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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선임 Jul 25. 2021

우리 아기가 안쓰럽다고요?

출산휴가만 쓰고 복직한 엄마가 들은 말.

작년에 내가 임신했을 때부터 나는 '출산하고나서 1년 쉬어야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고민하지도 않고 누군가가 물었을 때, '출산휴가만 쓰고 다시 나오려구!'라고 자신있게 얘기했었다. 왜 그랬었는지 사실 잘은 모르겠다.


누군가는 우리 엄마가 키워주니까 자신있게 빨리 복직했냐고 했다. (사실 엄마가 키워주지도 않으심)

누군가는 우리집이 잘 살고 여유있어서 그랬냐고 한다. (베이비시터를 고용하기 때문에)


종일 독박 육아? 난 못 해...


사실 그런저런 이유라기보다는 출산하고보니 나는 전업 육아맘의 체질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튼튼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니다. 분명한 건 육아를 종일 혼자 한다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 힘든 일이었을 것 같고, 지금처럼 출퇴근하며 지내는 이 일상이 나는 너무나 만족스럽다.


출산휴가 후 복직을 하고나니 지나가는 동료들 거의 모두가 나에게 빠짐없이 '아니, 왜 이렇게 빨리 복직했냐?'라고 물어본다. 직접 물어보기 조심스러운 사람은 내 절친한 동료에게 대신 물어보기도 했다나. 어김없이 그 날도 나는 그 질문을 남자 선배에게 받았다.


"아니, 왜 이렇게 빨리 복직했어?"


무슨 이유가 있나. 일 하고 돈 벌려고 나왔다고 대답한 나에게 돌아온 말은 상당히 충격이었다.


"헉 ㅠㅠ 아기가 너무 안쓰러워..."


상당히 충격이었다. 도대체 왜 내 아들이 안쓰러운건지 당췌 알 수는 없어서,


"우리 아들이요? 전혀 안쓰럽지 않은데... 저 없어도 베이비시터 선생님하고 잘 지내요."


"헐 ... 그 말 들으니 더 안쓰럽다..."


 사실이기도 했는데, 내가 왜 이 말도 안 되는 질문에 대답을 해야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같은 질문을 여러번 반복하는 이유는 못 알아들어서 그런건 아니겠고, 본인 생각에는 내 행보가 너무나 황당했으니 그랬지 싶다.


아니, 그런데 왜 도대체 우리 아기가 안쓰러운데요? 육아휴직을 안 쓰고 내가 일하면서 사는게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더라. 심지어 우리 튼튼이는 여느 아가들과 다르지않게 잘 발달하고 있고 문제되는 일도 전혀 없는데 말이야.


"엄마 손 타는게 얼마나 중요한데... 아 너무 안쓰러워 눈물난다..."


출산하고 돌아온 나의 안위를 묻는 것이 아니라 나를 몰아세우려고 대화를 건 것이 분명한 것 같았다. 더이상의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의미없어 보여서, 장난꾸러기로 알려진 선배의 아들의 근황을 물으며 대화를 자연스레 마쳤다.


나는 종일 육아하는 것이 더 힘든 일인 것 같다. 출산 후 조리원 퇴소하면서도 다 회복되지 않은 몸뚱아리로 밤잠없이 좀비마냥 하루 종일 신생아 핏덩이를 돌보다보니, 정확하게 깨달았다.


육아는 내 주종목이 아니다.


이 상태로 아기를 안아주다보면 아기에게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신기할 상황이었다. 그렇게 나는 90일 출산휴가를 끝에 사무실에 복직하였고, 출퇴근은 하는 걸음이 아직 힘들긴 하지만 일할때 얻는 그 활력과, 일하면서 잠시 육아에 힘을 빼두었다가 퇴근 후에 충분히 사랑해주고 놀아주고 안아주고 있다.


엄마가 키워줘서 자신있게 일찍 복직했냐고 묻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내가 임신 중일 때 크게 다치셨고, 몸 회복을 하고 계셔서 절대로 단독 육아를 나 대신 해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베이비시터를 쓰고 복직을 한다고 하면, 내가 상당한 부자인줄 안다. 나는 명확하게 말하지만 부자가 아니다. 그저 내가 번 돈으로 시터 월급을 내고 아기를 위해 쓸 수 있는 정도일 뿐. 우리 부부도 평범한 맞벌이라는 것.


다행히도 시터 시급보다 나의 시급이 높기때문에 이 상황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여유로와서, 돈이 넘쳐서, 출산휴가만 하고 편하게 룰루랄라 복직한 것이 아니라는 것.


남들이 하는대로 휴직하고 하면서 내 정신건강과 몸건강을 해치고 또 그것이 내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것보다, 아기에게 더 웃어주고, 아기도 다양한 사람에게 다양한 사랑을 받는 것이 우리 가족에게 더 맞다고 판단한 것 뿐이다.


나는 나의 결정을 존중한다.


내가 일을 관두지 않는 이상, 언젠가 한번은 겪어야할 순간을 나는 빨리 겪었을 뿐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나를 특별한 케이스로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새삼 놀랐고, 육아휴직은 당연히 써야하는데 왜 안 쓰는 건지 생각을 할 정도로 눈치 안 보고 휴직계를 내도 되는 나의 직장에 다른 의미로 감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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