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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PP Dec 07. 2023

중고신입 기획자(?)의 첫 1년 회고

나의 정체성은 사업개발인가, PO인가, 서비스 기획자인가?

어쩌면 IT 업계로의 발걸음은 정해진 일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2014년 (이때를 얼마나 후회하면 오죽하면 연도를 기억한다.) 대학교 세미나에서 빅데이터 산학연계 실무교육홍보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이때 완전히 타 전공이었던 나는 할 수 있을까를 어려 번 고민하다 결국 놓아주고 졸업학점을 채우기에만 급급했던 기억이다. 그때 그 과정을 들었으면 나는 지금쯤 10년까진 아니라도 중고신입이 아니라 7-8년 차 경력은 쌓고 있지 않았을까?


당시 첫 커리어를 PM 직무 인턴으로 시작했었다. 나를 추천해 줬던 분께 들은 본래 전공의 초봉보다 한참 낮은 연봉을 듣고... 좋은 경험이었다 생각하고 그 길을 뒤로한 채, 본래 전공을 살려 4년 정도를 일했다. 그 과정에서 자발적 퇴사의 실업급여를 받을 정도의 병도 얻어보고, 석박사들 사이에서 치여서 문서작성과 커뮤니케이션 스킬만 잔뜩 늘리고. 결국 스킬은 늘었는데 벽에 부딪쳐버렸다. 언젠가 이거에 대해서도 쓸 일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세상엔 쉽지 않은 일이 많더라.


그래서 이번엔 정말 해보고 싶은 것을 해보자!라는 호기로운 마음으로 퇴사했고, 1년의 공백기를 거쳐 지난 회사에서 얻게 된 힌트를 통해 지금의 회사에 입사했다. 이 선택은 좋은 선택이었을까? 이런저런 과정을 거쳤지만 아직 주니어일 뿐인 나에게는 아직까지는 답변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아직도 직무 정의가 덜 되었는데, 당시의 두루뭉술한 마인드의 나를 왜 뽑았지?라는 의문이 더 들고 있으니까. 


그래도, 자 이제 시작이다. 태초마을로 돌아간 기분으로 스타팅 포켓몬을 정해보자.

어차피 포켓몬 마스터가 되려면 모두를 알고, 필요에 따라선 잡아야겠지만.


참고로 내 스타팅은 닉네임 값을 하는 치코리타.... 괜찮은 걸까?






as 사업개발: 시장조사 및 기술동향 조사, 파트너십 형성, 사업 제안... PPT 작성...?


전 회사에서 진행하던 업무 덕분에 PPT에 한해서는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고, 덕분에 다행스럽게도 이 부분의 경력을 인정받아 입사 초기부터 국가사업 제안 업무에 투입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신입으로서는 정말 위험부담이 큰 일이었는데, 당시 방향성을 잘 잡아주셨던 팀장님과 사수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많은 사업 제안이 그렇듯 컨소시엄 간의 지분과 업무 분장은 영업단에서 결정되고, 내가 있던 사업개발팀에서는 그에 따른 협업 모색과 전략 구상 등을 진행했었다. 당연히 아직 커넥션이 전무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없었기 때문에, 현재 시장분석과 기존 사업들을 꼼꼼히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했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서치 한 기업과의 협업이 성사되기도 하고 (사실 필요한 기술을 보유한 기업의 브로셔와 연락처를 찾아드린 것밖에 한 일은 없었다...), 컨소시엄이 펑나서 마감 일주일 전 제안 전략을 다시 짜기도 하고, 철야하다 지쳐서 회사 안마의자에서 새벽 4시에 눈도 붙여 보고. 별 일이 다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신입이니까, 업무의 많은 비중은 결국 문서작업과 PPT이긴 했었다. 그래도 그 과정에서 양질의 문서들과 좋은 파트너를 많이 만나게 되었고, IT알못이던 내가 시야를 크게 넓히고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된 업무들이었다. 시장조사의 일환으로 중국도 가 보게 되었었고, 각종 세미나를 사비로 참여하면서 정말로... 처음 입사할 때와는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진 것도 같다. (물론 고렙분들에 비하면 갈 길이 너무 멀지만)


나름대로 차근차근 JD에 대한 정의를 해나가던 중, 첫 번째 청천벽력이 콰과광.






as 프로덕트 오너: 주니어 PO가 필요한 기업이 있고, 필요 없는 기업이 있다...


대표님의 팀장에게의 지시. 사업개발팀은 한 명 한 명이 모두 프로덕트 오너여야 한다.

그리고, 유감스럽고 슬프게도... 나의 현재 회사는 주니어 PO가 불필요한 쪽이었다.


