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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임오렌지 Feb 15. 2021

아빠의 기억도 새로이 돋아나는 기적은 없을까?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차들이 꽉 차 있다.

나도 오랜만이다. 설날이라 자녀들이 많이들 왔을 터이다.

60세 이상만 살 수 있는 이 아파트에 나의 고집으로 부모님은 재작년 12월 31일에 이사 오시게 되었다.

식사도 제공되고 무엇보다도 단지 옆에 바로 큰 병원이 있다.

병원과 약을 친구 삼아 나이 들어 가시는 부모님에게 더할 나위 없는 아파트 같았다.

한 가지 걸렸던 사항은 아빠의 치매가 이사로 인해 더욱 안 좋아질 거라는 생각 한 가지였다.


그 한 가지가 현실이 되었다.

아빠는 이사 오시고 나서도 계속 집에 안 가냐고, 우리 왜 여기서 자냐고 매일같이 엄마에게 궁금한 얼굴로 물으셨다.

벌써 일 년이 지난 지금도 아침마다 옷을 입으시고 집에 간다 하신다.


오랜만에 설날이라고 방문한 친정은 예전처럼 편하지만은 않다.

엄마가 이번에는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어 음식을 못하니 내려오지 말라 하셨다.

그래서 나와 딸만 가겠다 했다.

사위는 역시 백년손님이어서 항상 사위가 올 때마다 이것저것 장 보고 음식 준비하시는 게 이번엔 힘드셨던 모양이다.


이제는 내 이름과 손녀 이름은 까먹었지만 내가 딸이라는 사실은 아직 알고 계시는 듯하다. 가끔은 까먹으시지만. 이 마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손녀인 선영이는 언젠가 할아버지가 자기의 존재를 잃어버릴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려지지는 않는다 한다.

" 참 예뻐졌다. 네가 몇 살이지?"

" 할아버지, 저 이제 고등학생 돼요! "

" 정말? 벌써? "

" 그래서 앞으로는 죽었어요. 공부만 해야 해서! "

" 왜? 네가 몇 살인데? "

이렇게 도돌이표의 대화가 몇 번이고 이어져도 선영이는 다시금 처음 말하듯 고등학생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 대답에 아빠는 몇 번이고 놀라고 몇 번이고 대견해하신다. 예쁘게 잘 컸다고.


엄마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해가고 있다. 항상 염색하시고 집 앞 슈퍼를 가도 화장하시는 엄마였지만 지금은 아빠 챙기기에 본인 꾸미는 시간은 없어졌다.

찬찬히 엄마 얼굴을 보는데 참 많이도 늙으셨다.

아빠는 하나하나 엄마의 챙김을 받아야 한다. 아빠는 나름 하나하나 엄마를 챙긴다. 그치만 그 챙김이 엄마를 두 번 일하게 하신다.

식사하다 말고 아빠는

" 휴지 어딨지? " 휴지를 가져다 드리니 그 휴지가 엄마 옷으로 향한다.

초고추장을 떨어진 곳에 아빠는 닦아주신다. 늘 엄마를 챙겼었던 자상한 아빠.

내가 뻐근하다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아빠는 무언가를 계속 찾아다니신다.

" 아빠 뭐 찾아?"  세수 시늉을 내시는 걸 보아하니 수건을 찾으시는가 보다.

나에게 받아 든 수건을 적셔 오시더니 내 목에 올려 눌러 주신다.

항상 내가 아프다 하면 뜨겁게 레인지에 돌려온 수건으로 마사지해 주셨던 아빠는 찬물에 적셔 온 수건을 올려놓으셨다. 눈물이 났지만 꾹욱~~!


엄마는 내가 와서 아빠와 이런저런 이야기 하며 지내니 아빠가 자꾸 이상한 소리 하는 게 줄어들었다고 좋아하셨다. 항상 사람들이 기다린다고. 내가 사인해 줘야 그들이 일을 시작할 수 있으니 빨리 데려다 달라고 하루에도 열 번은 엄마에게 조른다 한다.

