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폭우 속에 배낭 메고 이탈리아에서 다시 독일

반백살 싱글언니 시간여행 (18)

폭우 속에 배낭 메고 이탈리아에서 다시 독일

짐 보관서비스가 없는 이탈리아 트레비소 공항! 


1년 전 오늘 드디어 2주간의 이탈리아 배낭여행을 마치고 이탈리아에서 다시 독일로 가는 날이다. 원래 계획 상으로는 이 날 오전 호텔 근처 파도바 작은 마을을 도보로 구경하고 오후 공항버스를 이용하여 베네치아 트레비소에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전날 페라라에서 파도바 여기 숙소까지 이동하던 악몽이 떠올라 혹시라도 비행기를 타지 못할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에 아침 일찍 공항버스를 탔다. 호텔 앞 버스정류장에서 트레비소 공항까지는 버스로 넉넉잡고 1시간. 독일로 가는 비행기는 오후 5시 30분. 공항에 오전 9시 도착해서 짐을 맡기고 그 근처를 도보로 여행하기로 했다. 

파도바 호텔 앞과 공항버스 안

공항버스라고 하지만 그냥 시내버스와 같다. 조그마한 시골동네 구석구석까지 버스를 세워 승객을 태워 공항으로 모셔다 주는 것은 지역주민을 위한 배려심 인듯하다. 한국 특히 내가 사는 이 시골에서는 버스터미널로 가야만 공항버스를 이용할 수 있기에 내가 타고 갔던 버스 노선의 서비스가 부럽기만 하다. 이 버스를 타고 아기자기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지만 나도 버스 안에 탔던 다른 승객들과 마친가지로 단잠을 자기로 했다. 


이렇게 베네치아 트레비소 공항에 도착하니 아침 9시. 당연히 여기도 공항이니 짐보관소가 있을 것이라는 착각으로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트레비소 공항

트레비소 공항도 독일 프랑크푸르트 한 공항처럼 작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에 있는 청주국제공항. 아니 시외버스 터미널보다 작은 것 같다. 짐을 맡기로 공항청사까지 들어가 봤지만 보관소가 없다고 한다. 기가 막혔다. 한국은 지하철 역에도 짐보관소가 있는데 나름 그래도 국제공항인데 보관소가 없다니 믿을 수 없었다. 이 친절한  공항 직원은 공항밖에 있는 식당 옆을 가리키면서 거기에서 맡길 수 있으니 가보라고 한다. 식당 옆에는 아주 작은 게스트하우스처럼 보이는데 여기서 짐보관 서비스도 하고 있었다. 배낭 메고 캐리어를 끌고 공항 건너편에 있는 이 작은 게스트 하우스로 건너갔다. 

트레비소 공항 앞 짐보관서비스를 하는 게스트 하우스


그런데 짐 보관소는 엘리베이터 없는 2층. 캐리어를 끌 수 없고 들고만 올라가야 하는 2층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며칠 전 '불편함의 미학'의 상징이었던 친퀘테레 마나롤라 숙소에 비하면 이 2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가뿐한 마음으로 이 무거운 캐리어를 한 계단 한 계단 씩 쉬어가면 올렸다. 어차피 비행기 타는 시간까지 7시간 이상이나 남았는데 할 일도 없고 급할 것도 없어 아주 천천히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갔다. 올라가서 짐을 맡기니 보관비가 5유로, 여기 게스트하우스 1박 숙박비가 9유로인데, 보관비가 5유로다. 공항에는 짐보관 서비스가 없으니 나 같은 여행객들은 이 게스트하우스의 서비스를 이용할 것이다. 이것도 지역경제를 위해서 주민들에게 직접 맡긴 것인지 그것은 잘 모르갰지만 아무튼 나는 짐에서 해방되어 가뿐한 맘만 가지고 내려와서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몸도 가볍고 시간도 많고 몸과 마음이 자유로웠다. 그래서 나는 공항을 중심으로 좌우를 다 걷기로 했다. 이렇게 운동도 하고 여행도 하고 진짜 여행을 하는 듯 구석구석 둘러보기로 했다.

이탈리아 트레비소 공항 근처 주택가

조용한 주택가로 걸어가 보니 드문드문 보이는 집들과 파아란 하늘이 평화롭게 보인다.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냥 새만 초록 들판과 가을을 알리는 붉은빛을 보이는 나무 사이로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는 것만 보인다. 그런데 주택가에는 진짜 들판과 주택 밖에 없다. 상점, 식당은 전혀 볼 수가 없다. 이 주택가들이 길 끝엔 그냥 차만 다니는 도로만 있어 다시 공항 쪽으로 발걸음을 돌려 반대방향을 가보기로 했다. 이 반대방향은 내가 파도바 호텔 앞에서 탔던 버스가 지나왔던 길이다. 그래도 거기에는 교회도 보이고, 마을도 있던 것 같아 그쪽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마을로 가는 도중 반가운 글씨체가 보인다. 다름 아닌 'KIA' 기아차 영업소와 다른 일본 도요타도 보였다. 아마 이 근처에서 자동차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듯하다. 이탈리아 여행 중에 나는 한국을 잊은 지 오래였기에 이 조그마한 낯선 이탈리아 시골마을에 기아차 판매점이 있는 것이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반가웠다.

