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유일한 외향형이 있으니 둘째 딸 으니. 내향인들이 보기에는 어찌 저렇게 밖이 좋을까? 하며 의아해하건만 정작 본인은 시끄러운 사람을 만나면 기 빨린다며 본인은 외향형이 아니라고 하더니만 요즘은 인정하는 듯하다. 우리 가족 내향의 정도를 순위로 매기면 남편이 1등, 첫째 딸 유니가 2등, 내가 3등인 듯싶다.
남편은 오죽하면 "나는 친구가 하나도 없어, 생각해 보니..."라고 하길래, "그래? 음... 친구는 있지. 내가 아는 사람만 해도 여럿인데... 근데 서운하네. 나 있잖아, 진정한 친구는 하나면 충분해. 아는 사람이 많아도 진정한 친구는 없는 사람도 많을 걸. 그리고 개인적인 시간에 따로 시간 내서 가족 이외의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주 귀찮은 사람이 있다니까.^^ 성격이 나빠서가 아니라 **의 스타일이 그런 건데, 뭐. 사실 나도 친구가 많지 않잖아, 보기와는 다르게...ㅎㅎ"
친구의 범위는 어떨까? 으니가 말한다. "오늘 점심시간에 **와 말텄어", "말을 텄다는 건 무슨 의미야?", "친구가 된 거지~", "말 한 번 한 것으로 친구가 돼? 네 친구의 범위는 어디까지야?", "우리 학교 애들이면 친구지!", "뭣이라? 그냥 아는 애들이지. 학교 친구가 어떻게 친구야? 그럼 친한 애들은", "물론 친한 애들은 따로 있지", "난 친한 애들 아니면 따로 안 만나는데, 친하지 않은 애들하고는 굳이 만날 필요가...", "에이~친구니까 만날 수 있지", "그러니까 네가 바쁘지. 초등학교, 중학교 친구들 따로 만나고 학원 친구 따로 만나고... 만남이 아주 많아", "아주 가끔씩인데?", "가끔이지만 대상 자체가 많잖아~안 피곤해?", "별로 ㅎㅎ"
으니와 반대로 유니의 대인관계는 무척 좁았다. 학교에서의 생활이야 눈으로 확인이 안 되지만 집에 오면 더 이상 밖에 나가지 않는 유니였기에 사회성은 있지만 사교성은 다소 부족한 건 아닐까 생각되었다. 나의 이런 반응에 으니는 "언니가 얼마나 사교성이 좋은데~나보다 나을 걸" 하며 내 의견에 반대했다. 유니가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시작할 때 어차피 혼자서 시간을 잘 쓰니 안심이 되기도 하고 너무 혼자 지내게 되는 건 아닌지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친구들만 만나고 다니는 줄 알았더니 유니에게 내가 모르는 만남들이 있다는 걸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데?", "뭐, 그냥 사람들이 모이더라고. 새로운 곳에 가도 어느새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더라니까. 아무래도 내게 인류애가 있는 것 같아. 엄마와는 조금 다른 종류의 인류애인데 말이야..."
유니의 사교성에 대한 의심(?)은 어린이집 원장님의 근심 어린 충고에서부터였다. 어린이집 첫 경험, 한 달 정도 지나서 원장님의 호출이 있었다. 삼십 년 넘게 아이들을 봐 왔는데 이런 아이 처음이라며 집에서는 어떻냐는... 점심을 남기기 말라고 했더니 억지로 다 먹고 토하질 않나. 아이들 돌아다니지 말고 제자리에 앉아있으라고 자리마다 동그라미를 그려놨더니 몇 시간을 동그라미 안에 가만히 앉아있더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가 짜증을 내거나 힘들어하지도 않는데 참 희한하다며... 나도 깜짝 놀랐다. 집에 와서는 즐겁게 시간을 보낸 듯 아이들 애기를 많이 해주길래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고 있구나 기특했는데, 점심에 관한 일 역시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는데. 이건 무슨 일이람?
유니는 규칙을 잘 지키는 아이였다. 그러니 점심을 남기면 안 되었고(토할지언정ㅜ.ㅜ) 동그라미에서 나가면 안 되었다. 엄마의 성향과는 완전 반대이니 **의 유전자가 어릴 적 세게 작용했나? 어쨌거나 유니에게 물어봤다. "유니야, 점심 먹기 힘들면 다 안 먹어도 돼. 토할 정도로 힘든데 엄마에게 말도 안 했어?", "애들이 다 잘 먹는데 나만 안 먹을 순 없잖아. 그리고 이젠 안 토해. 먹을만해^^", "또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그 동그라미에 하루종일 앉아 있다며? 다리 안 아파?", "ㅎㅎ 얼마나 재밌는데~애들 구경하고 있으면..."
유니는 두 달 정도 지나자 동그라미에서 벗어나 아이들과 엄청 재미나게 지내게 되었다. 차츰 알게 된 사실이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불안이 높았던(우리 유니는 타고나기를 민감한 성향입니다) 유니는 두 달 만에 아이들의 성향을 이해했다. 누가 어떤 행동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조용한지 시끄러운지, 다가오는지 달아나는지 등. 그리고는 아이들 속에 뛰어들었다. 때론 맞춰주기도 하고 부딪치는 경우에는 이 아이니까 그럴 수 있어... 하며 이해하려고 했다. 대단하지 않은가? 불안은 우리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는 환경에서는 세심한 관찰로 환경에 적응하기 시간이 걸렸던 유니가 성장하여 자신이 원하는 환경을 찾아다니게 되면서 자유로워졌다. 그 환경에서는 새로운 사람에 대한 경계가 약해지고 본인이 말하는 인류애가 발현되며 적극성을 띄는가 보다. 내가 아는 유니가 아닌 새로운 유니로 탄생!
흥미롭다. 아이들이 부모의 손을 떠라 자신이 원하는 환경을 만났을 때 숨어있던 기질이 슬그머니 나와 현실과 만나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하는지. 타고난 기질이 부모의 영향으로 약화되거나 강화되더라도, 그 시간들을 고스란히 때로는 힘들게 버텨내며 자신의 방향을 찾아간다는 것이 감사하다.
으니가 말한다. 자신은 야망이 없다고. 특별히 되고 싶은 것도 없고 욕심도 없어서...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내가 말한다. "엄마도 그랬어. 네 나이 때 아무 생각이 없었어.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떻게 먹고 살건지 아예 개념이 없었어. 그래도 지금 나름 잘 살잖아. 으니 너도 그럴 거야. 꼭 무엇이 되어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넌 정말 사교성이 뛰어나다니까. 뭐, 부정한다면 우리 가족 중에선 사교성 왕! 사회에 나가서 어디가든 잘 적응하고 즐겁게 살 걸~ 네가 원하는 삶의 방향을 알기에는 지금은 너무 빠르지 않을까~욕심이지. 그걸 알면 으른이게? 학생이 아니고...^^"
우리 딸들에게 내가 모르는 영역이 많은 것이 서운함이나 걱정보다 기쁨을 줄 수 있는지 몰랐다.
유니가 내가 모르는 환경에서 내향인이 아닌 것이, 발랄한 으니가 다른 세계에서는 우울 모드로 쳐져 외향인 모드가 아닌 것이 다른 영역에서 다양한 감정과 태도를 경험하며 성장할 수 있음에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