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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용 Mar 05. 2021

아이를 어린이집이라는 물가에 내놓고 오는 길

 난 아이를 어떻게 어떤 식으로 키울지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어느 정도 정해놓았고,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키우고 있었다.

 물론 그런 큰 틀을 잡기 위해서 20권 정도의 책도 정독해보고 보고 오래전 교직이수 때 봤던 전공 서적들도 끄적여보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논문도 몇 개 찾아볼 정도였다. 수박 겉핥기 식의 근본 없는 공부라 열심히 한 것에 비해서 알게 된 건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몇 가지 결론을 낼 수 있었는데 그중에 가장 큰 성과는, 아이들에 키우는 데 있어서 대해서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나 육아에 관해서 어떤 한 사안을 가지고 정말 정 반대의 주장을 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각 각의 주장마다 꽤 믿을만한 자료와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낸 결론은 다 장점들이 있어 보이니 내 경험에 비추어 큰 틀을 정하였는데, 그중 몇 개를 꼽자면, 음식은 탄단지 비율 잘 맞춰서 단백질 위주로, 영어 공부 빨리 시키지 않는 것, 그리고 아이의 의사소통이 원활해지면 어린이집에 보낼 것 정도가 있었다. 그 외에도 잠자는 시간은 일정하게 가지고 가는 것과 영상매체를 접하는 시기들도 대략 정해놓기는 했는데 다행히 아이의 기질과 아내의 수고로 인해 대부분 내가 처음 생각한 것과 크게 어긋나지 않게 잘 지켜져 왔다.

 그런데 이 중에 내 예상과는 크게 빗나간 것이 하나 있었는데 이는 어린이 집을 보내는 시기이다.

 위에는 의사소통이 원활해지면 어린이 집을 보내겠다고 했지만, 시기로는 대략 36개월 정도를 예상하고 있었다. 보통 여러 자료에서 36개월 정도가 지나서 보내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자료들이 많고 이 부분에 대해서 약간의 의견차가 있지만 크게 반대하는 의견이 없어 보였기에 나도 자연스레 그 정도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영유아 교육에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한편으로는 조금 꺼리는 입장이기도 한 것이 난 아이와 엄마, 아빠 사이의 유대와 끈끈한 애착 관계 아이의 신체적, 정신적 발달이나 차후의 학업 성취 등에 완전한 밑바탕이 된다고 조금 강하게 주장하는 편이다. 그래서 아이가 너무 어렸을 때는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는 시간보다는 그 시간에 엄마 아빠가 더 살로 부대껴주고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훨씬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다. (간혹 아이가 말이 느는 속도를 보고 조기 영어 공부에 혹할 때가 있긴 한데, 내 해외생활 경험에 비추어 너무 어린아이가 여러 나라 말을 배우면 하나의 언어도 깊이 있게 구사하지 못한다는 설을 조금 더 지지한다.)




 맞벌이를 하거나 다른 이유가 있으면 이런 생각을 견지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다행히도 보통의 집에서 어린이 집을 고려할 시점에 내가 코로나로 반백수가 되어버려 우리 가족은 아주 편안하게 그 시기를 늦출 수 있었다. 그리고 36개월에 맞춰서 어린이 집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아이가 두 돌이 지난 지난가을까지도 있었는데, 이는 세 가지 이유로 완전히 바뀌었다.

 우선 아내 뱃속에 둘째가 생겼다.

 둘째가 태어나고 어느 정도 자라는 시기까지 수월하게 돌봐주려면 그래도 첫째가 어린이 집에 가 있는 게 좋았다. 그렇기에 임신 사실을 알고 급하게 어린이 집을 찾아보는데, 여기서 두 번째 이유가 나왔다.

 요즘의 어린이 집은 내가 보내고 싶다고 보낼 수 있는 게 아니더라.

