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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망고 Aug 25. 2020

개구리에 대한 단상

어린 시절 산밑 마을에 살던 나는 겨울이면 오빠를 따라 개. 구. 리. 를 잡으러 다녔다. 


앞 개울, 꽁꽁 언 얼음을 깨고 잡은 개구리는 집에 온 손님들에게 별미로 제공되었다. 한 번 개구리 맛을 본 사람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엄마에게 개구리 요리를 주문했다. 끓는 물에 한 번 데친 개구리의 앞다리와 물갈퀴를 떼어 내고 묵은지를 넣은 후 바글바글 끓여서 내놓으면 사람들은 뼈도 하나 남기지 않고 냄비를 싹 비웠다.

 

손님의 예약이 잡히는 날엔, 오빠는 무릎까지 오는 검은 장화와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전사처럼 집을 나섰다. 물론 나도 따라나섰다. 메와 지렛대를 이용해 두꺼운 얼음을 깬 다음, 곡괭이로 얼음 덩어리를 하나씩 걷어냈다. 그런 후에 나무로 만든 뱀 집게로- 물이 깊었으므로- 주먹만 한 돌을 하나씩 들춰내고 그 안에 웅크리고 있는 흡사 돌 모양의 개구리를 콕 집어 눈 위로 홱 던졌다. 개울가에서 오빠가 지펴놓은 모닥불에 손을 쬐고 있다가 개구리가 날아오면 주워서 양동이에 담는 게 내 임무였다. 


          *  나무로 만든 뱀 집게 - 여름에는 뱀을 잡는 데 사용하고, 겨울에는 개구리를 잡는 데 사용했다. 



여름에 다슬기가 많이 잡히던 곳에 특히 개구리가 많았다. 얼음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두껍게 얼었지만, 산으로 둘러 쌓인 골 안의 개울 깊은 곳에서는 봄을 깨우듯 맑은 물이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었고, 포근하고 아늑한 그곳은 개구리가 겨울잠을 자기에 안성맞춤인 듯 보였다. 


재주가 많던 오빠는 딱 손님들에게 대접할 양만큼의 개구리만 잡았다. 작은 개구리는 놓아주고, 또 한꺼번에 너무 많이 잡아 씨를 말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배에 알이 꽉 찬 암놈은 놓아주지 않았다. 수놈은 먹을 게 별로 없었지만 배가 빨갛던 암놈은 배 안에 꽉 찬 들어찬 알이 익으면 쫀득하니 거대한 생명체를 먹는 것처럼 맛있었다. 


뱀 집게로 돌멩이를 하나씩  들출 때마다 개구리는 한 마리씩 나왔다. 오빠는 개구리가 들어있는 돌멩이를 알고 있는 듯 보였다. 눈도 뜨지 못하고 눈 위에 버려진 개구리는 양동이 속으로 들어가 슬로모션으로 탈출하기 위해 서로 뒤엉켜 뒷발을 움직였다. 오빠가 개구리를 잡으러 가서 허탕을 치는 날은 없었다. 


개구리를 소탕한 오빠가 포인트를 약간 옮겨 다시 얼음을 깨기 시작하면, 나는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헤쳐 가장 이쁘고 반들반들한 주머니 돌을 찾아 손을 녹이며 다시 개구리가 날아오기를 기다렸다.  


간혹 특별한 손님을 위해 씨알이 굵은 개구리를 잡아야 하는 날에는 산속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 눈을 치우고, 얼음을 깬 후 매끈한 돌덩어리를 들어내고, 낙엽 무덤 속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자고 있는 개구리를 잡았다. 나는 날아오는 테니스 공을 쉴 새 없이 받아치는 선수처럼 오빠가 눈 밭으로 던지는 개구리를 주워 담느라 등에 땀이 날 정도였다. 하지만 오빠는 무슨 연유에선지, 개구리가 부락을 이루며 잠들어 있는 깊은 계곡으로 자주 가지는 않았다. 아주 가끔만 낙엽 이불을 덮고 자는 개구리들을 잡았다. 




중학교 3학년 겨울 방학이 끝나갈 즈음, 엄마는 내게 서울에 사시는 외삼촌에게 개구리를 갖다 주라고 했다. 양동이에 물을 붓고 밤새 개구리들을 꽁꽁 얼렸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을 뜨고 잠든 개구리들도 있었고 팔다리를 쭉 뻗고 잠든 개구리들도 있었다. 개구리들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것처럼 단단히 얼음에 갇혀있었다.   


엄마가 보자기에 싸준 개구리를 들고 고속버스에 올랐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히터가 나오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바깥 풍경은 스산하고 들판은 눈으로 가득 덮였지만 창을 뚫고 얼굴로 쏟아지는 햇살은 봄날의 그것처럼 따스했다. 사람들은 하나씩 잠으로 빠져들었다. 나도 노곤해져서 머리를 사방으로 주억거리다 잠이 들었다.  


잠결에 어디선가 개구리울음소리가 들렸다. 

개굴- 나는 꿈을 꾸는가 싶었다

나는 눈을 떴다가 아직도 고속도로인 것을 보고 다시 눈을 감았다.

개굴- 개굴- 옆에 앉은 아저씨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나는 무슨 일인가 하고 눈을 깜빡거렸다. 또다시 개구리울음 소리가 들렸다. 

개굴개굴- 앞에 앉은 아줌마가, 개구리울음 소리가 어디서 나는 거야? 하고 말했다. 

나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개굴개굴 개굴- 사람들이 하나 둘 잠에서 깨어 고개를 의자 위로 빼고 개구리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아뿔싸. 개구리는 바로 내 발 밑에서 목놓아 울고 있었다.  


개굴 개굴- 나는 발로 보자기를 툭툭 찼다. 기사님이 히터를 너무 세게 틀어서 얼음이 녹았나 보다. 


개구리울음 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많은 개구리들이 합창을 하기 시작했다. 마치 봄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나는 개구리들을 잠재우기 위해 사람들 모르게 보자기를 발로 차고 또 찼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내 발길질에 잠시 우는 소리를 멈춘 개구리는 금세 다시 울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개구리 소리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다행히 아무도 내가 개구리 소리의 장본인인 걸 의심하지 않았다. 


버스는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싣고, 봄을 싣고, 천천히 동서울 톨게이트를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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