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기 위한 거시적 다짐

당신의 오늘은 그리고 나의 오늘은

by 송주

내 부모님은 시력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지금은 노화가 와 늘 침침해하신다. 하지만 젊은 시절에는 시력이 2.0이었다고 자랑하시곤 한다. 확인할 길은 없지만 70 평생 안경 없이도 잘 살아오신 걸로 봐서는 근거 없이 나온 2.0은 아닌 게 확실하다. 또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 수많은 삼촌, 이모, 고모 들 모두 안경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적고 보니 정말 놀랍다.


그런데 나는 눈이 나쁜 아이였다. 근시가 심해 안경이 없으면 목욕탕 락커 번호가 보이지 않아 번호 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어야 했다. 라식 수술로 광명을 찾은 후 수년간 얼굴과 함께 한 안경과 이별하게 되었다.

부모님과 직계 종친 들 모두 이렇게 시력이 좋은데 내가 중등도 근시를 가지게 된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가 낀 돋보기안경이 너무 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 안경을 내가 끼고 돌아다녀 본 적이 있다. 이유는 그것밖에 없는 것 같다.

사람은 결과에 비추어 과거를 회고하고 원인을 찾아 만족 또는 후회를 하는 경향이 있다.


결과만큼 과정이 중요하다고 배웠지만

40 중반의 인생을 살며

이상과 현실의 좁혀지지 않는 간극을 깨달았고 과정과 결과의 유기적 연관성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돋보기안경 몇 번 꼈다고 눈이 나빠지다니 이건 좀 억울한데 하면서 말이다.


아들의 성적표가 나오는 날 나는 아들의 임신 과정에서 저지른 나의 과오를 떠올려봤다.

받기 힘든 점수를 받아온 아들의 성적표를 보니 얘가 뭘 해 먹고살지부터 생각하게 되어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리고 나름의 위로라도 아님 자책이라도 해 보기 위해 17년 전을 떠 올려 보게 되었다.

산모 막달 검사를 위한 엑스레이 촬영 시 배에 납 벨트를 착용하는 것을 잊었었다.

그때의 방사선 노출로 지능이 떨어진 건가..


결과는 항상 과정을 회고하게 만든다.


결과가 좋으면 과정도 좋았을 것이라 여겨진다.

결과가 나쁘면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여겨진다.


경찰관이 칼을 든 범인에게 테이저 건을 쏘았다.

범인은 쓰러졌고 경찰관은 수갑을 채우고 그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상황을 잘 파악하고 테이저 건을 쏘아 범인을 제압한 경찰의 대응은 칭찬을 받을 것이다.

만약 테이저 건을 맞고 쓰러지는 범인의 머리가 맨홀 뚜껑 위로 떨어지면서 사망하게 되었다면 상황은 어떨까?

범인의 사망은 과잉대응으로 여겨질 것이며 누군가가 책임을 물어야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대 왕들의 이름 역시 사후에 새로 지어주는 묘호이다.

왕들의 업적은 사후에 평가되어

뛰어난 업적. 어려움 극복 왕 - 조

인자한 성품, 평화로운 왕위 계승 - 종

폐위되거나 업적이 없는 왕 - 군

역사에 길이 남을 왕들의 이름에도 그들이 남긴 결과가 중요했던 것이다.

폐위된 군도 할 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역사 역시 결과로 점철되었다.



그렇다고 과정이 비윤리적이고 적법하지 않더라도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과정에 충분한 공을 들였다면 결과는 보통 해피엔딩이지만 그렇다고 그런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살다 보면 노력과 상관없이 잘 풀리니 일이 있고 반대로 뼈와 살을 갈아 넣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많은 사건 사고들로 어쩌면 하루가 만들어진다. 지금 사는 오늘 역시 예측 불가능한 미래로 한걸음을 떼는 것이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혼재되어 밀도 있게 굴러가며 하루가 완성 된다. 다만 너무나 일상적이라 느끼지 못할 뿐이다.


모든 일이 그럴만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과정과 결과가 입력값처럼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망각은 아픈 기억에는 유독 강한 면모를 보인다. 행복했던 기억은 참 짧고, 힘들었던 기억은 매번 회자되고 회고된다. 끝없이 지나 온 과정을 생각하고 반성하기도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나는 현재 어떤 결과를 마주하고 있는가?라고 되묻게 된다.

그리고 내가 이룬 것과 그렇지 못했던 것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결국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에 도달했다.


나는 어차피 알 수 없는 인생 큰 목표를 세우지 않기로 했다. 미래 어느 시점에서 이때를 돌아봤을 때 부족했다거나 잘못했다거나 하는 후회를 하지 않을 정도로 살아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과에 따라 또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오늘 하루 최선을 다 한다면 덜 후회스러운 결과와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또 예측 불가능한 일이 닥쳐도 나를 덜 책망할 것 같다.


잘 살기 위한 내 거시적 다짐은 오늘을 더 잘 살아 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