 우리 동네가 조금 심한 편에 속하는 것 같긴 한데, 국공립 어린이 집은 물론이거니와 민간어린이집 가정 어린이 집도 10월 경에 신청을 했는데 2월까지 입소가 가능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상황이 이러니 내가 너무 느긋하게 생각한 것이 아닌가 싶으면서 조금씩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일 수 있는데 아내와 아이 모두 어린이 집에 보낼 준비가 되었다고 느껴졌다. 딸아이는 의사소통이 꽤 되는 편이고 놀이 학교나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보면 집중력이 꽤 좋은 편이라 같이 수업 듣는 어머님들도 유심히 쳐다봐주시곤 했고, 9명 있는 반에서 제일 잘하는 아이로 상장도 받아왔다.(아이가 잘 해서 받게 된 건지 항상 아빠와 함께 다녀는 모습에 눈에 잘 띄어 그런 건지는 확실치는 않다.) 그런 모습이 그동안 부대끼며 쌓아온 시간의 보답인 것 마냥 나름 우리 사이에 끈끈한 유대와 애착이 쌓여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아내에게도 개인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집에 있으면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 보통의 엄마들보다 아내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이 넓다고는 해도 내가 일을 아예 안 하는 게 아닌 이상 한계는 있었다. 아무래도 내 스케줄이 우선시 될 수밖에 없었기에 아내에게도 매일매일 가질 수 있는 고정적인 개인 시간이 필요했다. 이마저도 둘째의 임신으로 인해 시한부가 되었지만...


 어쨌든 이래저래 해서 어린이 집을 늦게 보내겠다는 생각은 이미 멀리 사라져 버리고 반대로 이곳저곳 알아보기를 4~5달을 하다, 도저히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은 보낼 수가 없어, 차로 10분 남짓 거리의 어린이 집에 입소를 하게 되었다.

 입소를 하게 결정되기까지나 입소가 결정된 후에 등원 준비를 하는 과정은 솔직히 난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 자세히는 모르겠다. 아내가 거의 모든 과정을 맡아서 했는데 등원 2~3주 전부터 뭔가 부산스럽고 긴장되고 생각이 많아 보였다. 그리고 아내의 그런 감정을 첫 등원 전 날 때쯤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여긴 풀밭치곤 좀 위험해 보이긴 하네.


 물가에 아이를 내놓는 기분 같다는 말은 나에게는 조금 과장인 듯하다. 그 정도로 불안하지는 않지만 내 손을 놓고 풀밭으로 달려 나가는 아이를 보는 그런 느낌이다. 편안해 보이고 푹신푹신해 보이는 풀밭이지만 왠지 안 보이는 돌부리가 튀어나와있을 것 같고, 왠지 부러진 나뭇가지가 하나 널브러져 있을 것 같고, 괜히 신나게 뛰다가 이상한 똥 같은 것이라도 밟을 것 같기도 하고, 이젠 평소에 잘 넘어지지도 않는 아이가 괜히 엄한 곳에서 넘어져 무릎 다 깨져서 울면서 돌아올 것 같은 그런 느낌. 매일 가는 공원, 매일 가는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를 보면서는 느끼지 못할 그런 느낌이 저녁 내내 있었다.



  

 첫날 등원을 시키고 나서 어린이 집 앞에 커피숍에 앉아서 기다리는데, 적응기간이라 엄마와 함께 있지만 이미 내 손을 살짝 떠난 느낌이 들면서 이틀 후에 혼자 어린이 집에 갈 아이의 모습이 점점 걱정되기 시작했다.(적응기간에 아내 대신 내가 들어가고 싶었으나 아빠가 있으면 무서워하는 아이들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해서 생각을 접었다. 육아 관련해 아빠가 이방인이 되는 건 일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익숙하다.)

 혼자 들어가는 날도 어린이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적응을 잘못하기라도 하면 곧장 데이트 코스로 모셔 기분을 풀어주긴 하겠지만, 계속해서 가야 하는 곳이니 가능하면 빨리 적응을 잘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친구들과도 잘 지냈으면 하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들어서 이쁨 받았으면 하는 욕심도 생겼다. 부산스러운 분위기에 스트레스를 받을지, 아니면 친구들 많은 곳에서 신나게 놀지 궁금하기도 하고, 어린이 집 다니면 감기네 뭐네 하는 전염병은 다 걸린다는데 그것도 걱정이기도 하고, 특히나 코로나도 걱정이고...  생각이 참 많았다.

