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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kyo designer Nov 27. 2020

8.  미대의 꽃 예술제, 그리고 일본 대학 동아리

Henri MatisseDance (I) Paris, Boulevard des Invalides, early 1909 Photograph: Courtesy Succession H.


미대 하면 예술제, 예술제 하면 미대.

미대를 이야기할 때 예술제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이 축제를 위해 살아가는 학생들이 미대에는 꽤 많다.

한국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대학 축제는 나에게 음주를 합법적으로 교내에서 즐기기 위한 일종의 놀이 문화였다.


그래서 나는 딱히 참여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축제 때는 오히려 학교를 가지 않았던 날이 많았다.

이 곳에 오기 전부터 각종 일드로 섭렵된 나에게 일본은 중고등학생 때부터 동아리 문화가 활발하다는 인상이 강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겪어보니 상상이상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물론, 플리마켓을 참가 신청하여 열 수도 있고, 공연도 기획할 수 있다.

또 이 세 가지를 다 할 수도 있다! (그러다간 몸이 남아나지 않을 테지만)


나는 총 3년에 걸쳐서 예술제에 참여했다.

1학년 때는 학과 동아리로 전시와 전시한 작품을 판매하는 활동을 했었다. 이 동아리는 장애를 갖고 있는 작가분들의 아틀리에에 직접 가서 우리가 작품을 선정하고, 직접 예술제에 전시 큐레이션과, 굿즈 제작 및 판매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손을 거쳐 만든 것이라 더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리고 실제로 팔린 작품은 갤러리와 같이 손님에게 포장하여 배송까지 하였다.

이 당시에는 너무 바쁘고, 1학년이라는 핑계로 기획 단계에는 그다지 많이 참가하지 못했지만, 예술제를 앞두고 나는 거의 동아리 멤버들과 하루 종일 있을 정도로 친해졌다. 그리고 그때 친해진 친구들은 아직까지도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동아리는 아쉽게도 멤버가 점점 줄어 내가 1학년 때 참가한 것이 동아리의 마지막이 되었다.  


그 다음 해에는 또 다른 동아리 활동으로 사진동아리와 오케스트라 동아리 활동을 하였다. 사진 동아리는 자신의 사진을 전시하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필름 카메라에 빠져 있을 때라서 내가 찍은 필름 사진들을 학교 암실에서 현상하여 직접 전시해 두었다. 오케스트라는 도쿄 5대 미술대학의 미대생이 모인 연합 오케스트라 동아리이다. 꽤나 연습량도 많고, 공연 양도 다른 동아리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왜냐하면 도쿄 5대 미술대학의 예술제에서 전부 공연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난 스케줄 상 세 학교 공연밖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여름에는 합숙도 하는 전력으로 하는 동아리였다.

나는 처음 바이올린을 배워서 오케스트라에서 어느 정도 켜기까지 너무 힘들었어서 오케스트라는 1년 하고 지속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바이올린은 계속 배울 생각이다. 처음 경험해 본 오케스트라는 같은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순간이 짜릿한 경험으로 남아있어서 언젠가 취미 오케스트라라도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바이올린을 하려 한다.


마지막으로 3학년 때는 나도 나의 무언가를 만들어서 플리마켓에 내보고 싶어 졌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친구와 함께 여름방학에 방산시장과 동대문을 돌아다니면서 재료를 모아, 석고 방향제를 만들기도 하였다. 미니 사이즈의 석고 방향제는 생각보다 인기가 많아서 , 첫날 미리 만들어 둔 상품이 다 팔려 남은 이틀간 집에서 수작업으로 만들어가면서 팔았던 기억이 있다. 혼자서 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재미있기도 하고 준비할 것도 많았지만,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조금 자신감을 얻게 된 것 같다.  


전시도 공연도 플리마켓도 전부 다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었다. 4학년은 졸업 제작과 졸업논문 준비로 예술제에 참가는 하지 않고 다른 친구들의 작품을 보거나 천천히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생각지도 못하게 수업에서는 조용했던 친구가 예술제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 피규어를 제작해 사람들 앞에서 소개하고 있거나, 얼굴은 알지만 잘 몰랐던 다른 과 친구가 패션쇼를 기획한다거나 하는 것들을 보고 다들 저마다 각양각색의 색깔들이 춤추는 것 같아 미대에 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예술제를 준비하는 동안 학교는 2주간의 가을 방학에 들어간다. 그리고 10월 말 3일 간 축제를 연다. 축제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것은 전부 학생들이  직접 지휘하고 관리해서 처음에는 잘 될까 걱정했지만, 운영회 (학생회) 친구들의 룰이 생각보다 엄격해서 다들 그 룰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면 내가 예술제에 전시를 하고 싶다고 하면, 10월의 예술제에 대비해 5월부터 참가자 설명회가 열린다.

5월부터 매달 1번씩 설명회가 열리는데 이 설명회에 한 번이라도 무단결석할 시 전시 자격은 박탈되고 만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불참하게 된다면 대리인을 세워 대신 참가해야 하는데 이것도 사전에 연락을 한 자 만이 가능하다.

이렇게 엄격한 관리하에 예술제가 운영되어가는 것을 보면, 다들 기특하다. 우리 학과는 예술 문화학과로 특히나 이 운영회 쪽에 속해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운영 쪽 스텝들의 고충을 훤히 알기에 예술제가 끝나면 언제나 그들의 노고에 고마움을 느낀다.


내가 졸업을 하고 난 후 예술제가 중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올 해는 코로나의 영향도 있지만, 나는 예술제가 없는 미대는 씨 없는 수박 같이 느껴진다. 또 많은 후배들이 더 경험을 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4년 간의 예술제를 경험하고 깨달은 점은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작품을 전시하거나 무언가 외부의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에 완벽하고자 하는 강박관념에 휩싸인다.

미대생들도 마찬가지이다. 예술제에 기간에 맞춰 작품을 완성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전시를 한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고 또 사람들은 저마다의 완벽함의 기준도 다르기 때문에

나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지 않아도 된다. 그저 즐길 뿐이다.


한 선배의 말이 인상 깊었다. 그 선배는 4년 내내 예술제에 똑같은 작품을 전시했다고 한다. 근데 결국 예술제 기간까지 끝끝내 완성하지 못했지만, 결국 다음 해에 그다음 해에 완성도를 높여나가 예술제에서 스카우트 제안을 받아 지금은 자신의 작품을 브랜드로 한 회사를 차리게 되었다. 한 번의 실패로 다음번도 실패하리란 보장은 없다. 또 한 번의 성공으로 다음 번도 성공하리란 보장도 없다.

그런데 누가 끈기를 가지고 오래 버텨내는가는 확실히 성패를 가르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일단 완벽하지 않아도 해보자. 그리고 끈기 있게 붙잡고 있자. 그것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러면 어떠한 형태로라도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예술제는 중지되어도 우리들의 일상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축제는 언제나 끝이 나면 외로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떠들썩한 학교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던 그때 우리들은

서로 언제나 같은 얼굴로 마주하지만, 그 때 그 날의 순간들을 공유하고 있기에 좀 더 돈독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직도 예술제를 그리워한다.  


매일매일이 똑같이만 느껴지는 요즈음, 특히나 외출도 줄어 권태로움을 느낀다.

그러나 그런 일상 속에서도 아주 가끔은 조금은 특별한 일상을 만들어 나가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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