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한의원 VVIP
하루라도 빨리 회복하기 위해서
아기를 낳는 일은 여자의 온몸을 갈아 넣는 일이다.
준비 없이 찾아온 임산부의 삶에 자유롭지 못하고 점점 더 불편해지는 몸을 보며, 출산하면 해방할 수 있단 마음으로 버텼다. 하지만 웬걸, 아기를 낳으면서 내 예전 몸도 다 사라진 건가?
조리원에서 어색하게 아기를 안으면서 평소 쓰지 않던 근육들까지 다 결리기 시작했고, 조리원을 퇴소하곤 나서는 밤에도 낮처럼 자지 못하고 두어 시간에 한 번씩 수유를 하면서 온 몸이 녹아내리는 줄.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다가 달력을 보니, 이러다가 금방 복직할 때가 올 것 같아서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고 정신이 번뜩 들었다.
'빨리 원래대로 돌아가야 돼!'
그때부터 나는 아기가 잠든 시간이나 짬을 내어서 한의원에 가서 내가 받을 수 있는 치료는 다 받았다. 기력 회복을 위해 침이나 뜸, 부항 등을 다 맞았다. 그리고 출산 후 먹는 산후보약도 지어먹었다. 무려 반년 동안이나!
유난스럽게 나아지지 않는 나를 보며, 내 주치의 한의사 선생님도 안타까웠는지 한약 한 재를 출산 선물로 그냥 지어주셨다. 또 한 번은 산후보약에 사향을 선물로 넣어주셨다.(사향을 넣은 보약은 비싸다. 많이.)
집에서는 짬을 내어서 근력운동을 시작했다. 확실히 몸조리할 때 뼈에 바람이 든다고 외출을 안 했더니 움직일 일도 없었다. (쓰레기 버리러 한 번 도 나간 적이 없음..) 조금씩 움직여가면서 오래된 톱니바퀴에 기름칠하듯 출근할 준비를 했다.
그런데 복직을 하니, 더 총체적 난국이다.
안 걷다가 하루 출퇴근하느라 두 시간씩 시간에 쫓기듯 움직이니까 발목과 무릎이 너무 시리다. 분명 한여름인데 차갑고 시리다. 원래도 출산 후라서 빠지던 머리카락이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니 한 움큼씩 더 빠진다. 머리 한 번 감고 나면 헉 소리가 날 정도로. 안 보던 모니터와 랩탑을 보다 보니 눈도 침침하다. 이게 머선일이고..
결국 복직 후에도 산후보약을 지어먹었다. 보약은 너무 먹어서 만성이 생긴 기분이 들었다. 유난히 몸이 더 축 쳐져서 한의원에 다녀오겠다는 나를 보더니 남편이 나에게 하는 말, "한의원 VVIP 혜택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아, 이미 보약도 선물 받았지 참.." 그 말에 같이 웃었다.
이제 아기도 9개월 차가 되었고, 내 몸도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다.
확실히 예전으로 돌아간 기분은 전혀 들지 않지만, 여기저기 너무 쑤시던 올여름 그때보다는 많이 나아지고 있다. 역시 시간이 약인 건가. 이제 거들떠도 안 보던 구두도 '한 번 신고 나가볼까?' 하는 소심한 자신감이 든다. 물론 무릎 아플까봐 신발장에서 꺼내지도 않았지만.
임신했을 때부터 출산 후 몸조리할 때까지 성심성의껏 진료해주신 한의원 원장님과 뭐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부항 하나라도 더 떠주려고 신경 써주신 한의원 실장님과 다른 쌤들도 항상 감사합니다. (무슨 수상소감 같구먼) 남편 말 마따라 그저 환자일 뿐인데 VVIP급으로 대우해주셔서 내원할 때마다 몸도 마음도 치유받았었네요. 이 글을 빌려 감사 인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