아직 PM/PO/PL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아서, 그 정의와 직무를 따로 공부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관련 오픈카톡방을 닥치는 대로 들어가고, 관련한 자격증 공부를 하고, 외부의 PO/PM 분들께 커피챗도 요청드려 보고. 그렇게 스스로 정의한 나의 주니어 PO 포지션은 회사 안에선 소용이 없었는데... 내가 소속된 팀은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분들이었기 때문이고, 사업 및 과제 기반의 워터폴 방식으로 돌아가는 회사는 PO가 PM(프로트 매니저, 프로덕트 아님!)의 역할까지 도맡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직무에서의 프로덕트/프로젝트의 차이는 맡은 무언가가 실제로 정책과 세일즈 파이프라인을 갖춘 제품을 목표로 하는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발주된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지의 차이로 이해하고 있다. 최소 기능 프로덕트(MVP)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고도화하는 애자일 기반이라면 주니어 PO는 충분히 주니어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성장할 수 있지만, 프로젝트는 제안요청서(RFP)의 요청사항을 완벽히 수행해야 하므로 그걸 1년도 안 된 주니어에게 맡길 회사는 내 생각에도 없을 것 같다….


이러한 사유로, 업무를 맡긴다면 신입인데 빼도 박도 못해서 맡길 수도 없고, 팀의 롤을 재정의하는 시점에서 함부로 타 부서 협업도 못 하는, 그래서 업무가 붕 뜨는 애매한 상황이 찾아와 버렸다.


그리고 결국 떨어져 버린 두 번째 청천벽력 백만볼트.






as 서비스 기획: 커뮤니케이션! 소통! 목표의 동기화! 이거 안되면 외딴섬이다


팀장과 사수가 퇴사했다. 이제 나는 혼자다. 나를 챙겨줄 사람은 없지만 어떻게든 역량과 나의 포지션을 키워야 한다. 그런 판단하에 옆 팀에서 요청한 프로젝트 원양어선행에 올랐다.


요청한 포지션은 외주로 초기 작업이 진행된 기획의 내재화와 신규 화면 기획 및 매뉴얼, QA. 알고 있기로는 서비스 기획자의 뒷단 업무에 해당했다. 다만 초반부터 합류했던 게 아닌 만큼 여러 가지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1) 외주 기획자의 계약기간이 끝나서 기획과 관련한 인수인계를 받지 못한 채 맨땅에 헤딩해야 했음.

2) 업체의 요청사항에 따른 신규 기획 및 정책 수정사항이 기획자 계약이 끝난 시점에서 PO에게서 개발자로 바로 이동하여, 기획을 하기 위한 팔로우업이 되지 않아 하나하나 물어봐야 했음. 다 물어보고 나서 겨우 정의하고 나면 새로운 게 또 나 모르게 생겨있었음.

3) 일을 하기 위해 왔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인력이 많았음.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덤벼들었는데, 1, 2의 사유로 3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가고 있었다…. 솔직히 밤을 새워서 제안하던 시기보다 심적으로만은 세 배는 더 다운됐었다. 도와주는 사람 없이 내재화 기획 초안을 짜갔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사내에서 협의되고 있던 방향과는 달랐고, 그 방향은 내가 강하게 요청하지 않으면 전혀 공유되지 않았다. 산출물의 문서화와 QA 요청은 항상 급박했고, 평일에 일이 없어 리서치만 하다 갑자기 주말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사람이 필요한 거였구나. 서비스 기획자가 아니라. 그래도 어쨌든 업무는 업무였고, IA나 기능기획 등 세부 업무단에서의 요청은 잘 마무리지었다. 서비스 기획자로의 직무는 몰라도 업무는 어떻게든 해낸 셈. 하지만 사실 성취감은 아쉽다. 그래도 내가 냈던 의견과 전략들을 함께 검토할 수 있었다면 훨씬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마지막으로 본사로 복귀.






많이 헤맸지만, 헤맨 만큼 가치 있는 첫 1년이었다.


사업개발과 PO 직무에서 업계를 넓게 보는 눈과 늦깎이 주니어의 포지션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면, 서비스 기획의 측면에서는 내가 일에 가치를 두는 부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스스로 일에 의미를 부여하여 업무효율을 내는 사람이구나. 


(전) 사수가 퇴사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겨준 조언이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는 거였다. 네가 걱정하는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하지만 항상 그 조급함이 다른 사람들을 따라잡게 해 주었고, 현재에 안주하지 않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당분간은 조급함이 내게 가져다주는 것들이 필요한 시기이고, 2024년은 그걸 추진력 삼아 더 달려 나가는 한 해 삼으려고 한다. 조금 숨이 가쁘긴 한데…. 그거야말로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을까?


이렇게 한 해를 업무적으로 회고하는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나의 선택은 일단은, 첫걸음만큼은 옳았다고 생각한다. 차곡차곡 쌓아나갈 바닥을 다져야지.


다음 글은 올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에 하고자 하는 일들을 가볍게 적어보려고 한다.



치코리타처럼 꾸욱 밟혀도 굳세게 달려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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