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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 Apr 07. 2022

국간장과 아내의 야식

오징어 부침개


아내는 일하러 가고 아들은 하루 종일
공부한다고 학원에 있고..
나만 쉬는 토요일이라
저녁 정도는 내가 가끔 준비한다

저녁거리를 뭘 할까 생각하다가
싱싱한 오징어가 눈에 보여
오랜만에 오징어 뭇국을 끓일 생각으로
3마리를 사 왔다.

겸사겸사 나의 요리 솜씨도 뽐내볼
생각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아내가 오면 바로 먹을 수 있게 저녁 준비가 시작되었다

먼저 오징어 3마리 껍데기부터 벗긴다
다들 아시겠지만 오징어를 껍질채 끓이면
오징어 껍질에서 색이 우러나와
보라색 국물 색이 난다
오징어 껍질을 함께 끓이면 고소한 맛도 나지만
국물색이 너무 틱틱하고 거무스름해져
웬만하면 껍질은 볏겨 내는 게 깔끔하다



냄비에 오징어와 썰어놓은 무를 넣고

들기름을 휘~두른 뒤 달달 볶아준다


이제 나머지 물을 채우고

국간장과 액젓을 조금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된다

허걱.. 근데

아무리 찾아도 국간장이 안 보인다

때마침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 뭐해?"
"응.. 저녁 준비"
"야호~"


아내의 웃음소리가 수화기 넘어 들린다


"기대해도 좋아~오늘 언제 와?"
"참.. 국간장 어딨어"
"어.. 국간장 없는데.. 산다는 걸 깜박했어"

잠시 정적이 흐르다가
순간 화가 나서
집에서 살림을 어떻게 하는 거냐며
할 소리 안 할 소릴 다하고 일방적으로
전화기를 끊어버렸다

그리곤 바로 가스불도 꺼버렸다
.
.
.
그렇게 냄비에서 끓고 있던 오징어국은 멈춰버렸고
그날 저녁 아내가 돌아왔지만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도 나도 저녁을 굶은 채 그날이 지나가 버렸다


참을걸 그랬다


하지만 아내에게도 책임이 있다
우리는 퇴근하면서 먼저 온 사람이 저녁 준비를
하는 경우들이 자주 있기 때문에
항상 떨어진 재료는 포스트잇에 써
냉장고에 붙여놓기로 합의가 된 상태였으니
아내도 잘한 건 아니다

아무튼 그렇게 하루 이틀 불편한 시간이 흘렀다
원래 부부싸움은 아무것도 아닌 거 같고
유치하게 기싸움을 하는 경우들이
대부분이지만
항상 돌아오는 건 후회뿐이다.
하지만 오늘의 싸움 이유가 조선간장이라니..
참.. 싸울 일도 많다는 생각이다..ㅋㅋ


어제저녁
야근후 9시쯤 집에 들어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문이 열리는 순간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일찍 먹은 저녁에 출출함을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광고라도 하듯.. 모기장을 내려친 현관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엉.. 자기 왔어?"
아내의 반가운 목소리와 함께
오징어 부침개를 든 쟁반이
아내의 손에 들려져 있었다


그 순간 우리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화해의 눈빛을 보내고 있음을
눈치채고 있었다

근데  왜 하필 오징어 부침개?

그날의 국간장 사건으로
오징어로 한방 먹이는 걸까?
ㅎㅎㅎㅎ

전복도 3마리나 썰어 넣었다는데
부침개 3장을 먹는 동안
전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 걸쭉한 부침개 반죽 밑에 깔려있는
전복은 아들 간식으로 부쳐질 예정인가 보다
난 아무 말하지 않고 얌전히.. 맛있는 야식을 먹었다.


아내가 차려준 야식.. 오징어 부침개!
세상의 어떤 맛도
사랑의 맛은 흉내 낼 수 없는 맛이다!

투박하게 부쳐낸 아내의 부침개가
날 작아지게 만든다.





아들이 밤 12시가 다돼서야 학원에서 돌아왔다
오자마자 씻지도 않고 게걸스럽게
부침개를 먹는다
쓰윽~식탁 옆자리에 가서 않았다

"맛있냐?"
"응.. 개꿀"
"아빤 부침개 안 먹었어?"
"아냐 먹었어"
근데 왜 옆에 앉아서 껄떡대냐는 말투다

아들이 젓가락으로 부침개 속에 작은
전복을 하나 집어 내입에 넣어준다.

역시 아들의 부침개 속엔 전복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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