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일]로컬의 너낌을 찾아서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by 썸머 신


막탄의 한인교회에 가봤다


세부 2일 차, 주일날이어서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교회를 구글 서치 해봤다. 필리핀 현지 교회 위주로 찾아봤는데 마땅한 곳이 없었다. 말만 교회지, 장소를 따로 빌려서 예배드리는 곳이거나, 너무 외진 곳에 있었다. 결국은 숙소에서 그랩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막탄 한인교회에 갔다.

막탄 한인교회

교회는 현지 주민들의 거주지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었다. 나지막한 판잣집들 사이에 2층 교회 건물이 불쑥 솟아 있어서 나름 그 동네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설교 때 목사님 말에 따르면, 교회 건물이 찾기 쉽다 보니 사람들이 택배주소를 그렇게 교회주소로 해놓고 제때 찾아가지도 않는다고 한다. 택배가 올 때마다 교회에서 키우는 개가 짖는데 하루 종일 그렇게 짖어 댄다고, 제발 택배주소 교회로 하지 말고, 택배를 시켰으면 즉각 찾아가시라고 당부 하셨다.


막탄 한인교회는 아담했지만 교회당, 사무실, 식당, 친교실 등, 있을 건 다 있는 알찬 곳이었다. 예배당에 들어서니 한인교회 특유의 투박하고 어색하고 단출한 분위기 느껴졌다. 예배당을 채우고 있는 교인은 30,40명 남짓, 이중 절반 이상은 가족 여행객이거나, 한 달 살기를 온 사람들로 보였다. 10시 50분쯤 찬양으로 예배가 시작되었고, 람들이 한 명씩 들어와 앉을 때마다 '저 사람은 여행객이구나', '저 사람은 교민이구나'리하느라 예배에 도통 집중을 못하고 있었다. 흘끔,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스캔하는 나 역시 빼박 여행객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목사님은 세상 쿨한 아우라를 풍기시며 강단에 서셨다. 설교 시작 5분도 안되어 전이 일어나서 에어컨이 꺼지고, 전등이 꺼지고, 마이크가 꺼졌다. 목사님은 전혀 당황하 않고, 필리핀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라며 어둡고 더운 예배당에서 생목으로 무려 50분이나 설교를 하셨다.


가만 앉아서 듣기만 하는 것도 힘든데, 목사님은 원고도 없이 강단 위를 종횡무진하며 설교하셨다. 작고 왜소한 체구이지만, 목사님에게서 오랜 세월 켜켜이 쌓여온 내공과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어떤 세월을 살아오셨길래 그런 기운을 뿜어낼 수 있는지 날 잡고 2박 3일 정도 합숙하면서 목사님의 인생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예배 끝나고 교회에서 점심도 주셨다. 우리 같은 뜨내기들에게도 점심 먹고 가라고 얘기해 주셔서 감사했다. 2층 식당공간으로 올라가니 멸치 육수 냄새가 확 풍겨왔다. 메뉴는 잔치국수. 멸치 육수와 김치를 보니 마음이 너무 편해진다.

집에 가려고 나오니 교회 봉고차 운전석에 목사님이 앉아 계셨다. 매주 목사님이 예배 전후에 차량 운행도 직접 하고 계신 것 같았다. 아니 도대체 혼자서 1인 몇 역을 하고 계신건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까 내가 먹은 잔치 국수 멸치 육수도 목사님이 아침 일찍 우리신 거라고 했다. 심지어 교회 화장실 변기 막힌 것도 목사님이 다 뚫으신다고.(변기가 자주 막혀서 힘드신지, 변기에 물티슈 좀 넣지 말라고 예배시간에 특별광고까지 하셨다.) 인력이 부족해서 교회 안에 크고 작은 모든 일을 목사님께서 도맡아 하시는 것 같은데 너무 짠했다.



현지 이동수단, 개조전동차 시승 후기


교회 주변에는 뉴타운에서는 볼 수 없었던 트라이시클(운수용 개조 자전거)이 많이 보였다. 그랩만 이용했던 우리는 냉큼 타보기로 했다.

손을 흔들자 마침 지나고 있던 개조 전동차 한대가 윙-거리며 다가왔다. 일반 트라이시클 기사님이 발에 땀나게 페달을 밞아야 움직이는 노가다라면 전동차는 엔진으로 움직이는 신식 트라이시클이다.


