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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용 Aug 09. 2021

분만실 안에서 아빠가... 두 번째 출산

아빠의 이야기가 아닌 남편의 이야기

이른 새벽 4시경.

진통이 온 것 같다는 아내에 말에 미리 싸운 짐을 들고 서둘러 산부인과로 갔다.

한번 겪어봤던 일이라 그런지 처음만큼 긴장되지는 않는다. '처음만큼' 긴장되지 않을 뿐,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새벽이라 차가 막히지 않는 시간에 조용히 병원에 갈 수 있어 다행이다.

조심스레 병원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검사를 받으러 가고 난 작은 대기실에서 기다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 한 명이 나와 출산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아빠도 들어가서 준비를 하자고 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엄숙하고 긴장되는 순간에 어울리지 않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간호사가 다가와 말을 건다. 일반 외래 환자 접수를 하는 듯한 느낌이다. 무덤덤하게 이런저런 주의 사항을 설명해 주고는 끝으로 코로나 검사를 한다.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실제로 하는 코로나 검사는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기분도 금세 가시고 언제 아내 옆으로 갈 수 있는지에 정신이 팔린다. 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몇 가지 주의 사항에 대한 서명을 하고 외부인 출입증을 받았다. 산부인과에 방문할 때마다 이걸 목에 건 남자들이 꽤나 부러웠다. 난 밑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하지만 이게 있으면 병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간

아내가 있는 분만실로 들어갔다.

아내는 비스듬하게 누워있었다. 어떤 자세로 누워도 진통이 가시지 않기 때문인지 큰 뒤척임은 없다. 첫째를 낳았던 병원에 비하면 시설들이 깔끔하다. 분만실도 크고 깔끔하고 은은하게 퍼지는 클래식 음악과 가습기 소리가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 노력하고 있지만 산모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어떤 도움이 된다기 보다 '우리 산부인과는 이런 것까지 신경 써요.'라고 이야기 하는 듯 하다. 아무래도 내 신경이 날카로운가보다. 힘들어하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시답지 않은 농담들을 던진다.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어보려 했지만 큰 효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뭐라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내 마음도 분위기만큼 무거워진다.

진통의 주기에 맞춰서 날 잡은 아내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아내는 이를 꽉 깨물고 허리를 구기며 내 손을 꼬집듯 잡는다. 내가 대신 아파주고 싶다는 낭만적인 생각을 할까 싶지만, 그런 어설픈 생각은 아내의 신음소리에 묻힌다. 그냥 내 손을 세게 쥐어짜 아내가 느끼는 고통의 일부라도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 하지만 통증 때문에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아내는 내 손을 힘있게 잡지도 못한다. 내 손에 느껴지는 통증은 미미한만큼 가슴이 아프다.

이미 말해 놓은 무통주사를 맞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진다. 이미 병원에 온 지 한 시간도 지난 것 같은데... 지난 경험에 비춰 무통주사를 맞으면 통증을 견디기가 많이 수월해진다는 걸 알기에 나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오매불망 주사를 놔주길 기다린다. 3번쯤 아내의 상태를 보러 간호사가 들어오고 가더니 드디어 무통주사를 놓았다. 약간의 안도와 함께 이제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갑자기 확 다가온다. 무통주사의 효과가 끝나기 전에 아이가 나오면 좋겠다는 조바심이 난다. 약효가 돌기 시작하면서 아내의 얼굴도 조금씩 펴지기 시작한다. 내 가슴의 짐이 아내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만큼 녹아내린다. 이런저런 농담을 하며 다시 시간을 보낸다.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첫째 출산 때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2주 동안 있을 내 독박 육아 이야기, 결혼 초기와 연애 시절 이야기들이었던 것 같다. 웃으며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진통 수치를 재는 기계와 시계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는다. 무통주사의 약효가 약 2시간 정도가 지속되니 2시간짜리 모래시계를 눈앞에 가져다 놓은 기분이다. 아직은 조금 불규칙적인 진통 간격이 빨리 잦아지기를 속으로 기도한다. 4~5분 남짓한 간격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기계 속 꺾은 선을 지켜보다 보면 시간의 흐름을 읽을 수가 없다. 어느덧 1시간 30분 남짓이 지나고 마음이 엄청 조급해질 때쯤 간호사가 들어와서 무통주사를 한 번 더 놓았다. 다시 한번 안도의 한숨을 쉬고 다시 아내와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아침 8시를 조금 넘은 시간

