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용 Aug 19. 2021

4개 국어 하는 아빠의 영어 교육

어렵군요.

 "아이 외국어는 어떻게 가르치는 게 좋을까?"

 살면서 종종 들은 질문이다. 그들이 이렇게 물은 건 내가 이 나라 저 나라 떠돌며 오래 살았고, 3개의 외국어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아이를 해외로 데리고 나가서 생활할 가능성이 높기에 이미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일 수도 있다.


 난 4개 국어를 한다.

 모국어인 한국어를 제외하면 영어, 중국어, 태국어를 할 수 있다. 어떤 목적이 있어서 공부를 하지는 않았다. 어쩌다 보니 여러 나라에서 살게 되어 그 나라 말을 배우게 됐다. 난 대학교를 다니면서 2학기를 중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냈고 졸업 후에는 태국에서는 4년 정도 살았다. 그 이후에는 대만, 필리핀, 태국 등을 이사하며 살았는데, 대만은 한 3년 정도, 필리핀은 2년 정도 살았던 것 같다.  (각각의 나라 모두 계약된 집이 있었던 시기가 몇 년 있어서 그 기간은 어디에서 살았다고 정확하게 기간을 나누기가 애매하군요.) 살아온 기간에 비해 수려하고 유창한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각 나라에서 일과 관련된 미팅도 그 나라 말로 했으니 여행 외국어나 생활 외국보다는 조금 더 나은 수준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저런 질문을 하는 건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니지만 어쨌든 질문을 받았으니 다시 이렇게 물으며 천천히 내 의견을 밝혔다.

 

 "30년 넘게 한국말했어도 유재석이나 신동엽만큼은 한국말 못 하시죠?"


 보통 언어를 아기 때부터 가르치는 경우 쉽게 모국어처럼 배울 수 있다는 과학적 사실에 기인한다. 사실이고 우리들이 나이를 먹고 외국어 때문에 고생하는 걸 생각하면 굉장히 달콤한 유혹이긴 하다.  

 하지만 난 너무 어린아이가 외국어를 배우는 것에 반대한다.

 한국어도 잘하기 어려운데 외국어 욕심을 낸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영어 조기 교육에 관심이 없는 이유는 확실하다. 난 크게 세 가지 정도를 늘 말한다.


 첫 번째로 언어를 잘 구사하는 건 단순히 단어와 문법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의 언어를 '잘' 한다는 건 발음이 좋고, 어려운 단어를 구사할 수 있으며, 늘 써왔던 문장을 편하게 구사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언어를 '잘' 한다는 건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데, 언어 조기 교육은 생각이 커나가는 걸 막을 수 있다.


 난 언어의 표현의 폭이나 깊이가 사고의 그것과 거의 동일하다고 믿는 편이다. 

 

굳이 이렇게 복잡하게 까지는...


 일례로 우리는 무지개가 빨주노초파남보 7가지 색깔로 되어 있다고 배우고 또 그렇게 알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나 영어권에서는 남색이 빠진 6가지 색으로 인식한다고 한다. 일부 독일이나 네덜란드 같은 일부 나라에서는 5가지 색으로 구분하기도 하고, 아프리카에서는 2가지 색으로 인식하는 나라도 있다고 한다. 무지개는 색상 스펙트럼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나라에서는 무지개 안에서 남색이 보이고, 어느 나라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언어란 그렇다. 세상을 보는 방식과 배우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이 언어의 폭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에, 난 한 언어를 깊게 배우는 게 무조건 우선시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언어 능력과 사고 능력은 다른 영역의 학습과 앞으로 사회생활에 무조건 큰 영향을 준다. 하지만 외국어는 그렇지 않다.

 또한 실제 해외에서 만난 교민들의 아이들을 봤을 때 2개 언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반대로 2가지 언어 모두 평균 이하로 구사하는 경우는 자주 봤기에 이런 생각이 점점 굳어졌다.




태국 요리인 카오만까이. 까이텃과 까이똠으로 나뉜다. 현지 말을 잘하면 로컬 음식을 제대로 원하는 대로 주문할 수 있다. 내가 태국어를 진지하게 공부하기 시작한 이유. 진심!!!