트레비소 공항 근처 기아차 영업소

반가운 마음으로 기아차 판매장에 있는 차들을 둘러보니 기아차뿐만 아니라 현대차에서 많이 보던 모델도 보였다. 이렇게 둘러보니 마을 교회가 보인다. 시간이 오전 10시 정도여서 교회 안에서는 무슨 소리가 나는데 아마 일요일이어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교회밖과 마을에는 사람들을 볼 수가 없었다.

트레비소 공항 인근 마을 교회

이 날도 일요일이어 이탈리아도 독일처럼 많은 상점들은 운영하지 않는다. 그러니 식당도 별로 없는 이 동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딱 여기까지였다. 동네공원과 들판을 산책하는 것. 이 동네 역시 시골마을이어 오전 11시 반까지 다 둘러보기에 충분했다. 아침부터 에너지 소비에 배에서는 꼬르륵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나의 배고픔을 해결할 수 없어 다시 발걸음을 공항 쪽으로 향했다. 왜냐하면 짐을 맡겼던 게스트 하우스의 보관소에서 그 건물 1층에 식당이 있어서이다. 그리고 여행객들도 거기엔 있었다. 아마 거기서 비행기 탑승시간을 기다리는 것처럼. 나도 그 여행객들처럼 짐보관소에서 짐을 다시 되찾고 짐과 함께 이 식당에 내 몸을 맡겼다. 달랑 스파게티와 음료수 한 잔 시키고 두 시간을 여기서 보냈다.

이탈리아 트레비소 공항 앞 음식점에서 주문한 스파게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피자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 여행을 하는 동안 피자를 주문해서 먹어본 적이 없다. 아마 혼자 여행을 하면 이런 것이 불편하다. 음식도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양만큼만 주문해야 하니. 피자가 먹고 싶어도 빵집에서 파는 조각피자만 먹을 수 있지 피자집에서 피자를 주문할 수는 없는 것이 혼자여행의 현실이다. 피자 대신 스파게티는 진짜 많이 먹었다. 아무튼 나는 이렇게 스파게티 하나를 시켜 놓고 두 시간 동안 이 식당에 앉아있다. 더 이상은 식당에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짐을 들고 공항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공항 안에서도 혹시나 하고 물어보니 탑승시간 2시간 전 아니더라도 짐 맡기고 통관심사하고 탑승구 있는 쪽에 미리 대기할 수 있다 하여 그쪽으로 움직였다. 혹시나 면세점이 있을 수 있으니 이탈리아에서 사지 못했던 것을 사기 위해서였다. 라이언에어에 항공권을 발권했을 때 나는 기내용 캐리어만 추가로 옵션값을 지불했기에 많은 것을 이탈리아에서 살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발사믹도, 커피도 사지를 못했다. 기대를 하고 면세점을 들어가 보니 역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면세점 역시 제주공항의 면세점의 반도 못하다. 


이탈리아 트레비소 공항 면세점

나는 면세점에서 트러플 소스 몇 개와 독일에 있는 조카들에게 줄 과자를 몇 개 정도만 구입해서 대기실로 가서 스마트폰으로 유튜브와 여러 가지 뉴스를 보면서 시간을 때웠다.

트레비소 공항에서 탑승비행기를 기다리는 나의 짐과 여행객들

오후 5시 반 비행기를 기다리며 밖에 있는 맑은 파란 하늘 아래 있는 비행기 구경도 하고 사람들 얼굴도 이렇게 열심히 구경해 본 적이 없었다.  

트레비소 공항에 있는 비행기

드디어 독일에서 온 라이온에어 비행기가 트레비소 공항에 도착하고 이제 이 비행기를 타고 독일로 가기만 하면 된다. 독일에 집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독일에 오래 살았던 경험인지 아니면 동생네가 있어서인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같아 빨리 타고 싶었다. 오후 5시가 넘어 탑승할 수 있기에 비행기가 있는 활주로를 걸어가면서 해지는 광경도 볼 수 있어 이탈리아에서 마지막 선물을 받는 것 같았다.

트래비소 공항에서 일몰을


드디어 독일로! 그러나 나를 반기는 것은 독일 폭우!


