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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용 Oct 21. 2021

마시멜로 이야기

아빠는 불량학생이었나 보다.

둘째를 재우고 자려고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데 어떤 육아 블로거 한 분이 서로 이웃 추가를 했다. 인사도 없이 “받을 거면 받으셔”라는 식의 이웃추가에는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습관처럼 그분 블로그를 찾아갔다. 별 기대 없이 들어갔는데 매너와는 다르게 꽤나 좋은 내용의 글들이 많았다. 여기저기 기웃거렸는 게 그러다 책 읽는 법을 가르치는 내용이 눈에 띄었다. 유아기의 아이가 책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잘 읽을 수 있는지가 아닌, 어떻게 하면 책을 읽게 할 수 있을지가 길게 설명되어 있었다. 주제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흡사 어떤 기계의 메뉴얼을 읊어 놓은 듯 한 글의 분위기에 기분이 찜찜했다. 예전에 봤던 마시멜로 이야기 관련 기사가 떠올랐다.


육아 에세이도 쓰고 육아 블로그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육아에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보게 된다. 육아에 관련된 글은 육아 에세이, 육아일기, 육아 템, 양육법, 교육법, 아이들과 갈만 한 곳, 아이들과 할만한 것들 정도로 나뉜다.

굳이 열심히 그것들을 찾아보는 성격은 아니다. 보통 네이버 포털 메인에 걸리는 글들이나 내 블로그를 찾아와 주신 분들의 블로그를 다시 찾아가 그분들의 이야기를 보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도 내가 관심을 가지고 보는 것은 주로 아이들과 갈만한 곳과 아이들과 할만한 것들 정도지 나머지는 솔직히 그다지 관심을 가지고 보지는 않는다. 육아 일기는 블로그보다는 인스타그램이 가볍게 보기 좋고 육아 에세이는 쓰는 사람 자체가 적기도 하고 블로그보다는 책이 더 손이 간다. 육아 템은 아내가 워낙 잘 알기도 하고 주변 엄마들의 입소문으로 좋은 제품들을 잘 찾아오기에 쇼핑에 관심이 없는 내 성향과 맞물려 아내의 즐거움의 영역으로 남겨져있다.

첫째는 하루에 책을 수십 권 읽는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이런 것들을 빼고 나면 양육법과 교육법이 남는데 둘 다 보면 머리가 지끈거리는 영역이다. 양육법은 너무 어렵고 교육법은 너무 번잡스럽다.


블로그 등에 올라와 있는 양육법은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서로 다른 아이의 행동에 어떠한 답을 내기 위해 적당한 프레임을 씌우고 공통분모를 찾아내 적당히 두리뭉실한 말로 싸 놓은 경우가 많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이들이 다르고 부모가 다르고 지내는 환경이 다르기에 각 가정에 맞는 맞춤 정답을 인터넷 상에서 찾을 수 있을 리 없다. 혹시라도 그런 경우가 있다면 아주 운 좋게 내 몸에 딱 맞은 기성복을 찾은 것처럼 그 가정이 무난 무난하거나 운이 좋았던 것이다. 그런 행운이 없다면 적당한 가격과 퀄리티에 적당히 내 몸에 맞는 옷을 골라 적당히 입은 수밖에 없다. 약간의 돈을 들여 옷의 기장과 품을 줄여 입을 수 있지만 그러면 이미 기성복의 범위를 벗어나게 되므로 여기서 말하는 인터넷 상의 양육법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그렇기에 나름 옷을 사듯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우리 아이에게 맞는 양육법이 있는지 꾸준히 찾고 맞춰봐야 하기에 좋은 양육법을 찾아 적용시키기는 꽤 어렵다.


