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실패, 나만 아는 데이터가 쌓이는 시간
살다 보면 “이게 아닌데.”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질감 생기는 인간관계, 이상과 다른 회사, 이루지 못한 목표, 하물며 맛집의 음식이나 손꼽아 기다린 영화 앞에서도 이게 아닌데 싶은 순간이 있다. 하지만 허투루 보낸 시간은 없다. 지금 당장은 실패한 것 같지만 “이게 아닌데.” 같은 실패는 나만 아는 데이터가 되어 삶의 지혜로 작용한다.
20대, 살면서 좋았던 기억이 하나도 없었던 구간이 있다. 전역 후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했었다. 공사 의뢰가 들어오면 현장실측을 하고 도면을 그렸다. 여러 차례 수정작업을 거쳐 최종적으로 도면이 완성되면 공사현장에 투입되었다. 디자이너의 임무가 끝나고 현장 인력이 되는 순간이다.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 차림으로 도면을 고민하는 실장님은 TV에서나 존재할 뿐 현실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공사가 시작되면 트럭을 몰고 다니며 현장에 장비를 공급하거나, 목재나 석고보드 같은 자재를 사서 날랐다. 매일 아침 목수들에게 담배와 커피를 공급해야 했으며 점심시간에 맞추어 식사를 예약했다. 4시에는 새참을 준비했다. 신축건물이 아닌 이상 공사의 시작은 철거작업인데 작업이 시작되면 맨 마지막까지 남아 현장을 정리했다. 그래야 다음날 자재 받을 공간이 확보되므로 아무리 늦어도 마대자루에 각종 건축 쓰레기를 모아 현장밖에 차곡차곡 쌓아야 했다. 오롯이 혼자만의 일이었다.
상업공간 인테리어를 주로 하다 보니 번화한 도심에서 일하는 날이 많았는데 주차단속을 피해 매번 요리조리 도망 다녀야 했다. 차가 견인된 적도 있었는데 범칙금은 월급에서 제했다. 지방 공사를 다녀오다 고속도로에서 차가 서버린 적도 있었다. 자칫 큰 사고로 이어 질뻔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사장은 직원의 안위보다 차량수리비가 우선이었다. 역시 수리비 일부는 월급에서 제했다. 오만 정이 떨어졌다. 세상 물정 모르는 20대의 싱싱한 멘탈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정이 떨어질 만큼 떨어진 어느 날 회사를 그만두었다. 너무 시원했다. 사장은 몇 번이나 만류했지만 한순간도 머물기 싫었다.
마지막 월급봉투를 내밀며 “만원 뺐다.”라고 했다. 최후까지 치졸함의 끝을 보여주었다. 도망치듯 빠져나와 버스 안에서 봉투를 열어보았다. 정말 딱 만원이 빠진 월급이었다. 지금도 만원이 부족한 월급을 받아들고 집으로 가던 버스 안의 풍경, 그날의 분위기가 생생하다. 그리고 수없이 되내였던 “이게 아닌데” 분노와 아쉬움, 통쾌함과 서글픔 같은 감정들이 뒤섞여 20대의 한 구간을 지나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었고 친하게 지내던 목수들로부터 회사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나가고 사람을 구하지 못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길어봐야 2개월, 짧게는 1주일 만에 도망가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휴대폰이 없던 시절, 집으로 전화가 많이 왔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우리 애가 일할 마음이 없답니다.”라며 전화를 끊으셨다. 벌써 30년이 다 된 일인데 불과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살다 보면 “이게 아닌데.” 싶은 순간이 온다. 당장은 아프더라도 이런 실패의 경험은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나만의 데이터가 된다. 수직적 의사소통이 전부였고 갑질이란 단어조차 없던 시절이 있었다. 오직 위계만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이 구간을 살아낸 나에겐 더 단단하게 사회와 부딪힐 수 있는 자양분은 실패의 경험이었고 "이게 아닌데" 같은 많은 시간의 쌓임이었다.
지금 외롭고 힘들다면 잘 되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나만의 데이터를 적립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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