가격은 10페소(250원), 그랩의 십 분의 일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이다. 대신 반경 2킬로 이내의 목적지만 이용가능하다.


두 대에 두 명씩 나눠서 타려고 트라이시클 한 대를 더 잡으려고 했더니 기사님이 자기 차에 다 탈 수 있다며 그 좁은 데다 네 명 자리를 꾸역꾸역 만들어 주셨다. 운전석의 일부까지 양보해 가며 본인은 거의 엉덩이를 들고서 운전하시길래 이렇게 까지 하나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10페소가 차 한 대당 가격이 아니라 일 인당 가격이었다. 기사님 입장에서는 당연히 한 번에 인원을 많이 태울 수록 이득이었던 거다. 역시 이유 없는 친절은 없다.

그래도 신선하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 순간에도 아들은 덥고 짜증 나고 시시하다며 시크하게 굴었었는데 사이드 미러에 그가 남몰래 활짝 웃고 있는 얼굴이 포착되었다. 전동차 시승이 아주 만족스러웠나 보다. (아들아, 그때 니가 해맑게 웃고 있었다는 거 내가 두 눈 감는 날까지 모른 척해줄게.)


트라이시클이나 개조 전동차는 뉴타운 안에서는 통행이지돼 있어서 뉴타운 입구 근처에서 하차야 했다.



우연한 발견들


하차한 곳에서 현지 길거리 음식들 많이 볼 수 있었다.

과일 스틱 한 봉지 20페소(500원)

열대 과일을 먹기 좋게 잘라 봉지 단위로 파는 곳이 있다. 망고는 숙성 정도에 따라 딱딱이 망고, 물렁이 망고가 있는데 딱딱이 망고는 소금에 찍어 먹는 게 일반적이다. 아직 소금 찍먹 까지는 도전해보지 못했다.

바나나 구이 한 꼬치 20페소(500원0

길 건너편에 연기가 자욱해서 보니 마시멜로인지, 가래떡 같은 것을 굽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바나나 구이였다. 바나나를 구워서 설탕을 뿌린,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다. 바나나를 구우면 빵처럼 살짝 쫀득한 식감이 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많이 달지 않고 담백해서 좋았다.

근처에서 Mr.DIY도 발견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이곳은 한국의 다이소 같은 곳이다. 말레이시아에서 지낼 때도 의 모든 생필품을 여기서 해결했다.


얼른 가서 금 숙소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했다. 쓰고 버리려고 초저렴이들로만 골랐다.


욕실 실내화 79페소(2000원)
동전지갑 89페소(2200원)
빨랫줄 37페소(925원)
빨래집게 39페소(1000원)


물건을 사고 숙소로 가는 지름길을 찾아내려고 처음 보는 골목길로 들어갔다가 길을 잃었다. 헤매다 보니 우연히 인터넷에서 봤던 레촌 맛집을 지나게 되었다. 길을 잃고 헤매다 보면 뭔가 하나씩 발견한다. '우연히 얻어걸리기'는 나 같은 길치들게 익숙한 여행 패턴이다.

혹시 앉아서 먹을 수 있나 싶어 안을 들여다 보고서 깜짝 놀랐다. 그곳은 식당이 아니라 통돼지를 직접 키우고 대량으로 굽는 공장 같은 곳이었다. 레촌을 도매로 파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

가격표

마침 내가 갔을 때 대형 숯불 위에 통돼지 한 마리가 주인공처럼 단독으로 빙글빙글 돌며 구워지고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

바로 옆 방에서는 새끼 돼지들이 본인의 차례를 기다리며 맛있게(?) 사육되고 있었다. 돼지고기 애호가로서 그 광경은 사뭇 충격적이었지만, 그 와중에서도 기름이 쫙 빠져 겉은 바삭하면서 속은 야들야들할 고기의 맛이 상상되어 군침이 돌았다. 나는 아마 평생 돼지고기는 못 끊 싶다.

더 둘러보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덥다고 시위를 해서 바로 숙소로 복귀했다.



세부에서 해변을 보기 힘든 이유


아이들이 숙소 수영장에서 놀고 싶다고 하는데 주말이라 수영장이 아이, 어른할 것 없이 바글거렸다. 그것만으로 수영장에 들어가기가 꺼려지는데 심지어 물이 딱 봐도 탁하고 노란빛을 띤, 맨 정신으론 차마 들어가기 힘든 비주얼이었다. 그래서 수영장에 못 들어가게 했더니 아이들 반발이 대단했다. 수영장 물색깔을 보라고 해도 그저 괜찮다니, 아이들은 참 비위가 좋다.

