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눈에 레이저를 쏘여 봤습니다.

레이저광 응고술

by 송주

나를 큰 병원으로 전원 시키지 않는다는 건 증상이 경미하다는 뜻일 것이라는 자의적 해석을 하는 동안 왼쪽 눈에 차가운 마취 약이 몇 방울 들어갔다.

잠시 후 레이저 실 앞 의자에서 대기하던 나를 간호사가 불렀다. 하지만 떨리는 몸을 감당하기 힘들어 타임을 외쳤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난 레이저가 무섭기보다 이미 실명이라는 한 단어에 모든 것을 잃은 듯 서러웠고 불안했고 마음을 다잡기가 힘들었다.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킨 후

레이저 장비 앞 동그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턱을 장비 앞 턱 받침대에 대고 나니 의사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절대로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나는 똥꼬까지 힘을 주며 석고상 같은 자세를 유지했다.

의사 선생님이 레이저를 쏠 때마다 내 눈 안에서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것 같았다. 내 마음과는 반대의 화려한 불꽃쇼는 "잘했어요."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과 함께 끝났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곧 의사 선생님은 또 말씀을 하셨다.


"범위가 워낙에 넓어서..."


정말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불확실한 무언가는 사람 마음을 요동 치게 만든다.


범위가 워낙에 넓어서 ( 레이저를 많이 쐈어요.)

범위가 워낙에 넓어서 (레이저가 잘 붙어 있을지 모르겠어요.)

범위가 워낙에 넓어서 (내가 좀 힘들었어요.)

범위가 워낙에 넓어서 (또 떨어질 수도 있어요.)

범위가 워낙에 넓어서 어찌 됐다는 건지...

두려움이 나를 통째로 집어삼킬 듯 통제가 되지 않았다.

긍정회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돌아가지 않았고

앞이 꽉 막힌 터널 안에 있는 것처럼 답답한 마음에 재차 질문을 해냈다.


"레이저 해 놓은 곳이 다시 떨어질 수도 있나요?"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떨어질 확률은 어느 정도..."

"안 떨어지면 괜찮나요?"

"이제 뭘 해야 하고 뭘 안 해야 하나요?"


의사 선생님은 처음부터 다시 차근차근 내 상태를 설명해 주었지만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내 질문에 곧 지친 기색이 되었다.


"안되면 수술해야 하는데 그 수술이 하고 나서 엎드려 있어야 하고 좀 힘들어요. 그리고 수술은 우리 병원에서 못하고요..."


의사라고 내 망막의 미래를 어떻게 정확하게 예단할 수 있겠는가...


눈 아래에서 커튼처럼 검은 막이 올라오면 당장 병원으로 오라는 말과 함께 시술한 망막 레이저 상태를 봐야 한다며 다음날로 진료를 잡아 주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듣고자 집요한 질문을 해댄 것 수도 있다.

"별거 아니에요. 요즘 흔해요."

내가 듣고 싶던 말이었을 수도 있다.



결국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했다.

커튼.. 검은 막이라는 도무지 상상도 가지 않는 증상이 나타나면 병원을 오라는 말을 끝으로 병원 문 밖을 나왔다.

세상은 다 그대로였다. 단지 내 머리 위에만 천둥 번개가 치는 듯했다.


그 길로 바로 출근을 했다. 출근이 가능했냐고?


망막에 레이저를 쐈다고 해도 사지는 멀쩡했기에

자연스럽게 몸에 밴 책임감으로 출근길에 올랐다.

다행히도 시력에 영향이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만약 출근을 못했다면 그 이유는 눈의 불편보다 정신적 충격이었을 것이다. 여하튼 나는 일을 하러 갔다.


(이 부분을 다들 가장 궁금해합니다. 보이긴 보여?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레이저 후에도 잘 보입니다. 이유는 중심부 황반까지 망막이 벗겨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추후 서술 예정입니다.)


하지만 일상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머릿속에 온통 망막 박리에 대한 생각뿐이었고 레이저 한 부분이 제대로 아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뛰는 것은 물론 걷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누군가 내게 부딪히기라도 할까 온몸에 신경이 곤두섰다.


극도의 긴장 탓에 퇴근 후 물 먹은 솜처럼 몸을 움직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내 병에 대해 알아야만 했기에 망막 박리에 대해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망막 박리는 단순한 질환이 아니었다. 응급 안질환이었기에 위급시 수술이 가능한 병원에서 처음부터 진료를 받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나는 곧 병원을 옮기기로 결심했다.



https://brunch.co.kr/@salsa77/402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