 그리고 두 번째는 그렇게 열심히 배울 필요까지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외국어를 하면 확실히 좋을 때가 있다. 여행 중이라면 아무래도 로컬 식당 등 영어가 안 통하는 곳에서 특히 태국어나 중국어가 빛을 발할 때가 많다. 하지만 번역 어플이 점점 발달하는 요즘은 그런 메리트는 그다지 크지 않다. 물론 우연찮게 친구를 사귄다면 꼭 그 나라 말이 아니더라도 짧은 영어가 큰 도움이 된다. 사람 사이에는 번역기보다는 어설픈 육성이 훨씬 친해지는데 도움이 되니까.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짧은 영어로도 충분하다. 술이라도 한잔 마시게 되며 어디 숨어 있었는지도 모를 영어실력이 튀어나오니 더더욱 걱정이 없다. 이처럼 생각보다 외국어를 필요로 하는 일이 많지는 않다. 유학을 가거나 외국과의 비즈니스를 진행한다고 하면 물론 유창한 외국어 실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학을 준비한다면 그에 걸맞게 열심히 공부를 할 것이다. 일을 할 때도 필요하다면 어른이 되서라도 열심히 습득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외국어는 부족해도 다른 일처리 능력이 훌륭하다면 외국어 실력은 그더지 중요하지 않다. 그 나라 말 잘하는 직원을 옆에 붙이면 그만이다. 또한 한편으로는 지금 아이들이 클 20년 정도 후에는 통역이 되는 보청기 정도는 나와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언어 조기 교육을 반대하는 이유는 어렸을 때 부모가 강제로 주입시키면 아이가 흥미를 잃거나 싫어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난 영어가 아니라 어느 무엇이라도 부모가 억지로 시키면 아이들이 능률적으로 공부할 수가 없다. 거기서 끝나면 다행인데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성격이나 자립심 등에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까지가 얼마 전까지의 나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최근 이 중 세 번째 이유에 대해서는 조금 더 깊게 생각을 하고 있다.


 "아빠 나 영어 공부할래. 영어 선생님하고 싶어."


 얼마 전부터 4살 첫째 아이가 종종 나에게 던지는 말이다.

 아이가 영어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 같이 잠들기 전에 자기가 아는 단어들이 영어로 뭔지 엄마에게 물어본다고 한다. 아내도 어느 순간 모르는 단어가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는데 낮이면 짬짬이 영어 단어 공부를 한다. 영어가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을 못 하는 아이지만 뭔가 새로운 세상이라 재밌어하는 것 같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 난 부모가 가르치는 관점에서만 생각을 했지 아이가 먼저 배우고 싶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외국어 자체를 즐길 수도 있는데 나도 모르게 성과를 내야 되는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 같다. 정작 나는 재밌게 배웠으면서 그 시절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었다. 나름 깨어 있는 아빠라고 스스로를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생각이 조금 바뀌었지만 언어 조기 교육이 아이의 생각을 폭을 좁힐 수도 있다는 걱정은 여전히 강하다. 하지만 얼마간의 고민 후 아이가 배우고 싶다고 하는데 굳이 막을 필요도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조금씩 가르치려 하다 보니 내가 영어 공부는 학교와 미드를 통해 배운 게 다라 부족함을 많고 이미 발음 문제에도 봉착했다. 그래서 아이가 가볍게 흥미를 해소할 수 있도록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가는 학원을 알아보려고 한다.


아내는 일본어 전공자다. 둘이서 농담으로 아시아 내에서는 어디 가도 밥 굶을 걱정 없다고...


 이렇게 되고 나니 예전에 나에게 아이 외국어 교육에 대해 물어봤던 분들에게 약간 미안한 감정이 생긴다. 하지만 그분들이 내 의견만 듣고 최종 결정을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괜찮죠?

 

 앞으로는 누가 물어본다면 '아이가 좋아하면 가볍게 시켜보세요. 관심 없어하면 조금 천천히 하시고요'라고 대답해줘야지.


 그나저나 영어 교육은 어떻게 시킬 거냐고요?

방향이 정해지면 교육은 전문가에게 맡겨야죠.




이전 11화 마시멜로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