노란 수영장물

이참에 가까운 해변이라도 가려고 프런트에 물어보니 비치 입장료가 있다고 했다. 투숙객은 무료인 줄 알았는데 두 달 전부터 인당 350페소(8750원)를 받는다고. 살짝 짜증이 나서 입장료 없는 해변을 검색해 봤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근처 잔디에서 놀고 있는 필리핀 중고생들이 있길래 물어봤다.


"너희들은 어느 해변에서 놀아? 추천 좀 해줘!"


그랬더니 해변은 여기서 가본 적이 없다는 충격적인 대답을 들었다. 섬 아이들이 해변에 가본 적이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알고 보니 막탄 주요 비치들은 거의 다 사유화되어 막탄 현지인들도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한다고 한다. What the...


숙소 수영장도, 바다로도 갈 수 없었던 우리는 할 수 없이 해가 떨어질 때까지 숙소에서 드라마 스토브리그를 봤다.



만족스러웠던 첫 로컬 식당


오후 5시쯤, 날이 저물고 배가 고파진 우리는 또 먹이를 찾아 길을 나섰다. 오늘 저녁만큼은 꼭 로컬 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맘먹었다.


안전하고 깔끔한 뉴타운 메인 대로를 벗어나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저녁엔 낮보다 훨씬 다양한 길거리 음식 별천지였다.

학생들이 줄 서서 먹고 있길래 물어보니 삶은 계란이랑, 오리알에 소스를 얹어 먹는 것이라고 한다.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닭다리 구워지는 냄새.

돼지뼈 국, 맑은 감자탕 같은 느낌이다.


거리를 따라 늘어선 식당을 이 집 저 집 눈팅 하다가 가장 깔끔해 보이는 식당에 자리 잡았다. 수저가 뜨거운 물에 소독이 되고 있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위생 상태만 봐도 음식이 얼마나 잘 관리되고 있을지 짐작이 됐다.

밥 개수와 원하는 반찬을 지목하면 그릇에 담아 주신다. 반찬 종류와 개수에 따라 가격을 매긴다.

집밥 같은 메뉴, 전혀 이질감 없이 맛있게 먹었다. 세부에서 먹었던 수많은 음식 중에 이 밥상이 오래도록 기억이 남는다.

영수증
밥 한 공기 15페소 (380원)
돼지 humba 70페소(1750원)
돼지 스테이크 70페소(1750원)
야채 볶음 40페소(1000원)
생선국 90페소(2250원)
콜라 한 병 25페소(630원)
레드홀스 한병 70페소(1750원)

총 585페소(14600원)


망고 3킬로 사고, 길거리 간식 땅콩을 사서 기분 좋게 귀가한다.

망고 1킬로 200페소(5000원)
땅콩 두 봉지 20페소(500원)


숙소로 돌아와 땅콩을 먹으며 아이들이랑 영화를 봤다. 세부 온 이후로 1일 1 영화를 꾸준히 시행하고 있다. 내가 이십 대 때 재밌게 봤던 영화 '라스트 홀리데이'를 이들과 또 봤는데 다시 봐도 웃기고 큰 울림이 있는 수작이다.


자기 전에는 'I love cebu'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하루를 마감한다.



세부 국민 마약송 I love cebu


세부 온 이후로 길거리나 마트, 어딜 가든 꼭 흘러나오는 노래다. 내가 좋든, 싫든 세부에 있게 되면 가 달린 이상, 계속 들어야 한다. 정말 묘한 건, 노래에 뭔 짓을 해놨는지는 몰라도 나도 모르게 이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고 나중에는 노래에 맞춰 춤까지 추게 된다는 거다. 내가 지금 그러고 있다. 마약이 따로 없다. 유튜브에서 이 노래를 검색하면 아래의 뮤직 비디오가 뜨는데 이걸 보면서 세부에 자긍심을 느끼는 내 자신에 소름이 끼쳤다.


<I love Cebu> 뮤직 비디오

https://youtu.be/Cl078T7Oq2M?si=9ZJOBVnLZ6qYVpqB

아이 럽 세부우~~~

아이 럽 세부우~~~

어우 워어

어어우 워어

어우 워어

어어우 워어..

keyword
이전 01화[1일] 무계획 세부 첫날 "What?!" 모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