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고 떨어지고 날아가 버린 것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다.

by 송주

살다 보면 일진이 유독 나빠 기억이 남는 날이 있다.

고등학생 때였다. 늦잠으로 시작된 그날의 하루는 교복을 입는 둥 마는 둥 집을 뛰어나오며 시작됐다. 그리고 하교 후 엄마 앞에서 펑펑 눈물을 쏟아 냈던 기억으로 마무리되었다.

학교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교실까지 걸어오는 길이 천길만 길이었고 그날따라 선생님의 폭격 질문은 다 나를 향했다. 화장실에서 넘어진 후유증으로 무릎 허리 안 아픈 곳이 없었고 옷에 묻은 화장실 바닥의 물과 얼룩으로 하루 종일 찝찝했다.

밤이 되었다. 드디어 오늘이 마무리되나 싶었다. 그때는 야간 자율학습이 있어 학교를 마치는 시간이 열 시쯤이었다. 늦은 밤 하교를 위해 스쿨버스에 올랐고 버스 안 선반 위에 보온 도시락 가방을 올려 두었다. 차 신호와 동시에 그 보온 도시락이 한 학년 위 껌 좀 씹는 선배 얼굴로 낙하했다. 선배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악 비명을 지르더니 무섭게 나를 노려 보았다. 나는 장차 벌어질 일이 두려워 죄송하다는 말을 수십 번도 더 하였고 불행 중 다행이었는지 아무 일 없이 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불길했던 그날의 하루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고 머릿속 해마에 운수 나쁜 날로 박혔다.



일진이 나쁘다고 하긴 뭣하지만 주머니에서 돈이 줄줄 새는 날들도 있다. 사람이 살다 보며 뜻하지 않은 손실을 보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속이 온전히 좋을 리 없다. 나도 그렇다.


건강 검진 후 목걸이가 사라진 걸 아예 모르고 있었다. 엑스레이를 찍기 위해 탈의를 한 후 환복 한 가운 주머니에 목걸이를 넣었다. 그리고 엑스레이 촬영 후 세탁바구니에 그대로 던져 넣어 버렸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병원에 알아봐도 분실물 중에는 목걸이가 없다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속이 쓰리다 못해 아파왔다. 읽고 있던 박완서의 나목 글자의 목만 봐도 목걸이가 연상될 정도로 상심에 한심이 더해졌다. 어디 가서 말도 못 하고 끙끙 속앓이를 하였다.

나 목


그다음 날은 주식이 아주 박살이 났다. 역시 추락 시 날개를 펴지 않는 것이 주식의 국룰이니 만큼 초박살이 났다.

사람들은 한강을 운운하기 시작했고 나도 그 틈에서 한강 물의 온도를 생각했다.

지방민들에게 때론 한강도 사치다. 가까운 강을 찾아야겠다며 실없는 농담을 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목걸이도 잃어버린 터라 온전히 웃을 수 있는 기분이 아니었다.

골이 깊으면 산이 높을 것이라는 어디서 주워들은 말로 스스로를 위로해 보았지만 사실 나는 알고 있다. 주식판 골과 산의 높이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오후쯤 보험사에서 연락이 왔다.

이러이러해서 보험 청구 건이 부적합 판정을 받아 지급 거절입니다.라는 소리를 해 대는 직원의 전화였다. 직원이 무슨 죄가 있겠냐만은 괜히 화를 내고 싶어 졌다. 전투력은 별로지만 보험사에는 잘 따지는 편이다. 하지만 복잡해질 것 같아 이내 포기했다.

기대했던 보험금도 날아가버렸다.


잃고 떨어지고 날아가버린 것에 대한 애통과 비통이 섞여 헛웃음이 나오다 짜증이 슬며시 올라왔다. 애꿎은 더위 탓을 하며 참아 보려 하는데 아들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들은 에어컨 리모컨을 찾고 있다고 했다.

거실 에어컨을 설정 온도로 맞춰 놓고 풀가동 중임에도 불구하고 본인 방에도 에어컨을 틀어야겠다며 리모컨을 찾고 있었다.


아들은 엄마의 멘털이 저기압인걸 모르는 상태에서 본인 방에 에어컨을 틀겠다는 전기세 나가는 소리를 해대며 내 불편한 심기에 기름을 부었다. 나는 전기세 상승 기여도에 따라 용돈에서 까겠다는 사나운 엄포를 놓았다. 몇 번의 날카로운 대화 끝에 백기를 든 아들은 얼음이나 먹겠다며 체념한 듯 전화기 너머로 사라졌다.


이런 날이 있다.

생각지도 못한 지출을 넘어 손해를 보고 일진이 별로네 하는 날이 있다.

가벼운 접촉 사고로 돈을 물어 주기도 하고

휴대폰을 떨어뜨려 생돈을 날리기도 한다.


그것들이 물질에 국한된 것을 불행 중 다행이라 여기며 잃어버리고 떨어지고 날아가버린 것들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날이 있다.


떨어지는 폭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