그럴 일이 없었다.
자녀의 높은 학업 성적은 부모의 못다 이룬 꿈일 수도 있다. 아닌 경우에도 부모의 자존감 향상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것은 확실하다.
내가 좀 부족했어도 아이가 잘하면 다 보상받는 느낌이 들 것이다. 난 경험 해 보지 못했기에 추측형 문장이다.
이모를 만나고 온 엄마가 말했다.
"김서방은 이모한테 천만 원짜리 금을 주고 갔더라."
머리를 빠르게 굴려 돈 수를 계산해 봤다. 대략 25돈... 정말 개 부럽다. 사위 덕에 이모는 입이 귀에 걸렸겠다.
출처 네이버
어느 철학자가 말하길
40대라는 나이는 사회적으로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집자랑. 자식자랑, 돈자랑을 끝없이 듣게 되는 시기라고 했다.
정말 끝없이 듣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듣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때는 그냥 지나치던 말들이 이제는 자랑으로 들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젊을 땐 나를 가꾸고 내가 더 돋보이기 위해 노력하며 산다.
40 중반 문득 서서 돌아본 시간들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나는 없고 내 주변만 남았다.
싸구려 화장품을 바르며 피부 따위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달려온 시간들 뒤로 얼룩덜룩한 잡티가 남았다.
내 희생이 곧 나의 성공처럼 여겨졌다.
그러다 한계에 부딪히면서 처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굴을 파고 숨어버리고 싶었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도 짜증스러웠다.
돌풍처럼 마음을 휩쓸고 지나가는 불안에 자존감은 더 떨어졌고 갱년기도 아닌데 화가 나고 우울하기를 반복했다.
내 마음 빼고는 다 평온해 보여서 그것 조차 억울했다.
그러다 이렇게 살 수 없겠다 싶었다.
그래서 눈과 귀를 막아버리기로 결심했다.
또 과거 어느 순간 귀에 걸려 오만방자했을 내 입도 막아 버렸다.
불필요한 관계를 과감하게 줄이고 나에게 집중하기 시작하자 점점 평온이 찾아왔다.
물론 일렁이는 파도처럼 다시 동요가 일기도 했지만 곧 평온 해지길 반복했다.
작은 일에도 입을 열어 공을 치사하고
얼굴에 기쁨을 가득 채워 누구나 알아보게 만든
내 과오를 반성하는 중이다.
흑백 인생은 없다. 흑백은 내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결핍의 색일 뿐.,
극단적으로 좋고 나쁜 인생이 없는 만큼 너무 좋아하거나 너무 침울해 말자 다짐해 본다.
소란스럽게 드러내지 않고 흑백사이 그 중간 어디에서 나만의 색을 칠해 나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