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안 먹는 아이의 성장기 +쓸데없는걱정
이제 몇 달 후면 3년이 되어가는 아기와의 시간 중에 내가 궁주(=내 딸)가 놀랄 만큼 목소리를 높였던 적이 몇 번 있다. 내가 인식을 잘못하는 경우도 있을 듯해서 몇 번이나 그랬는지 아내에게 물어보니 2번 정도인 것 같다고 한다. 나 스스로는 적은 횟수라고 생각하는데, 궁주를 대하면서 크게 감정에 휘둘릴 일이 없는 건 내 성격이 침착하거나 점잖아서가 아니라 궁주와의 생활 자체가 휘몰아치는 태풍이나 스나미와 같은 어려움이 없는 비교적 평온한 일상들의 연속이여서다.(비교적이다... 비교적...)
이러한 감정이 휘몰아치는 기억 중에 내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한 번은 궁주가 태어난 지 몇 달 되지 않았을 때 분유 먹이다 터진 상황이었다. 물론 아이에게 화가 나서 목소리를 높인 건 아니고 그 상황이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서 푸념에 가까운 한탄을 내뱉은 것이었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겪어봤을 만한 그런 일이다. 그리고 그때의 강렬한 기억을 제외하고더라도 궁주와의 일상에게 가장 힘든 부분을 꼽으라면 난 어렵지 않게 밥을 먹이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밥과 관련된 스트레스가 컸다.
모유를 비롯해 분유, 이유식, 지금은 밥까지 어느 것 하나 먹이는 게 쉽지 않았다.
조리원에 있을 때 분유 15ml 먹이는데 30~40분씩 걸리곤 했다. 아이를 아직 안 키워보셨거나 아니면 오래전에 키워보신 분들은 이 정도가 얼마나 안 먹는 건지 잘 가늠이 안 될 것 같아 비교 대상을 말하자면, 갓 태어난 아기들도 며칠 지나면 분유를 30~40ml씩은 먹고 조금 지나면 잘 먹는 아이들은 몇 주 안에 80~120ml 가까이 먹는다. 그리고 먹는 시간도 길어봐야 10분 정도. 거기에 비해서 궁주는 먹는 양은 절반 남짓, 먹는 게 걸리는 시간은 다른 아이들의 3~4배가 걸려 조리원 생활이 끝나고 집으로 온 이후에는 하루가 진짜 밥 먹이다가 끝난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었다.
분유 준비하고 식히는데 5~10분, 밥 먹이는데 40분~1시간, 그리고 트림시키는데 10분. 이렇게 한번 밥 먹이는데 1시간 반 정도가 걸리는데 이걸 8~9번씩 하면 밥 먹이는 것만 하루에 10시간이다. 특히나 생후 몇 달간은 밤 시간에도 꼬박 꼬박 밥을 먹어야 하고, 아내의 회복을 위해 밤 수유는 내가 자처해서 했는데, 수유 관련 시간 1시간 반에 다시 재우는 시간 포함하면 원래 잠을 잘 못 자는 내 입장에서는 수면은 거의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이런 체력적으로 힘든 것과 다른 또 하나의 스트레스는 내가 아이를 제대로 못 돌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느낌이 계속 든다는 것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저렇게 안 먹는데 몸무게가 쭉쭉 늘어날 일이 없었다. 태어났을 때는 또래 아이들 평균에서 평균 이상에 걸쳐 있던 몸무게가 점점 뒤로 처지는 걸 보면서, 궁주의 체중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성적표인 것 마냥 너무 신경 쓰였다.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뭔가 잘못하고 있는 느낌도 들고, 이러다가 어디 문제라고 생기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되고 정신적으로도 힘든 시기가 이어졌다.
이렇게 체력이 점점 고갈되다 보니 점점 예민해지고 여느 날과 다름없이 어르고 달래며 밥을 먹이던 중 나도 모르게 쌓여있던 게 터쳐버려,
"제발 좀 먹어라!!!"
라고 반 절규 + 반 외침으로 목소리를 높였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렇게 3년 가까이 힘들게 먹이고 키워온 결과는 꽤나 괜찮은 편이다.
아이 성장 발달 계산기를 돌려보면 키와 몸무게 모두 75% 정도로 또래 아이들 평균 이상으로 나온다.
