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로 40년 넘게 지내보니

누나와 남동생

by 송주

나는 남매다.

한 살 터울 남동생과 늘 함께였다. 지금은 천인공노 할 이야기지만 목욕도 꽤 오래 같이 했다.

엄마의 양쪽에 한 명씩 손을 잡고 함께 다녔다.

생각해 보면 가장 좋은 친구였다.

한 번씩 다투기도 했지만 동생은 태생부터 순할 순자를 가지고 난 순한 아이였다.

싸움이라는 게 보통 두 사람의 팽팽한 대립이 원인이다. 하지만 그 팽팽한 끈의 한쪽을 놓는 쪽은 늘 남동생이었기에 애당초 싸움이 성립되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였다.

그 때 부모님은 모두 직장에 계셨고 집안에는 동생과 나 그리고 키우던 강아지 복실이 이렇게 셋이 있었다. 그때 갑자기 소방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혼자 밖으로 뛰어나왔다. 나와 보니 동생은 나오지 않고 계속 집안에 있었다. 동생은 소방 사이렌 소리에 놀라 소파 밑으로 숨어버린 강아지 복실이를 데리고 나오느라 늦었던 것이었다.

동생은 그런 동생이었고 나는 그런 누나였다.


같이 목욕을 한 여름 날이었다.

엄마가 몸에 감아주는 수건으로 둘이 장난을 치다 내가 바닥으로 살짝 넘어졌다. 별로 아프지 않았지만 나는 큰 소리로 울어 버렸다. 이유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분명 놀라서 할리우드 액션을 보였을 것이다. 그 덕에 남동생은 누나를 민 것으로 오해받고 아주 혼이 났다. 난 밀리지 않았음에도 침묵했고 동생은 밀지 않았음에도 침묵했다.


어느 날 나는 집안 솥에서 못 볼 것을 봐 버렸다.

성인 남자 주먹만 한 개구리가 솥 안에 얌전히 삶아져 있었다. 엄마는 그 험한 것 삶은 물을 우리에게 먹일 생각이었고 나는 엄마의 계략을 눈치채는 순간 부리나케 도망을 쳤다.

그리고 그곳을 벗어나고자 했던 남동생은 애석하게도 등짝을 후드려 맞고 엄마에게 잡혀버렸다.

내 고집을 아셔서였는지 엄마는 그 험한 물을 내게는 권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잡힌 남동생은 울면서 그 물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고문에 가까운 동생의 고통에 내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날 동생의 모습은 살면서 본 어떤 장면보다 비참했다.

동생은 군대에 가기 전까지 40kg 중반 뼈 말라 족이었다.

어릴 때는 키까지 작아 지방에서 서울대학교 병원 성장 클리닉 진료를 갈 정도로 집안의 걱정거리였다.

개구리 삶은 물은 동생의 키 성장과 벌크업을 위한 총동원 책 중 하나였다.


다만 내가 솥 안에 하얗게 형체만 남은 개구리를 보고 기겁만 하지 않았더라도 동생은 원효대사가 해골물 마시듯 그 물을 마셨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개구리 삶은 물의 작용인지 부작용인지 모르겠지만 동생은 지금 건강함 이상의 체격으로 변한 아저씨가 되었다.


나와 남동생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 이층 침대 아래위를 같이 썼다. 그리고 자기 전 끝말잇기를 하며 누가 먼저 잠에 빠졌는지 모르는 많은 시간들을 보냈다.



동생은 개구져서 같이 장난을 쳐도 혼자만 혼이 난 적이 많다.


우리는 안 닮은 남매였지만 아빠 쪽 피를 물려받아 공통점이 하나 있다. 둘의 대화가 늘 비생산적인 한심한 내용으로 흘러간다는 것이었다. 대화의 반이상이 농담과 장난이었다.

하지만 시답잖은 대화를 하면서도 즐거웠다.

성인이 되어서도 남동생이 던지는 허세 섞인 유머러스한 말들에 웃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도 결혼을 하고 몇 년 후 동생도 결혼을 해 가정을 꾸렸다.

같은 배에서 14달 차이로 태어나 30 년을 한 집에서 붙어 지내다 각자 집에서 각자의 가족들과 함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각자의 가족이 생기고 우리는 전보다 더 살기 바빠졌고 신경 쓸 것도 많아졌다.

새로운 가족에 대한 배려라는 명목 하에 저도 나도 적당한 거리 두기를 하다 보니 동생과도 예전 같지 않았다.

같이 한 집에 살 때처럼 동생을 대했다가는 브런치 시형님 편에 실릴 수도 있겠다 싶어 자중하게 되었다.


자매들은 나이 들면서 더 돈독해지는 경향이 있다.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보통은 그랬다.

남매는 사실 반대다.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우리 남매는 그렇다.


하지만 우리 남매는 같은 부모에게서도 물려받은 DNA를 공유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삶을 짊어지고 나이 들어가고 있다.

가끔 이층 침대가 놓여 있던 그 방의 동생과 내 모습을 생각해 보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동생과 함께여서 늘 든든했고 즐거웠던 기억은 때론 삶을 지탱해 주는 작은 부분이 되기도 했다.


동생이 명절 선물을 주러 출근길에 잠시 들른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동생이 온다는 연락을 받으면 늘 반갑다.

아침에 내 동생을 보니 더 반가웠다.

누나 준다고 바리바리 챙겨 온 선물들도 고마웠다.

동생의 하루가 무탈하길 바랐다.

또 이상의 모든 날이 잔잔한 강처럼 평온 하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