두 번째 무통주사를 맞고 20~30분쯤 지나서부터 간호사들의 출입이 조금 잦아진다. 이런저런 의료 기구들은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제 곧 나오는지를 물으니 '9시 전에 나올 거예요~'라는 밝은 목소리의 대답이 돌아온다. 간호사의 목소리와는 달리 내 기분이 밝아지지는 않는다. 아이를 만나는 건 너무 행복한 일이지만 그 앞에 놓인 출산이라는 큰 고비에 가려 그 이후의 순간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조금씩 초조해지면서 마음이 점점 더 가라앉는다. 혹시라도 초초한 마음에 아내가 아이를 낳는 중에 화장실이 가고 싶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겹쳐 수십 번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린다.

어느 순간 3명 정도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분만실 중간을 커튼으로 가린다. 아내와 떨어져 분만실을 반으로 가른 커튼의 반대편에 섰다. 예상보다 빠른 진행에 조금은 얼떨떨하다. 첫째를 낳았을 때는 출산 과정 내내 아내의 머리 맡에서 손을 잡고 등을 밀어주며 출산을 함께 했다. 그래서 '일단의 준비 과정이 진행되고 있겠지... 그리고 조금 있으면 다시 아내의 손을 잡을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달리기 출발선의 주자와 같은 긴장 상태로 두 손을 만지작거리면 기다린다.

꽤 시간이 흘렀다. 커튼 반대편에서 아내의 싸움이 치열해졌지만 날 부르는 간호사는 나오지 않았다.

아내의 신음소리와 보조하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점점 강해진다.

'이번에는 다르구나.'

예상과 기대와는 달리 이번에 아내 옆에 내 자리는 없었다.

그렇게 난 분만실의 한 쪽 벽에 붙어 철저하게 제3자가 됐다.

착잡하다.

이 말도 내 기분을 정확하게 표현하지는 못한다. 슬픔에 무력감에 초조함 등이 섞인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하나의 마땅한 단어를 떠올려 보려 하지만 적당한 단어가 없다. 그러는 중 분만실의 저쪽에서 들려오는 소리 하나하나가 귀에 때려 박히기 시작했다. 간호사는 흡사 능숙한 운동 코치처럼 어디에 어떻게 힘을 줘야 하는지. 호흡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응원하듯 말한다. 몇 초간 힘을 주었다가 다시 몇 초 간 코칭을 하는 일이 반복된다. 하나 둘 셋 하는 신호와 동시에 아내의 입에서는 악 문 이 사이로 신음이 새어 나온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간호사 한 명은 배를 누르고, 한 명은 다른 어딘가를 누르고 있으리라는 지난 경험을 통해 어렴풋이 상상된다. 그와 함께 일그러져 있을 아내의 얼굴도 직접 눈으로 보는 듯 머릿속에 그려진다. 막상 직접 하는 것보다 그 상황을 기다릴 때 더 초조하고 겁이 나는 게 마치 어른에게 혼나길 기다리는 아이 같다.

작은 분만실 이쪽 저쪽을 오가며 안절부절하고 있을 때 간호사의 한마디가 가슴을 찌른다.

"산모님 이러면 아이가 힘들어요."

이 말을 하고 그 후로도 비슷한 내용의 말을 계속해서 덧붙이지만 잘 들리지는 않는다. 이미 착잡한 감정은 슬픔을 넘어 비참함에 다가가 있다. 내가 아내 옆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꽉 차있다.

옆에서 손 붙잡고 그런 거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해줘야 하는데...

아직 괜찮다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 안다고...

