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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점 하나

이건 충격적인 사건

by 송주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가 모여 한 줄의 인생사를 남기는 법이다.


처음 시작은 작고 검은 점 하나였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보내던 중 작은 점 하나를 만났다.

내 시선을 따라다니는 검은 점이 눈에 거슬렸지만

통증은 물론 시력 손실이나 시야 흐림 조차 없었다.

나이 들면 생기는 가벼운 비문증 정도로 생각했다.

내 나이 39세...

사람은 가끔 상대적 나이를 먹는다. 그때가 내 생의 가장 많은 나이였다. 40의 언저리..

이미 39해를 살아 냈다 생각하니 나이가 퍽 많다고 느껴졌다. 새파란 10대 20대를 보낼 때 내게 불혹은 오지 않을 아주 많은 나이였다. 그렇기에 나이가 들어 생기는 노화 현상이겠거니 가볍게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눈에 병을 얻기에는 참 젊은 나이였다.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며 불편한 눈앞의 점도 곧 사라지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점은 그대로 내 시선을 쫓아다니고 있었다.

세상 많은 점들 중 유독 신체 부분에 생기는 점은 괜히 불쾌하다.눈앞에 검은 점도 그랬다.


사라지지 않는 그 점의 정체를 알아야 했기에 안과를 방문했다.

산동제를 넣고 40분 정도 기다렸다. 앞으로 닥칠 일을 생각하지 못한 채 편안하게 시간이 지나길 기다렸다. 진료 후 병원 밖을 가볍게 나설 나를 상상했고 일상적인 업무에 대한 생각을 여느 때와 같이 하며 느긋하게 진료를 기다렸다.


산동검사는 눈의 동공을 확대하여 망막과 시신경의 상태를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시행하는 검사이다. 검사를 위해 사용되는 산동제는 동공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간호사가 내 눈에 빛을 비추어 동공 상태를 확인했다. 동공 확장이 충분히 이루어졌는지 수시로 눈에 빛을 비추어 확인해야 한다. 망막은 눈 뒷쪽에 있기 때문에 동공이 커진 후 특수한 렌즈를 이용해 자세히 관찰 한다. 그래야 망막의 넓은 부위까지 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만큼 망막 질환은 발견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뜻이다.

곧 진료실에서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내 왼쪽 눈을 관찰하던 의사 선생님이

숨을 들이마시며 '꺼억' 놀라는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다 떨어졌네." 라며 혼잣말을 너무나 또렷하게 들리도록 했다.

뭔가가 다 떨어졌다는 한 마디가 복선처럼 느껴졌다. 그 잠깐의 순간 나쁜 소식 일 거라는 서늘한 느낌에 마치 형량을 선고 받는 죄수처럼 두려웠다.


선생님은 노란 메모지에 망막 박리라는 진단명을 써 가며 간단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생소한 병이름에 놀란 나머지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내가 잔병치레 라면 신물이 나도록 해 봤는데

그래도 이건 아니지..

눈에 병이 생길 거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단순한 염증이나 나이 들어 생긴 비문증 정도로 가볍게 생각한 그 검은 점 하나는 망막 박리 증상이었던 것이다.

빨리 조치를 하지 않으면 실명할 수 있다고 했다.

실명이라는 단어에 다리에 힘이 풀리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애들이 아직 어린데..

실명이라니...

어린 아들들 생각에 막막했다. 코 앞에 검은 벽이 서 있는 것처럼 숨이 찼다.

눈물이 쏟아 지려 했다. 하지만 눈물 대신 온몸에서 땀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땀구멍이 개화한 듯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엄습해 온 극도의 불안감 앞에서 나도 이렇게 땀을 쏟아 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눈 뒤쪽 망막에 레이저를 쏴 떨어진 부분을 가둬야 된다고 했다. 더 떨어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일단 그렇게 해 봐야 한다고 했다.


망막 박리를 전혀 알지 못했다.

피부과에서 점을 뺄 때나 하는 살을 태우는 레이저를 눈에 쏜다는 끔찍한 이야기 보다

내가 이런 믿지 못할 상황의 주인공이 된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왼쪽 눈에 마취약을 넣고 레이저 시술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실성한 여자처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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