 그리고 이런 일이 앞으로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조금 더 인식하게 되었다. 이제 학교도 가고, 혼자 버스나 지하철을 탈 일도 있을 거고, 조금 더 크면 친구들하고 여행 갈 일도 있을 거고, 더 크면 남자 친구랑 놀러도 다니겠지. 친구들하고 놀러 간다고 거짓말하고 남자 친구랑 놀러 가는 걸 모르는 척해줘야 하는 날도 언젠가는 올 것 같다.(나랑 아내가 그러고 다녀서...) 세상 사람들이 다 하는 너무 당연한 일들도 다른 사람이 아닌 내 딸이 처음 하는 그 순간의 느낌은 너무 복잡할 것 같다는 걸 이미 느끼고 있다.


놀다 뒤돌아보면 거기 있는 엄마.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조금 더 단단하고 올곧게 클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다.

 험한 세상에 잘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 충분히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자기 목소리를 충분히 낼 수 있는 아이가 되도록 내가 먼저 공부하고 아이 목소리를 더 많이 들어줘야겠다.

등원 첫날의 마음으로 언제든 힘들고 엄마 아빠가 보고 싶으면 찾아올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겠다. 그러기 위해선 꾸준히 대화를 많이 해서 아이와 나 사이에 거리감이 없도록 노력해야겠지. 어디 같이 다닐 때 안 부끄럽게 살도 좀 빼고 꾸미는 법도 조금씩 배워둬야 될 것 같고, 먹고 싶은 거 정도는 뭐든 편하게 말할 수 있게 지갑도 빵빵해야 될 거다. 자식이 힘들 때 엄마만 찾는 건 싫다.





 어린이집 첫날 등원을 하자마자 우리 셋은 아내 필라테스 등록을 하러 갔다. 이는 어린이 집에 등원하면서 생기는 시간 중 일부를 아내와 뱃속의 아기의 건강을 위해서 사용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아침에 추가로 생기는 몇 시간을 운동을 하거나 글을 쓰던 어떤 식으로 사용할지 생각하고 있다. 하루를 꽉 채우던 아이를 어느 정도를 덜어낸 만큼 그것을 다른 것으로 채워가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아빠들은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사회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드물지만 엄마들은 하루 종일 육아에 시달리다 보면 어느새 육아 자체를 통해서만 자신을 찾는 경우를 많이 본다. 난 이런 점이 엄마와 아이 모두에게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아이가 커가면서 자연스레 생기는 부모의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가 육아나 교육을 비롯해 가정 자체에 큰 영향을 준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이것저것 하길 좋아하는 나에게는 오랜만에 이런 완전한 자유시간이 생긴다는 조금 설레고 기대되기도 한다. 아내를 비롯한 많은 엄마들도 그렇지 않을까?


 오전에 브런치 카페나 커피숍 등을 가면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을 보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어머니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그 시간에 만날 동지가 없다는 건 조금 아쉽다. 그 시간에 같이 운동하면서 아내들 흉 볼 동지 하나 있으면 좋을 텐데...

 

 지금 이 글은 등원 4일째. 어제 처음 엄마 없이 어린이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온 딸이 어린이 집에 가기 싫다고 보채는 걸 힘들게 등원시키고 그 앞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쓰는 글이다. 살며시 눈물을 비추는 애 엄마를 위로하는 나 역시도 가슴속이 먹먹하고 무겁지만 한편으로는 아이와 애착이 잘 형성되어 있는 건가 싶어 안도가 되기도 한다. 머릿속과 마음속이 모두 너무 복잡하다. 이렇게라도 보내야 하는 건지 계속 집에 데리고 있는 게 좋은 건지 정답이 없다.


 글을 쓰면서도 생각이 잘 정리가 되지 않아 글이 두서가 없는 느낌이다. 뭐하나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이 것이 아이를 물가에 내놓은 부모의 마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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