아빠의 머릿속에 여전히 당신은 사장이고 여전히 회사는 잘 돌아가고 있나 보다.


연휴 마지막 날이 되었다. 아빠는 일어나서 멍하게 침대에 앉아 계셨다.

항상 아침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가 멍한 상태로 계신다.

여기가 어딘가? 오늘 무엇을 할지 생각을 떠 올리려다 포기하고 멍하게 계시는 거 같다.

" 나 빨리 나가 봐야 해'

" 아빠, 오늘 일요일이니 안 나가셔도 돼요. 나랑 선영이만 좀 이따가 집에 가요.."

" 왜? 어디가? 가지 마! 그럼 나랑 엄마는 어떡해. 가지 마.."

아빠의 눈에는 눈물까지 고이신다. 그 간절한 눈빛이 지금까지도 마음이 메어온다.

" 아빠, 나 가야지. 출근도 하고 선영 아빠도 챙겨야 하고.."

" 선영 아빠?...."


3일 동안 힘든 줄 모르고 아빠, 엄마 곁에서 종알종알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었다.

울컥울컥 한 순간이 너무나 많았지만 잘 참았다.

잘 참아온 눈물이 마지막 엘리베이터 앞에서 왈칵 쏟아졌다.

늙은 부모 두 분 남겨놓고 가려니 이번에는 정말이지 발이 안 떨어졌다.

아빠를 두고 잠깐도 못 나오시는 엄마나, 자기 집이 아닌데 계속 머물러야 하는 아빠에게 이 아파트는 감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는 너무 느렸다. 그에 비해 내 눈물은 너무나 많이 너무도 빠르게 흘렀다.

아빠도 엄마도 선영이도 울었다.

아무도 아무 말 안 했지만 서로가 참다 참은 눈물이었다.

내가 탄 엘리베이터가 내려가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 아빠는 본인 뺨에 흐르는 눈물이 왜 흐르는지 이유를 도통 모르실 것이다. 차라리 모르시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내 친구 한 명은 이야기한다. 치매인 부모와 노인인 부모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나이 드신 부모도 치매만 판정 안 받았지, 깜박깜박하시는 것도, 일 처리를 황당하게 하시는 것도, 판단력도, 거의 치매와 맞먹는다고...

난 속으로 생각한다.

' 아빠가 네 이름은 알잖아. 네가 딸인 건 알잖아...'

아빠는 가끔 나에게 존댓말로 여느 이웃사람에게 이야기하듯 정중하게 존대를 하시며 질문할 때가 있다.

내가 결혼은 안 하고 같이 살았다면 덜 슬펐을까? 부모님 옆에 가까이 살았다면 덜 미안했을까?


부모님을 떠나보낸 이들에게는 내가 부러운 상황일 것임에 틀림없다.

내가 평범히 나이 든 부모와 같이 사는 내 친구를 부러워하듯이.


혼자 독박 간병을 하고 계신 엄마가 더 늙으실까 걱정이듯 엄마는 펑펑 울고 간 딸내미가 걱정이신가 보다.

집에 잘 도착했다고 엄마에게 문자를 보내니 한참만에 답장이 왔다.



" 우리는 잘 지낼 테니 걱정하지 말고 이제는 울지 마.

엄마 마음이 아프다. 우리 딸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지내렴.

딸이 사 준 컵으로 아빠하고 커피 한 잔 마셨어. 더 맛있더라.

마실 때마다 딸 생각할게. 박서방, 선영이 잘 챙기고 몸 아껴 가면서 일 하거라. 사랑해, 우리 딸"


이 삶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봄이 오면 따뜻한 햇살과 새싹들처럼 아빠의 기억도 새로이 돋아나는 기적은 없을까?

오늘도 아파트 집에서만 계실 두 분을 떠 올리니 또 눈앞이 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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