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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kyo designer Nov 29. 2020

9. 예술 활동을 지속한다는 것에 대하여

《 Crystals on a table 》 守山友一朗 MORIYAMA Yuichiro 油彩, キャンバス 112.0 × 144.5 cm 2020 photo: Kei Okano


  나는 비록 그림을 그리지도, 작품을 만들지도 않지만 미대를 다녔던 4년 간 주변에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해나가는

동기와 선후배를 보며 느낀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하려 한다.


우리는 창의성을 가르침 받지 않았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12년 간의 정규 교육 과정에서 우리는 창의성을 어떤 과목에서도 가르침을 받지 않았다. 특히나 획일화된 교육현장에서 줄 세우기 식의 등수 매기기와 국영수 중심으로 배워왔던 나로서는 갑자기 대학교에서 창의적인 것을 해보라고 주문을 받아도 할 말이 없어지는 때가 다반사였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수능이 가까워진 지금 이때 나는 더욱더 그 시절이 생각난다.

모두가 정해진 레일을 따라 달리는 경주마와도 같이 주변을 볼 새도 없이, 오로지 수능이라는 도착지점 하나만을 바라보고 12년간 달려간다.

내가 하고싶은 것이 무엇인지,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생각해 볼 틈도 없이 우리는 대입이라는 출발선에 놓이게  되고,

그 선에서 벗어나면 무참히 낙오자로 분류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능 그거 아무것도 아니라고, 세상은 수능 말고도 내 미래를 만들어 나갈 것이 무궁무진하다고 당시의 나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런데 그 당시는 수능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애석하게도 나는 교육열이 높으신 부모님 밑에서 자라 서울에서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한 동네에서 초중고를 나왔다. 주변의 친구들은 당연하게도 특목고를 준비하니 나도 덩달아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선행학습을 다들 나가니 나만 뒤쳐진 것 같아 괜히 학원을 더 늘리기도 하고, 다들 쓰는 수시 전형 나도 괜스레 별로 배우고 싶다고 생각하지도 않은 이 학과, 저 학과에 수시를 써보기도 하고, 다들 재수를 해서 좋은 대학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길래 나도 재수 학원을 등록했다.

그때는 그 환경이 너무나 당연한 걸로 받아들여져 그것 이외의 길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나였다.

그러니 미대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자신만의 창의성을 보여달라는 요구를 들었을 때는 당황스러웠다. 이제껏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곤, 정해진 틀 안에서 암기를 하거나 공식을 외워서 문제를 푸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중고등학교의 미술 수업을 떠올리면 더더욱 창의력과 멀리 떨어진 그림을 보고 화가 맞추기 식의 암기 문제가 시험문제였던 기억이 난다. 무언가 내가 직접 만드는 재미를 느낀 것은 오히려 미대에서 과제를 해나가면서 조금씩 눈을 떴던 것 같다.

처음에는 막막했던 과제들도 조금씩 나 다움을 발견해가며 느리지만 이런저런 시도를 함으로써 창작의 재미와 고뇌를 둘 다 경험할 수 있었다.  


예술에는 정답이 없다. 


과제를 내주신 교수님들도 언제나 항상 말씀하시는 것이기도 하지만, 예술에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100명의 학생이 있다면 100개의 창의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술교육은 오히려 정답이 없는 예술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가 언제나 중요한 화두였다.

일본에서는 한 때 NHK방송에서 다큐멘터리로 만든 니시무라 선생님 이라는 미술 선생님이 계신다. 당시에는 획기적인 미술교육 방법으로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를 하곤 했지만 그의 미술교육 방식은 오히려 시대와 역행하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선생님의 얼굴을 그리게 한다.

여기까진 좋았으나, 그리는 방법을 정해두고 학생들에게 그리게한다. 예를 들면 얼굴은 동그랗고 머리는 직선으로 그리고, 눈 코 입의 위치는 이 곳에 있다는 식으로 하나하나 알려준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그림들은 모두 다 비슷비슷해 보인다.

왜냐하면 그것은 학생들 자신이 보고 자신이 느낀대로 그린 그림이 아닌 '니시무라 선생님 식'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내가 어렸을 때 김충원의 미술교실 이라는 프로그램과 책이 무척 유명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 집에서도 김충원의 미술교실의 시리즈 책이 있을 정도였다. 그것을 보고 나서 대충 나도 그림을 따라 그려 김충원 선생님의 그림을 흉내 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이러한 미술 교육도 장점이 있다. 그러나 나는 조금 더 예술을 즐기기 위한 교육을 받았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든다.  


창의력이란 지속하는 능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의적인 작품활동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작품세계를 만들어감과 동시에 작품 활동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지속하는 힘이 없다면 그저 반짝 빛나고 마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나는 부끄럽게도 미대에 가기 전에는 미대에 가기만하면 저절로 작가가 되거나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될 거라 믿었다.

그런데 미대에 직접 와보니 나의 생각은 틀렸던 것이고, 그 속에서도 누가 더 끈질기게 오래 있느냐에 길이 나뉘는 것을 직접 목격하였다.


미대에 있을 때는 다같이 미대에 있으니 그 울타리 속에서 작품 활동을 지속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보니 예술을 지속한다는 것은 정말 큰 결정과 용기가 필요한 일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그래서 오히려 졸업을 하고 난 후 전시를 보러 더 많이 다니고, 하나하나의 작품도 놓치지 않으려고 전력을 다해 감상을 하려 한다.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작품과 사람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려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나부터 지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느낄 수 있도록 지속하는 힘을 기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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