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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그린 Aug 01. 2022

내 팔자는 내가 정하겠어요

인간관계(2)

메리골드는 멕시코에서 <죽은 자들의 날>에 죽은 영혼을 가족에게 안내해 준다는 의미가 있어 장식에 사용되는 꽃이다. 꽃말은 <반드시 찾아올 행복>이다.  


아버지와 아경이가 어머니의 간병을 했다.


언니는 결혼을 해서 어린 조카가 있었고 남동생은 군복무 중이었다.


아버지가 낮에 어머니를 돌보고, 회사에서 퇴근한 아경이가 밤에 곁을 지켰다.


재발한 지 몇 개월 만에 암은 어머니의 몸을 빠르게 잠식했다.


막판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번 투여하는데 천만 원짜리 신약도 써 보았다.


아경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어머니의 치료에 쓰고 싶었다.


그러나 무용지물이었다.


아경이가 스물여섯이 되던 겨울, 결국 어머니는 오십 대 초반의 나이에 돌아가셨다.


세월이 흘러 아경 자신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나이가 되고 보니 너무 아까운 나이였다.  


어머니의 심장이 멈춘 순간, 아경은 “하고 싶은 말 있으시면 지금 하세요. 아직 들으실 수 있어요”라는 의사의 말에 어머니의 귓가에 속삭였다.


“엄마, 사랑해요”


그것이 아경이 어머니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고백이었다. 지금 되돌아봐도 그 순간만큼 슬프고 고통스러운 때는 없었다.


장례식에서 어머니를 잃은 충격에 빠져 있는 아경에게 숙모가 다가와 말했다.


“네 언니는 시집가서 출가외인이고, 장손인 네 남동생은 아직 대학생이고 졸업 후에는 큰일을 해야 하니 이제 네가 아버지를 모시고 살다가 아버지 돌아가시면 그때 가서 재취 자리를 찾아서 시집가면 된다.”


어머니를 대신하는 집안 어른의 명을 받으라는 투였다.   


이제 막 어머니를 잃은 아경은 스물여섯이었다.


숙모에게는 아경과 같은 해 몇 개월 늦게 태어난 동갑내기 딸이 있었다.


과거에 숙모는 늘 아경과 자신의 딸을 비교했다.


“너는 대가리도 크고 짜리 몽땅한 것이 난쟁이 똥자루 같구나. 우리 딸! 아경이 옆에 가서 나란히 서 봐라. 이렇게 보니 우리 딸은 키도 크고 어쩌면 얼굴도 조막만 할까.”라며 뿌듯해했다.


그런데 아경이 취직한 반면에 자신의 딸이 자리를 못 잡고 있으니 속이 터지고 질투가 났던 모양이었다.


숙모는 혹시 아경이 자기 딸보다 더 좋은 자리로 시집을 갈까 봐 노심초사였다.


아경은 오래전부터 숙모가 욕심 많고 할 말 못 할 말 거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렸을 때 아경이 아버지의 폭력으로 힘들다고 도움을 청하자, 숙모는 “네 팔자다”라며 듣기 싫다는 내색을 하며 외면했다.  


그러다가 아경이 취업하고 자리를 잡아가자 “이제부터는 네가 사촌동생들을 책임져야 한다”라고 했다.


아경은 숙모의 쥐처럼 작은 눈이 탐욕스럽게 빛나고, 축 늘어진 볼살과 두껍게 접힌 짧은 턱 때문에 심술궂어 보이는 얼굴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숙모는 지치지도 않고 “그게 네 팔자야. 부모는 천륜이니 아무리 아버지가 네게 잘못했어도 너는 효도해야 한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아경은 숙모에게 말하고 싶었다.


<내 팔자는 내가 정하겠어요>    


하지만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때 아경은 어머니가 사경을 헤매는 3일 동안 뜬눈으로 곁을 지켰고, 장례식을 치르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모든 것이 꿈같았다. 어머니의 죽음도 현실 같지 않았다.


그 후 아경은 숙모의 간절한 바램을 저버리고 아버지를 떠났다.


아경에게 아버지는 무자비한 폭력의 상징이었다.


어떤 피해자도 자신을 폭행한 가해자와 같은 집에서 살아갈 수는 없다.  


아버지를 떠나 자신만의 집을 구했을 때, 비로소 아경에게도 <집>이라는 것이 <안전한 보금자리>로 오롯이 받아들여졌다.


어머니와 사별한 당시 아버지는 50대 중반이었다. 여전히 술을 마시고 사람 좋은 척하며 여자를 사귀면서 연애를 했다.


<역시 죽은 사람만 억울해>라고 아경은 생각했다.


숙모는 아경이가 아버지를 부양하며 술주정에 계속 고통받다가 중년의 나이에 애 딸린 이혼남이나 홀아비에게 시집가서 자기 딸보다 확실하게 불행해지기를 바라는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을 듯 하자 약이 바싹 올랐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경에게 <너네 엄마가 그렇게 일찍 죽는 바람에 내가 팔자에도 없는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게 되었다>고 아경의 죽은 어머니를 원망하는 막말도 서슴없이 내뱉었다.


아경의 눈에는 그런 숙모가 사람같아 보이지 않았다.


더 듣고 있다가는 숙모의 뚱뚱한 몸에 올라타서 목을 조르면서 <당장 죽여줄 테니 저승가서 엄마에게 따져요!>라고 할 것 같아 자리를 피했다.      


훗날 할아버지 땅의 상속포기를 요구하며 아경에게 인감도장을 보내라며 헛소리를 해서 오지게 욕을 먹게 되는 막내 삼촌도 아경과 마주칠 때마다 <너 혼자 잘 사니까 좋냐>라고 그 특유의 비아냥을 계속했다.


그때마다 어린 시절 아경은 술 취한 아버지를 말려달라고 삼촌에게 요청했을 때 실실 쪼개며 몸을 사리면서 뒷걸음질 치던 비겁한 모습이 떠올랐다.


아경에게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사람들은 괴물 같은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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