주변에서 아이를 보면 밥 잘 안 먹는 아이라는 상상을 전혀 못 할 정도로 건강하게 균형 있게 잘 크고 있어서 그동안의 노고에 뿌듯함을 느낄 정도이다. 그리고 이제는 아이들이 당연히 좋아할 만한 달고 자극적인 군것질 거리들을 즐기지 않는 모습과 종종 올라오는 소아비만 관련된 기사들을 보면 궁주가 먹거리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이런 걸보고 있자면 아이를 키워오며 그 당시에는 너무나 큰 걱정거리였던 문제들이 지나고 나면 그렇게까지 걱정할 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밥을 너무 안 먹거나, 군것질을 너무 좋아한다거나, 걷는 게 느리거나, 말이 느리거나, 다른 아이보다 몸집이 작가다, 반대로 너무 크고 뚱뚱하거나, 기저귀를 못 뗀다던가, 너무 떼를 쓴다던가 하는, 소위 말하는 "평균"에 벗어나 있다는 이유로 몇 날 며칠을 걱정하는 시기가 있는데, 주변에 아이들을 보면 대부분은 그냥 적당히 자기 페이스대로 잘 큰다고 말하고 싶다.
아이가 풀밭의 잡초처럼 그냥 잘 큰다는 뜻은 아니다. 부모로서 응당 해야 할 관심과 애정, 노력을 준다면 크게 걱정할 만한 상황은 생각보다 적다 정도의 뜻이고 실제로 주변을 봐도 그렇다. 특히나 어떤 행동을 해내는 시기에 대한 비교는 점점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는 게, 때가 되면 다 걷고, 때가 되면 말하더라.
그렇다고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의 여러 순간들이 주는 환희와 조마조마함을 다 무덤덤하게 넘어가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조금 늦더라도 어느 순간에는 다 비슷하게 커 있는 아이들을 보게 될 테니 조금 빠르다고, 조금 느리다고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정도이고 적당한 응원과 기대는 늘 가지고 있어도 좋다. (이게 육아의 낛이니...)
경우에 따라선 조금 더 많은 관심과 치료가 필요할 때도 있다. 내 주변에도 언어치료라든지 ADHD 관련 치료라든지, 부모와의 애착관계 문제로 치료를 받는 가정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치료 역시도 위에 말한 부모의 관심과 애정, 노력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부모가 아이의 성장 상태를 제대로 인지하고 그에 따라 적절한 반응을 한다면 많은 아이들의 성장은 어느 시점에는 비슷한 곳에서 만나는 듯하다.
지금도 아내와 간혹 웃으며 이야기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산부인과에서 나와서 산후조리원으로 이동하는 1시간 남짓한 차 안에서의 경험이다.
일상적으로 다니던 길인데 길 위에 떨어져 있는 아스팔트 부스러기가 무슨 큰 돌멩이라도 되는 것 같은 느낌.
평소에는 조용하다고 편하다고 느낀 내 차가 수십 년은 탄 용달차처럼 덜덜거리는 것 같고, 시속 70~80킬로 정도로 지나가는 옆 차들이 레이싱카처럼 보이는 그 느낌. 급하게 A4 용지에 매직으로 써서 붙인 '생후 3일 된 신생아가 타고 있어요'라는 문구 때문인지 서울 시내를 거북이처럼 움직이는 차 뒤에서 클락션 한 번 안 울려주신 주위 운전자들에게 어찌나 감사하던지... 운전면허 도로 주행 시험이나 처음 차를 몰고 도로로 나갔을 때와도 비교도 안 되게 긴장하고 운전을 했었다.
육아를 하는 내내 비슷한 종류의 조금 과한 긴장과 걱정, 그리고 세상에 대한 경계를 가지고 살게 되는 것 같다. (그날에 비할바는 아니다.)
물론 아이가 크게 아프다거나, 다른 불편한 이유들로 내가 지금 말하는 범주를 넘어서 걱정에 휘감기는 일도 생길 수 있고, 그런 일을 겪으시는 부모님들도 있다. 그분들의 마음을 내가 헤아린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에 뭐라 말할 수는 없다. 지금 생각하면 사소한 일들이지만 그건 지난 후라 쿨하게 말할 수 있는 것들이고 겪는 동안에는 진짜 미쳐버릴 것 같은 일들이 너무 많았고, 앞으로 키워나갈 것도 걱정이 태산 같으니까...
그냥 내가 궁주와 시간을 보내며 사소한 걱정들 때문에 정작 중요한 부분은 놓치지 않도록 조금 더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스스로에게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