얇은 천 하나 너머로 이 몇 마디 말을 넘길 수가 없다. 이미 제3자가 돼버린 나는 그렇다.

첫째 아이를 낳을 때 잠시 머리가 끼어있다가 나왔다. 그래서 아이는 나오자마자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회복실로 들어갔다. 몇 시간 후에 만난 아이는 머리 모양이 마냥 동그랗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냥 그런 거였다. 출산은 순조로웠고 아이도 건강했다. 간호사도 일반적인 상황 중에 하나로 여겼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그게 미안했는지 그 이후에도 몇 번이나 그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아이가 건강하게 커나가며 지금은 이야기를 자주 꺼내지 않지만, 처음에는 자기가 부족해서 아이를 힘들게 한 거라 생각하고 그래서 많이 미안해 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간호사도 아내를 탓하며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아이도 힘들어할 것이다. 그래서 산모가 힘을 내는 데 도움이 될만한 수십 가지 문장 중에 하나를 꺼냈으리라... 다만 아내가 아이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무슨 느낌이고 무슨 생각을 할지 너무 잘 안다. 힘을 더 내긴 하겠지만 혹시라도 마음에 짐이 남을까, 스스로를 죄인처럼 생각할까 걱정이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9시경

갑자기 커튼 뒤에서 간호사 한 명이 나와 내 손을 소독하고 그 위로 멸균 장갑을 끼운다. 이제 곧 아이가 나온다는 사실과 아내 옆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저 밑에 떨어져 있던 내 기분을 조금 끌어올린다.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아내가 누워있는 침대 머리맡으로 다가간다. 아내 옆에 다가서 그 안의 정신없는 풍경을 눈에 담는 순간 갑자기 작은 핏덩이가 맡은 편 의사의 손으로 들려 올라온다. 눈앞에서 간호사들이 정신없이 처치를 하기 시작한다. 그 사이 난 아내를 쓰다듬으며 고생했다고 말을 건넨다. 아내는 진이 빠진 모습이지만 그래도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보이기 시작한다. 나도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진다. 의사와 간호사가 탯줄을 자르라고 가위를 손에 쥐여준다. 어떤 아빠들에게는 의미가 있는 순간이라고 하던데 빨리 처치가 끝나고 아내하고 수다 떨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아이를 아내 배 위에 눕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사진도 찍고 난 후 아내는 후처치를 하러, 그러고 난 아이의 상태를 조금 더 확인한다.



아이는 건강하다.

아이 상태에 관한 몇 가지 체크가 끝난 후 아내와 아이가 회복하는 동안 받을 검사와 케어 등에 대해 간호사가 묻는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간호사가 하는 말이 제대로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냥 다 해주시고 다 좋은 걸로 해달라고 말하고 몇 가지 종이에 사인을 한다. 아내에게 충분히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고, 앞으로도 한동안 힘들 텐데 그 사이에 섭섭함 같은 감정을 끼워 넣고 싶지 않다. 더 해줄 수 있는 게 있으면 더 해주고 싶다. 앞으로 내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확실히 그렇다. 그리고 이런 절차들은 대충 처리하고 빨리 아내 옆으로 가고 싶다. 갓 태어난 아이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지금 내가 필요한 건 산모니까….아무리 생각해도 난 닭이 달걀보다 먼저인 것 같다.

분만실로 돌아가니 어느 정도 처치가 끝난 아내 얼굴에서 한껏 여유가 느껴진다. 서로의 감정이 연결이라도 된 것처럼 내 안에서도 조금씩 여유가 생긴다. 무통 빨아 잘 낳았다는 등의 농담을 서로에게 건넨다. 아내가 힘들어하는 동안 분만실 한편에서 느꼈던 비참함이 사그라진다. 이런저런 감정들이 사라지고 고맙다는 감정만이 생생하게 남는다.

고맙다.

이제 내 차례가 온다는 사실에 한결 마음이 편하다.

이제 더 이상은 제3자가 아니다. 아빠의 육아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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