그에 반해 아이들이 무언가를 배워야 하는 시기부터  부모가 접하게 되는 공부에 관련된 내용들은 너무 복잡하다. 그런 글들을 보면 책을 읽는 법을 가르쳐야 하고 영어를 하는 법을 가르쳐야 하고, 하다못해 친구를 사귀는 법도 가르쳐야 한다. 물론 부모가 아이가 어떤 것을 처음 시도해볼 때 방법을 알려주고 도움을 주는 건 당연하기에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굳이 이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2000년대 중반에 마시멜로 이야기란 책이 큰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어렸을 때 마시멜로 1 개를 아이들 앞에 놔두고 그걸 먹지 않고 일정 시간을 참으면 2개를 주는 실험을 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실험에서 참여했던 아이들을 추적 조사했더니 마시멜로는 먹지 않은 아이들이 성공해 있더라 하는 이야기다. 워낙 많이 소개가 됐고 그 안의 오류들도 많이 밝혀져 지금은 그냥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정도로 받아들여지지만 출판 당시에는 큰 이슈가 된 책이었다. 그런데 나에겐 이 책의 내용만큼이나 나중에 나온 기사 하나가 다 인상적이었다. 그 책 때문에 참을성을 가르치는 학원이 생겼다는 기사였다. 자녀 교육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인지 ‘별 짓 다하는 구만’ 정도가 그때 기사를 본 내 감정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별짓의 범위가 훨씬 넓어진 느낌이다. 책을 읽은 법을 가르치는 책을 읽고 그 책 내 대로 아이가 책을 읽도록 가르쳐야 한다니… 무슨 말장난인가 싶지만 실제로 그런 걸…



난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못 한 편은 아니었기에 학교 선생님들의 관심을 많이 받은 편이었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특별반 이란 것에 분류돼서 따로 공부를 더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속으로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어떻게 하면 자퇴하고 검정고시 봐서 대학교를 빨리 갈 수 있을지를 꾸준히 고민했다. 실행력이 부족해 결국은 성공하진 못 했지만 대신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조금 머리가 컸다고 학교를 잘 나가지 않았다. 소위 말하는 노는 학생은 아니었다. 그냥 반골 기질이 꾸준히 표출된 건데 40이 넘은 지금 생각해도 그때 학교를 빨리 그만뒀다면 조금 더 좋은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싶다. 이건 걸 보면 사람 참 안 변하고 난 여전히 철이 덜 들었다. 어쨌든 이런 내 성격 탓에 어린아이들에게 부자연스럽게 무언가를 주입하는 걸 보면 나도 모르게 반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성격 상 학창생활이 감옥 같았던 나와는 달리 학원과 교육을 일찌감치 준비하는 부모님들은 아무래도 나보다는 훨씬 재밌고 신나게 학창생활을 보내고 거기서 나름 소기의 성과들을 얻어내셨나 보다 하고 생각할 뿐이다. 그래서 좋은 걸 더 빨리부터 물려주고 싶으신 거겠지.

티니핑 역할 놀이 시 역할은 바로핑이다. 바로핑과 아빠는 둘 다 책을 좋아해서라는 게 아이의 이유다. 이미지 세탁 성공.


예전 방콕에 살 때 태국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아서 간 적이 있다. 그날 때마침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친구네 막내 동생이 학교에서 한 학기 정도 플루트를 배웠다고 가족들을 다 불러 모아 작은 연주회를 펼쳤다. 10분 남짓한 시간의 공연의 평을 내리면 내가 플루트를 입에 대 본 적은 없지만 3일만 배워도 그 아이보다는 잘 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그런 공연이었다. 중간중간 소리가 끊겼고 운지를 잘못해 다시 잡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아마 원래 곡은 한 5분도 안 되는 곡이었을지도 모른다. 끊기는 일이 많고 워낙 지루해서 체감상 10분으로 들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가 끝난 아이의 얼굴에는 뿌듯함과 자신감이 듬뿍 묻어났다. 그리고 그 아이의 표정에 답하듯 온 가족이 큰 박수와 칭찬을 아낌없이 던졌다. 중학교 3학년 아이가 있는 우리나라 가정에서 있으리라고는 그다지 상상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중에 내 아이도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돼서도 굳이 목표나 목적이 없이 배움을 즐기는 학창 시절을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런 무난하고 편안한 학창생활이 가능할지 생각해보면 머릿속이 어두워진다. 거기다 예전에 학창생활이라고 하면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생의 모습이 떠올랐는데 지금은 유치원 가방을 메고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떠오르는 건 내가 너무 생각이 많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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