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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이 Jun 13. 2024

마지못한 여름

 


 여름을 상당히 귀찮아하는 편이다. 무덥고 푹푹 찌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땀이 많은 체질도 한몫하는 듯하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마지못해 여름이 왔다. 아직은 장마철이 아니어서 파랗게 갠 하늘에 구름이 두둥실 떠다니는 모습을 보면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되지만, 그 모습이 마치 ‘나도 마지못해 부른 거야, 여름…’이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여름이란 계절은 무덥기만 한데 왜 사람들은 ‘한 여름밤의 추억’을 떠올리는 걸까? 셰익스피어도 5대 희극 중 하나로 <한 여름밤의 꿈 (원제 : A Midsummer Night's Dream.)>을 쓰지 않았나.* 왜 그는 요정과 두 연인의 사랑 이야기를 봄과 가을, 겨울이 아닌 ‘여름’을 배경으로 시기를 맞춘 것일까.


 내리쬐는 햇볕 또는 모기를 쫓는 밤공기 짙은 하늘 아래 잔디밭에 앉아 재즈나 각종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무리 날이 더워도 시원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은 또 한강이나 공원 벤치에 나와 맥주를 마시고 있겠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겠지. 휴대용 선풍기를 챙겼을지언정 함께 붙어 앉아 온기를 나누는 커플들의 몸에서 풍기는 달짝지근한 땀 냄새가 여기까지 느껴지는 듯하다.


 열기와 온기 때문일까 찝찝하고도 달큰해 잊을 수 없는 여름의 냄새 때문일까. 유독 여름날의 기억과 추억은 잊히지 않는다. 아주 젊은 한때 그 어떤 더위도 이겨낼 수 있었던 패기 때문일까. 지금에서야 더위를 피하려고 하지 가장 어리고 창창한 때 그 뜨거운 온도 속을 헤집고 다니며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우리는 그 짧은 시간에 그 모든 기억을 수집했던 것일까? 그래, 우리의 이지와 감성은 더운 날의 장벽도 언제든지 뚫어낼 수 있었다. 그런 기억의 힘이 있어 여름은 삶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기어코 찾아오는 것일까.


 나도 여름에 담긴 추억이 있다. 지금은 그립지도 않은 어떤 사람과 나눈 첫 키스의 강렬한 기억, 땀 냄새도 향기로웠던 사람들, 너무나도 더운 날 유독 아프고 힘들었던 엄마, 눈물인지 땀인지 알 수 없던 감정의 잔해를 거침없이 닦아내던 시간, 차 소리인지 모기소리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소음 속에서 잠을 설치던 밤….


 그래서 여름을 못 잊는 것일까.

 여름이 이렇게나 지겨운 것일까.

 반갑지 않은데 이토록 눈에 선한 것일까.



24.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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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못한 여름




*<한 여름밤의 꿈 (원제 : A Midsummer Night's Dream.)> : 작품 속 계절이 정확히 언제냐에 관한 문제가 유명하다. 영어 원제는 A Midsummer Night's Dream인데 Midsummer는 번역된 바와 같이 한여름 혹은 하지를 의미한다. 또 다른 의미로는 Midsummer day와 midsummer night가 있으며 이는 각각 6월 24일의 세례자 요한 탄생 축일과 그 전야인 6월 23일을 가리킨다. 서양에서는 예로부터 이날 아주 기이하고 신비로운 일이 많이 일어난다고 믿는데, 셰익스피어가 여기에 맞춰 신비롭고 환상적인 작품을 만들어냈다고 하면 꽤 들어맞는다.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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