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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Dec 21. 2023

발을 땅에 딛다.

창문밖으로 동이 트고, 빗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우기라더니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옵니다.

아침에는 늘 비가 오는 것 같은데 덕분에 빗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서 좋습니다.

태어나서부터 줄곧 아파트에서 살아와서 빗소리를 들으며 일어나는 건 나에게 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발을 딛는 땅이 가까이에 있습니다.

여기는 단층짜리 숙소이고, 또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중앙정원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숙소 안에서는 빗소리, 새의 울음소리, 그리고 공조기들이 돌아가는 소리가 납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보니 큰 새 울음소리, 날카로운 새울음, 지저귀는 소리,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윙 지나가는 벌레 소리, 바람에 나무가 흔드리는 소리, 풀들에 떨어지는 빗소리,  잔디에 떨어지는 빗소리, 저 멀리 파도소리가 들립니다.

바람이 불었다. 잠잠했다 합니다. 바람이 불 땐 입은 겉옷이 따뜻하고 바람이 불지 않을 때는 조금 덥게 느껴집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짠 바다냄새가 납니다. 

해가 나왔다가 들어갔다 합니다. 비구름이 잔뜩인데 구름이 해를 가릴 때면 어두워졌다 구름사이로 해가 나올 땐 찬란한 빛이 납니다. 나는 햇볕을 좋아하는데 비구름에 가려진 햇볕이 조금 있다가는 얼굴을 다시 내밀걸 알기 때문에 비구름도 괜찮습니다. 

오늘도 '아 좋다'라는 말이 육성으로 튀어나왔습니다. 


나의 두발이 땅에 닿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딘가에서 늘 둥둥 떠 있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니 늘 몸은 긴장 중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음이 떨리는데 이 느낌은 설렘, 두근거림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긴장도가 늘 높았어서 주기적으로 마사지를 받았습니다. 

마음의 긴장이 몸으로 발현된 것 같기도 합니다. 

몸을 이완시키면서 마음도 이완시키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일전에 어느 독채 같은 곳에서 마사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주변에 물이 흐르도록 설계가 되어 마사지를 받는 내내 물이 흐르는 소리가 났습니다.

마사지하는 분의 실력은 별로였지만 물소리를 듣다 보니 마음이 이완되는 느낌이 났던 것 같습니다. 


어제 로컬 마사지 샵에 갔습니다.

시설 좋고 깨끗했지만 내부의 콘크리트 위 하얀 페인트 마감이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주었습니다.

마사지를 받는 동안 나쁜 기억들이 올라옵니다. 그 기억 자체가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사실은 과거의 기억인데 그 관계가 변화함에 따라 나쁜 기억이라고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이다음에는 기억(히스토리)과 관계를 분리시키는 글을 써봐야겠습니다. 

어제 읽은 글 중에 나쁜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연결시켜 보라는 부분이 떠올랐습니다.

마사지샵에서 물소리를 배경음악으로 틀어놓았습니다. 실제 물소리겠지만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입니다.

그 물소리로 하얀색 콘크리트 벽을 뚫고 나가봅니다.

몸의 감각에 집중해 봅니다. 마사지 중이니 이보다 더 내 몸의 감각에 집중하기 좋은 순간도 없습니다.

불안이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발이 땅에 닿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 발을 땅에 닿게 하는 여러 방법 중 한 가지 방법을 찾은 것 같습니다.

지금은 딛었기 때문에 금방 또 떨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발을 딛으면서 걸어가 보려고 합니다. 

가끔씩은 뛰어도 보려고 합니다. 

더 이상 몸이 뜨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뿌리를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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