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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Mar 23. 2023

"이렇게 힘든데요?"

즐기는 것을 숙제로 생각하지 말자

통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따뜻하고 카페 앞 정원은 잔디가 예쁘게 올라왔다.

조경이 예쁘게 되어있어 주말에 아이들과 오면 좋겠다 생각하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다 예쁜 원피스를 입고 아기띠는 허리에 걸친 채 허리를 반쯤 숙여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의 손을 잡고 쫓아다니는 엄마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그랬다. 질끈 묶은 머리라도 최대한 자연스러우면서 지저분하지 않게 보이려 다시 한번 가다듬고 봄기운이 느껴지는 원피스를 입고 아기띠를 메고 밖으로 나갔었다.

막상 나가면 아이들 쫓아다니느라 잔머리가 뒤섞여 헝클어지고, 원피스는 아기띠로 덮일지언정 내 기분은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으니까...

아무리 꾸며도 예뻐 보이지 않고 맛있는 커피 맛도 느낄 수 없었던 그때... 남들은 저렇게 힘든데 뭐 하러 아이를 데리고 나오냐고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바람 한 번 쐬고 싶은 마음... 아마 어제의 그 아기엄마도 그랬을 것이다.


@pixabay


어른들이 아이들과 나를 보며 "그때가 제일 좋을 때다. 많이 즐겨라." 말씀하시면 "이렇게 힘든데요?!" 하고 반문하곤 했다. 하지만 어제 그 엄마의 마음이 이해되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지는 걸 보면 고작 육아 10년 정도라 해도 이제 그 말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나 보다.


누군가 나에게 
삶의 즐거움을 포기한 대가로 얻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그 시절에 가졌던 죄책감과 피해의식은 
나의 기쁨을 앗아가고 
나를 피곤하게 만들었으며,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김혜남>



돌아보면 나는 그렇게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아이들이 귀여우면서도 내가 해야 할 일이 쌓여있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았고 도와주지 않는 남편에게 원망을 쏟아냈다. 그 원망은 다시 아이들에게 돌아가고 그렇게 쏟은 날은 혼자 밤마다 울었다. 그 시간이 아까우면서도 어릴 때만 누릴 수 있는 예쁨을 진심으로 만끽하지 못해 후회가 남는다.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시간을 떠올려보면 아쉬움과 후회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니... 뭔가 좀 억울하다.

좀 더 놀아줄걸, 청소 좀 덜하고 살걸, 배달시켜 먹고 주방에서 잠시 벗어날걸... 큰일 날 일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아마도 걱정과 불안, 책임감까지 더해져 아무것도 놓지 못하고 내 손으로 모든 것을 해야만 안심이 되었던 것 같다.


삶을 즐기는 것은
'~해야 한다'는 말을 줄이고,
'하고 싶다'는 말을 늘려 나가는 것이
그 시작이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김혜남>



그때나 지금이나 할 일은 여전히 쌓여있고 내 몫으로 감당해야 할 일은 늘 존재한다. 이 사실을 바꿀 수 없다면 덜 억울해질 방법을 찾아야겠지. 해야 하는 일만 생각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일부러라도 찾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나처럼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머릿속으로 질문만 맴돌 뿐 답은 떠오르지 않는다.

이러다 즐기며 살기 위해 '하고 싶다는 말을 늘려가는 것'을 ' 해야 하는 일' 숙제로 생각하게 될까 두렵다.


@pixabay


즐기며 사는 것을 숙제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제 봤던 아기 엄마들처럼, 내가 그 시절 예쁜 원피스를 꺼내 입고 아기띠를 두르고 나갔던 것처럼 좋은 사람을 만나고 분위기 좋은 카페도 가보자. 예쁜 꽃을 나 자신에게 선물하는 것도 좋다.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 보자.


불안과 책임감은 조금씩 내려놓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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