기다리고 기다렸던 독일행 비행기에 나를 맡기고서야 맘이 다시 푸근해지는 것 같았다. 낯선 동네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그런 느낌이랄까? 베네치아 트레비소 공항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 한 공항까지 시간은 1시간 반 소요된다. 


비행기에 몸을 맡기고 가는데 독일에 가까워질수록 기내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혹시나 하고 밖을 쳐다보니 창에는 빗방울이. 구름 위에는 비가 없는 것 같은데 아마 독일 공항 근처여서인지 구름 아래로 비행기가 이동하는 듯하다. 우산도 안 가져왔는데. 역시 독일날씨다. 

독일 근처 비 내리는 구름 아래서 찍은 독일 풍경

내가 탔던 라이언에어는 저녁 7시 정도에 프랑크푸르트 한 공항에 도착했다. 프랑크푸르트 한 공항도 말만 앞에 프랑크푸르트가 쓰여있는 것이고 프랑크푸르트에서 버스로 2시간 거리에 있다. 그리고 비행기도 베네치아 트레비소 공항처럼 작아서 활주로를 걸어서 공항청사까지 가야만 한다. 


그런데 프랑크푸르트 한 공항 활주로에서 나를 반기는 것은 폭우였다. 이탈리아 친퀘테레에서 폭우 때문에 우비도 샀는데 그 우비를 버리고 비행기를 탄 것이다. 우산도 없고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프랑크푸르트 한 공항 활주로를 폭우 속에 걸어가는 여행객

여행객들도 모자를 쓰고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나도 우비대신 모자를 쓰고 사람들을 뒤따라 걸어갔다. 청사 안에 들어가서 다시 한번 확인하니 프랑크푸르트 중앙역까지 가는 버스를 1시간 정도 기다려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공항 안에서 기다리는데 비도 와서 더욱더 그랬지만 독일 11월 말을 춥다. 이탈리아는 남쪽나라이고 독일은 북쪽나라이니 더 추울 수밖에. 거지처럼 덜 덜 떨면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셔틀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로 이동하는 두 시간 동안 따뜻하게 잠도 자고 또 현지시간 밤 9시 한국시간으로 월요일 새벽 5시여서 느긋하게 굿짹 영짹 줌에 들어가서 시청자 모드로 참여했다. 굿짹 영짹방에 들어가는 것은 아마 나 살아있다고 생존신고 하는 것처럼 나를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혼자 배낭여행을 두 달 동안 했지만 내가 여행을 했던 혼자만의 시간에는 밤마다 나는 영짹방 줌에 들어가 수다를 떨고 여러 가지를 공부를 했었다. 공부보다는 수다라고 하는 것이 나한테는 어울릴 것이다. 솔직히 몸은 피곤하기에 공부한 것은 잊어버리지만 간간히 다른 사람들과 줌 안에서 소통하는 것은 나의 피로를 풀어주고 오히려 그 대화는 기억에 남는다. 이 날도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말은 할 수 없었지만 보고 들으면서 챗방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확실히 이 날은 내가 입으로 떠들지 않았기에 무슨 말을 챗방에 썼는지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때 혼자여행을 하면서 확실히 배운 것은 혼자 여행을 하더라도 꼭 해야 하는 것은 SNS와 다양한 커뮤니티에 참여해서 줌으로도 사람들과 소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더 지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일상을 공유한다는 것은 나와 소통하는 사람들과 더 끈끈한 정을 나눌 기회이기 때문이다. 내가 여행을 하면서 몸으로는 많이 힘들었지만 이렇게 SNS 또는 줌에서 실시간 나를 보면서 다독여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퇴사로 지쳤던 내가 버틸 수 있었다.


그때 1년 후 오늘 나는 여전히 SNS과 줌으로 사람들과 소통을 한다.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 줌에서는 내가 링크를 주면서 스터디 리더로 참여하여 다른 사람들과 같이 공부를 한다. 1년 후 오늘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를 줌으로 했다. 새벽 5시에 "왕초보 PPT 장표 만들기", 밤 9시에 " 왕초보선생님 프로젝트" 스터디. 줌 스터디는 나의 새로운 활력소이다. 여행 중에는 힘들었던 여정을 줌으로 피곤을 달랬고 지금은 힘들었던 디지털배움터에서의 노고를 줌이 달래준다. 줌 스터디를 통해 참여하는 왕초보선생님들은 나를 통해 활력을 받는다고 하시지만 나 역시 이 분들의 열정에 내가 더 동기부여 된다.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1년 전 오늘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었지만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 중이고 또 준비를 하게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 그것이 크게 다른 점이다. 23년도 마무리가 되어가는 되어 있는 이 시점. 다시 나는 또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꿈틀거린다. 1년 후 오늘을 위해서.


이전 17화 친절한 이탈리아 파도바 사람보다 구글맵이 더 좋은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