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어른이 되어주세요

by 김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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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생 2학년이 되던 해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원래 지병이 있으신데다 아흔에 가까운 연세였기 때문에 외가 어른들은 맘속으로는 조용히 외할아버지의 죽음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 같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가 부고 소식을 들은 나는 아버지 차를 타고 바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동생과 서둘러 의복을 갈아입고 외삼촌과 외숙모, 사촌 언니와 함께 빈소를 지켰다. 그리고 그곳에서 장례지도사 선생님 한 분을 만났다. 왜소한 몸집에 키가 작으신 여자분이었다. 짧은 머리에 안경을 쓰고 계셨는데 나와 여동생, 사촌 언니를 볼 때마다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 이것저것 도와주시던 그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선생님과 함께한 시간은 겨우 사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분에 대한 추억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고이 자리하고 있다.


장례지도사라는 서비스직을 맡고 계셨기에 온종일 미소를 띠고 친절하게 도와주신 이유도 있겠지만, 그분의 얼굴을 보았을 때 난 바로 알 수 있었다.


‘저 아줌마는 정말 착한 사람이구나!’


정말 그랬다. 우리 가족과 조문객을 접대하고 외할머니를 부축하며 온갖 궂은일도 모두 맡아 했음에도 힘든 내색 하나 하지 않았다. 심심해하는 나와 동생에게도 틈틈이 곧잘 말을 붙여주셨다.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말과 행동, 미소에서 이분은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걸 지속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외할아버지의 염습이 있던 날 그 선생님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빈소에선 그렇게 슬픈 줄도 몰랐는데, 눈을 감고 누워있는 외할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죽음이란 것이 뒤늦게 실감이 나는 것 같았다. 염습할 때가 으레 그렇듯 우리 가족은 외할아버지의 염습을 지켜보며 펑펑 눈물을 쏟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철없는 어린아이였던 나는 우리와 함께 있던 장례지도사 선생님이 직접 염습해주시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유리 벽을 사이에 두고 선생님은 흰 천으로 외할아버지의 몸을 조심스레 닦았다. 그리고 굉장히 익숙하고도 우아한 동작으로 수의를 입혀드렸다. 외할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던 나는 어느 시점부터 그 선생님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겹겹이 천으로 싸인 외할아버지는 마지막 순서로 붉은빛과 황금빛을 띤 가장 화려한 천에 둘러싸이고 있었다. 선생님이 외할아버지의 몸을 아름드리 묶어드리는데 단호하면서도 절도 있는 그 모습은 정말이지 ‘아름답다’는 감탄사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외할아버지가 아닌, 그 선생님에게 시선을 빼앗겨버린 나는 옆에서 울고 있는 엄마에게 속삭였다.


“천사가 내려와서 외할아버지한테 옷 입혀드리는 것 같아!”

“정말 그렇네. 할아버지 마지막 가는 길을 잘 보내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야.”


엄마와 내가 주고받은 대화는 다소 맥락을 달리한 것 같았지만, 어쨌든 난 그 선생님으로부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날개 잃은 천사가 잠시 땅에 내려와 죽은 이를 고이 보내드리는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빈소로 돌아왔을 때 그 선생님을 다시 뵐 수 있었다. 난 그분께 바로 달려갔다.


“아줌마, 아까 외할아버지 보내드릴 때 너무 멋있고 아름다웠어요. 천사가 내려온 줄 알았어요. 진짜 천사 같았어요!”


선생님은 나의 반응이 너무나도 의외였는지 귀까지 온 얼굴이 새빨개지셨다. 부끄러움과 어이없음, 이런 감정이 반반 섞인 투로 웃으시던 선생님은 나에게 조용히 말씀하셨다.


“누구든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보면 멋있게 보이는 것 같아요. 학생도 꼭 그런 어른이 되어주세요.”


그때는 이 말이 그렇게 멋있는지도 몰랐다. 그냥 그 아줌마(?)가 한 말이어서 머릿속에 남은 것 같다. 그런데 선생님의 말씀은 등불이 되어 나의 가슴 속에 고스란히 남았다. 서른이 다 된 지금도 길을 걷다가, 글을 쓰다가 또는 일하다 말고 문득 그 말이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 그분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이만큼 기억에 남을 줄도 몰랐기에 성함도 연세도 여쭤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여쭤봤다고 하더라도 당시엔 금세 잊었을 것이다. …이 말을 전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어른이 되기 위해 지금도 저는 부단히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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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0.

그런 어른이 되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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